국민연금 脫석탄 네거티브 스크리닝 검토…시장 혼란 불가피
입력 21.05.20 07:00|수정 21.05.18 17:39
이달 말 기금운용위서 본격 논의
한전·GS·포스코 등 사정권에 들 듯
죄악주 배제 등 ESG 기조 강화 전망
주주권 행사 등 실효성 정책 수반돼야
  • 국민연금이 책임투자의 일환으로 네거티브 스크리닝(투자제한 및 배제 전략) 도입을 검토한다. 핵심은 ‘탄소배출 절감’이다. 앞으로 석탄 산업과 연관된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겠다는 것인데 포스코, 한국전력 등이 주요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이 당장 이를 고수할 경우 시장에 상당한 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선언'에 앞서 투자 제한 범위와 시기, 방법 등을 비롯한 세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열린 제 5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선 석탄채굴·발전산업에 대한 투자제한 및 배제 전략 도입 여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국제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탄소 절감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국민연금도 국내 가장 큰 공적 기관투자자로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데에 위원들의 중지가 모였다.

    국민연금의 이같은 논의를 하게 된 배경은 정치권과 환경 단체를 중심으로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 중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기후정상회의에서 “신규 해외 석탄화력발전소와 관련한 공적 금융지원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 또한 국민연금의 이번 논의를 서두른 원인으로 꼽힌다.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노르웨이중앙은행투자관리청(NBIM), 스웨덴연금(AP) 등 글로벌 연기금들 상당수도 석탄산업과 관련한 투자를 배제하고 있는 추세다. 국민연금 또한 이같은 흐름에 동참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할 수 있다.

    5차 위원회에선 네거티브 스크리닝 전략을 적용할 산업군을 어떻게 한정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과 구체적인 적용 시기와 방식 등에 대해선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르면 이달 말 열리는 기금위에선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이 마련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국민연금이 석탄 기업에 대한 직접 투자를 배제하기로 방침을 정할 경우 시장의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는 점이 부담이다.

    국민연금이 지난 10년간 직·간접적으로 석탄 산업에 투자한 규모는 약 10조원이다. 국내 연기금과 금융기관 가운데 가장 크다. 해외기업 주식이 약 2조9000억원, 국내기업 주식이 약 1조6000억원이다. 나머지는 한국전력과 발전 자회사 채권 등으로 구성돼 있다.

  • 석탄 산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국내 주요 기업은 한국전력·금호석유화학·GS·포스코·OCI·LG상사 등이다. 한국전력과 포스코는 석탄화력발전소에, 금호석화는 석탄터미널, OCI와 LG상사는 각각 석탄화학과 석탄거래 등의 사업에 투자했다. 모두 국민연금이 지분 8~11% 내외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달 말 기금위에서 방침이 정해지더라도 당장 이들 기업의 주식을 매도하거나 투자를 배제하는 조치까지 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머지 않아 직간접적인 충격파가 발생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의 전략 기조는 국내 주요 연기금·공제회의 향후 투자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국민연금 등이 자금을 위탁한 금융기관, 사모펀드(PEF)들도 해당 산업과 기업에 대한 투자를 꺼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대형 PEF 운용사인 IMM PE는 이미 투자 검토 단계에서부터 네거티브 스크리닝 절차를 거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주식과 채권, 대체투자 분야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작년말 기준 직접운용하는 주식자산 가운데 약 37.7%인 27조원에 대해 책임투자 기조를 적용하고 있고, 2022년까지 전체 자산의 절반에 대해 책임투자 방침을 적용할 계획이다.

    국민연금이 사회적가치(ESG) 투자 확대를 강조하고 있지만 기업 면담을 통한 경영 방식의 변화, 주주제안, 사외이사 파견 등 적극적 주주권 행사는 미흡했다. 네거티브 스크리닝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단기간 내 직접적인 투자 배제 원칙을 고수하기보다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는 방안도 과도기적 대안으로 제시된다. 탄소중립·탈석탄과 관련한 네거티브 스크리닝 전략 도입이 자칫 시장의 혼란만 부추키는데 그치지 않기 위해선 실효성 있는 후속 조치가 마련돼야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주요 LP 한 관계자는 “탄소중립·탈석탄과 관련한 정책적 논의가 이뤄지면서 기업들도 ESG기조에 발맞춰 사업 변화를 추진하는 등 긍정적인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면서도 “국민연금의 결정이 주요 연기금과 금융사, 투자자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시장의 혼란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네거티브 스크리닝 전략이 일명 '죄악주'에 대한 투자 배제 전략으로 이어질지도 지켜봐야 한다. 술·도박·담배 등의 산업은 물론 대량살상무기 등을 생산하는 기업들까지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 중 카지노 관련 기업은 롯데관광개발(10.5%), GKL(10%), 술과 담배 산업의 대표 기업은 하이트진로(7.7%), KT&G(11.5%) 등이 있다. 아직까진 국민연금이 해당 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을 줄이는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김용진 국민연금 이사장은 “네거티브 스크리닝을 어디까지 적용할지를 두고 기금위에서 상당한 논의가 있었고 대안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며 투자 제한 대상 확대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