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타깃 1순위가 된 '네이버·카카오·쿠팡·배민'
입력 21.06.25 07:00|수정 21.06.28 10:20
쿠팡, 배송직원 최초 직고용에도 노조 타깃 1순위
직장 내 괴롭힘·갑질 파문의 네이버, 불씨 잠재
카카오, 복지차별·인사평가 논란에 전격 인사교체
CEO 사재출연·기부에도 호응 못얻는 배달의민족
  • 젊은 세대들의 '꿈의 직장'이 삼성전자·현대자동차에서 네이버·카카오·쿠팡·배달의민족, '네카쿠배'로 옮겨가고 있다. 모두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하며 호황을 누리는 곳들이다. 다만 빠르게 몸집을 키우는 만큼 성장통도 적지 않다. 'ESG 열풍 타깃 1순위'란 수식어까지 붙으면서 내부는 여느 때보다 시끄럽다는 얘기가 나온다.

    네이버·카카오·쿠팡·배민, 소위 말해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이 기업들은 최근 부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에 집중 조명을 받았다. ESG가 기업경영 새 목표가치로 급속히 확산되는 가운데 주된 평가 대상기업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이커머스 최초로 배송직원을 직고용한 기업이지만 노동조합 타깃 1순위로 꼽힌다.

    IT업계는 그간 노조 불모지로 여겨졌지만 쿠팡 내 물류센터 노조가 출범하면서 업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이들은 "우린 로켓 아닌 사람"이라며 ▲추가 휴식시간 제공 및 적정인력 확충 ▲쪼개기 계약 아닌 정규직화 원칙 ▲기본급 표준화 및 인상 등을 요구, 본격적인 단체행동에 나섰다. 노조는 창사 이래 업무상 사망사고는 단 1건이었다는 쿠팡 측 주장에 반발, "지난 1년만 해도 9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다"는 입장이다.

    쿠팡은 이를 두고 "어쩔 수 없는 사회 흐름으로 본다"면서도 주된 타깃대상이 된 점에 대해선 다소 억울함을 내비쳤다. 빠른 배송에 대한 소비자 요구가 높아지며 배송인력 유치를 위한 업계 내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쿠팡은 자체 배송인력인 '쿠팡친구'를 운영, 이커머스 중 유일하게 배송직원을 직고용하고 있다. ESG 흐름에 맞춰 나름대로 큰 돈 들여 투자하는 상황에서 '노동자 존중 없는 기업'으로 낙인 찍히는 데엔 다소 답답한 심정이다.

    카카오에선 성과 보상 및 인사 평가 등에 대한 뒷말이 무성했다. 회사는 전 직원에게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으로 최대 600주를 지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예상만큼 직원들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스톡옵션은 2년 이상 근무해야 행사할 수 있고 차익을 보려면 주가가 올라야 하다보니 대체로 "주식보단 현금이 좋다"는 반응이다. "고생한 이들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탈출하지 말란 의미가 내포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엔 "(카카오 직원들이) 다들 화가 많이 났다"며 "직원 보상은 짠데 대표 둘은 거액 인센티브를 챙겼다"고 분통을 터뜨린 글도 다수 게재됐다.

    지난달에는 일부 직원들에게 고급 호텔 숙박권을 지급하는 이른바 '고성과자 선별복지'를 추진하다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복지까지 성과와 연동시키느냐"는 내부 비판이 외부로 터져 나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여민수·조수용 공동대표는 물론 창업자인 김범수 의장까지 나서 직원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 결과 3년 이상 직책을 맡아온 전략인사실장(부사장)이 이달초 다른 내부인사로 교체됐고 동시에 관련제도 개선을 위한 특별전담팀(TF)도 신설됐다. 복지 강화안도 추가로 내놓았다. 본사 전 직원에게 연간 복지포인트 지급, 주택자금대출 한도를 최대 1억5000만원까지 늘리기로 했다.

    네이버도 최근 비슷한 문제로 '논란 기업' 반열에 올랐다. 지난달 한 직원이 상사의 갑질과 업무 스트레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있었다. 업계는 "터질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네이버는 당시 "사내 인사제도 결함 때문이라면 회사가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내부에선 점화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얘기가 많다. 네이버는 다른 IT기업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조직문화가 보수적으로, 내부는 사실상 대기업과 비슷한 분위기로 전해진다. 네이버 노조에 따르면 최근 설문조사에서 조합원 응답자 중 10%가 주52시간을 초과해 근무했다. 노동법에서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다.

    배민(우아한형제들)은 창업자까지 나서 '통 큰' 사회공헌을 공약했지만 여론을 반전시키지 못했다.

    김봉진 의장은 앞서 재산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회사를 매각하면서 받은 DH 주식가치 등을 포함하면 총 자산이 1조원에 이르는데, 이중 5000억원 이상을 기부하기로 했다. 최근엔 배민 소속이 아니어도 모든 배달원들이 의료비와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사재 20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출연했다. '독과점', '폭리', '(독일기업에 매각한)매국노' 등 부정적 수식어를 한번에 떨어버리기엔 본질에서 벗어난 공약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창업자들이 나서 경쟁적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내세우며 기업 이미지 반전을 꾀하지만 큰 박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사업 확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장통이란 지적과 함께 주관이 뚜렷한 MZ세대가 주 구성원이란 점이 영향을 끼쳤단 분석이 있다. 전통 대기업에 비해 젊은 세대 비중이 높은 만큼 조직문화에 대한 직원들의 요구가 가장 빠르게 반영되고 있다는 평가다.

    IB업계 관계자는 "네카쿠배는 최근 주가와 실적이 가장 좋으면서도 내부 불만은 가장 시끄러운 곳들이다. CEO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재벌들과는 다를 것이란 기대감에 더 부각된 것도 있겠지만 스타트업 시절부터 오랜기간 키워온 직원들의 불만도 무시할 수 없다. 사회적 가치 변화, 그리고 급격히 몸집을 키워가는데 따른 조직 운용 기준 전환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란 입장을 내놨다.

    네카쿠배를 필두로 기업들에 대한 'ESG 요구'는 점차 확산될 전망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기업들에 ESG 문화가 안착되기까지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계속될 가운데 타깃 정조준을 피하긴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들에 대한 엄격한 잣대는 IT분야 스타트업뿐 아니라 전통 대기업으로도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