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청산에 총력 기울이는 두산그룹…손에 쥔 남은 카드는
입력 21.06.24 07:00|수정 21.06.23 23:55
자산매각, 증자 통해 자구안 총력전
신사업 기대감에 주가 고공행진
“아직은 기대감 뿐”…기관 유입은 아직
자구안 이행 後 자금소요도 상당할 듯
두산건설 이르면 연내 SPA, 메카텍은 상시매물
퓨얼셀아메리카·전자BG IPO도 선택지
  • 2020년 산업은행으로부터 긴급하게 자금을 수혈받아 가까스로 자구안 이행에 나섰던 두산그룹은 빚 청산에 총력을 기울였다. 주력 사업과 비핵심 자산을 매각했고, 유상증자를 통해 주주들과 고통을 분담하며 조 단위 자금을 마련했다.

    그룹 외형은 크게 쪼그라들었지만 신사업을 전개하겠단 의지를 나타내며 주식시장에선 최근 가장 주목도가 높다. 그러나 재무부담이 여전하고 신사업의 성과가 실적으로 나타나기까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기대감만이 반영된 기업가치는 고평가란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구안 이행은 현재진행중이다. 국책은행으로부터 빌린 자금의 상환, 순손실에 대비한 자본유실을 막고 그룹의 정상화를 위해선 자금마련이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아직도 손에 쥔 카드가 몇몇 남아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두산그룹의 핵심인 두산중공업에 지원한 자금은 약 3조6000억원이다. 긴급운영자금(크레디트라인)지원과 추가투입 자금, 대출로 전환한 외화채권 5억달러(약 6000억원)를 모두 포함한 규모다.

    산업은행의 관리 체제하에 놓인 두산그룹은 주력 계열사를 매각해야 했다. 그룹의 핵심 캐시카우였던 두산인프라코어(8500억원)를 비롯해 두산솔루스(7000억원), 모트롤BG(4530억원), 네오플럭스(730억원) 등을 매각했다. ㈜두산은 상징과도 같던 두산타워를 8000억원에 팔았고 산업차량BG를 지배구조상 가장 밑단에 위치한 두산밥캣에 매각해 7500억원의 현금을 끌어올렸다. 두산중공업은 골프 산업 호황에 힘입어 클럽모우CC도 1850억원에 매각했고 지난해 말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약 1조2000억원의 자금을 마련했다. 모두 포함하면 약 3조원가량이다.

    일단 산업은행으로부터 받은 차임금 가운데 약 1조5000억원은 상환한 상태다. 남은 차입금 1조5000억원 가운데 두산인프라코어의 매각(8500억원)과 인프라코어 존속회사와의 합병(3500억원)을 통해 1조2000억원의 자금을 순조롭게 확보할 경우 이르면 연내 국책은행 차입금을 모두 상환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물론 국책은행의 자금을 상환하는 것만으로 회사 정상화를 논하긴 이르다.

    올해 1분기 기준 ㈜두산의 연결 기준 단기차입금은 약 6조5000억원 수준으로, 지난해 말에 비해 2000억원 이상 증가했다. 그룹의 핵심인 두산중공업 역시 개별 기준 단기차입금은 4조4000억원으로 같은 기간 4000억원가량 늘었다. 투자등급에 턱걸이 하고 있는 신용등급(두산 BBB, 두산중공업 BBB-)으론 회사채 같은 장기차입은 사실상 불가능 했기 때문에 기업어음과 전자단기사채 등 비교적 불안정한 자금조달 외엔 선택지가 없었다.

    재무적투자자(FI)와 소송을 진행함과 동시에 협상을 벌이고 있는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와 관련해선 최소 4000억원 이상의 자금소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도 만기가 돌아오는 50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 상환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두산그룹이 확보하고 있는 자산들을 꾸준히 매각하면서 유의미한 수준의 자구안을 이행한 것은 맞지만 그룹의 외형이 크게 작아졌고 실제로 돈을 벌어들이는 사업들이 별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재무적 이슈는 당분간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룹 정상화의 핵심은 역시 두산중공업의 사업적·재무적 회복이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두산중공업의 소형모듈원자로(SMR) 사업 확대 그리고 그린뉴딜에 힘입은 풍력사업의 성장, 수소와 가스터빈 사업 등이 주식시장에서 기대감으로 작용하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기대감일뿐 성과가 실적으로 나타나기까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중공업은 올해 분기 기준 2년 만에 순이익 흑자(2500억원)로 돌아섰다. 다만 해당 실적만으론 이자 비용을 지불하고 재무부담을 낮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 국책은행의 입김에서 자유로워진 이후에도 그룹 차원의 자체적인 현금 확보에 나설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는 두산중공업의 100% 자회사인 두산건설의 매각작업이 진행중이다. 일부 사모펀드(PEF)와 전략적투자자(SI)가 두산건설의 실사를 진행중이다. 이르면 연내 본계약(SPA)이 성사될 가능성도 있다. 두산중공업의 자회사인 두산메카텍은 상시 매물로 꼽힌다.

    대규모 자금마련 방안 가운데 가장 현실성 있게 평가받는 것은 ㈜두산의 사업부인 전자BG의 활용이다. 두산그룹은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국내 일부 사모펀드(PEF)들과 전자BG의 경영권 매각까지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솔루스·퓨얼셀·모트롤·산업차량 등 사업부를 모두 현금화한 ㈜두산의 남은 사업부 가운데 전자BG만이 유일하게 연간 1000억원 이상의 현금을 벌어들이는 알짜로 꼽힌다.

    그룹 차원의 자구안이 상당히 진척됐고 ㈜두산의 주가가 고공행진하면서 전자BG의 경영권 매각협상은 잠정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사업부 분할과 기업공개(IPO) 등은 추진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계 한 관계자는 “두산그룹이 전자BG의 활용법을 두고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며 “전자BG의 실적을 고려하면 조(兆) 단위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것도 무리가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시나리오로 꼽힌다”고 말했다.

    ㈜두산의 수소사업의 미국시장 전초기지와 같은 ‘두산퓨얼셀아메리카’의 기업공개(IPO)도 선택지 중 하나다. 지난 2014년 ㈜두산이 미국 클리어에지파워(CEP)를 3240만달러(약 380억원)에 인수해 설립한 퓨얼셀아메리카는 미국 내 건물용·산업용 인산형 연료전지(PAFC)를 생산하는 업체다. 지난해엔 매출액 2400억원, 순이익 90억원을 기록했다. 순이익 측면에선 다소 미미하지만 연료전지 시장의 성장세가 가파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평가다. 현재 두산퓨얼셀과 사업적 측면에서 다소 충돌하는 부분도 있는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실제로 ㈜두산은 내부적으로 해당 법인을 미국 시장에 상장하는 방안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퓨얼셀아메리카의 상장을 위한 본격적인 절차는 돌입하지 않았으나 내부적으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두산그룹의 사업적 주춧돌은 현재 두산중공업과 자회사인 두산밥캣 정도이다. ㈜두산→두산중공업→두산밥캣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지배구조가 앞으로 어떻게 변모할 지는 지켜봐야 한다. ㈜두산의 주주 절반 이상은 오너일가이다. ㈜두산은 자구안 이행을 통해 사업부를 대부분 현금화했고 오너일가에 배당을 끌어올릴 여력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두산밥캣’을 활용해 두산중공업의 재무부담을 낮추고 지배구조 개편을 동시에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