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했던 대우건설 매각, 최고가도 공정성도 놓친 KDB인베스트먼트
입력 21.07.06 07:00|수정 21.07.07 09:43
매각 서둘렀지만 원매자는 적고 금액 놓고 잡음
최고가 중흥 잡기 위해 가격 낮추는 재입찰 단행
중흥도, 입찰 자격 따지는 PEF도 만족하기 어려워
매각 룰 혼선…KDBI “명분 저해하려 한 적 없다”
  • KDB인베스트먼트(KDBI)는 대우건설 매각 절차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며 위기를 자초했다. 매각을 서두른 탓에 충분한 원매자를 찾지 못했고, 원매자의 붙잡아두기 위해 사상 초유의 재입찰을 진행하기도 했다. 경기의 심판이 중심을 잡지 못하다 보니 인수전의 승자도 패자도 뒷맛이 씁쓸할 수밖에 없다. 뒤늦게 매각의 당위를 설명하지만 공감을 얻기 어려운 상황이다.

    5일 KDBI는 중흥컨소시엄을 대우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DS네트웍스-스카이레이크컨소시엄을 예비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대우건설이 10여년 만에 산업은행의 품을 떠날 가능성이 커졌는데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달 입찰에선 중흥컨소시엄이 DS네트웍스 쪽보다 수천억원이나 많은 금액을 써내며 인수가 유력했지만, 중흥컨소시엄은 이에 불만을 표하며 발을 빼겠다는 뜻을 매각자에 전달했다. KDB인베스트의 표현대로 ‘M&A는 매도자와 매수자의 게임’인데 게임 진행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이 드러났다.

    KDBI는 이번 매각에서 정식 입찰 공고를 진행하지 않았다. 산업은행처럼 국가계약법의 적용을 받진 않지만, 그 100% 자회사기 때문에 이례적인 행보로 비춰졌다. KDBI는 여러 원매자들이 있었고, 그 원매자들을 놓치면 매각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판단해 공고 없이 제안서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실사 기간은 짧았다. 원매자들엔 3~4주가량의 실사 기간이 부여됐는데, 인수후보들간 차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어떤 후보는 먼저 실사를 진행해 출발선이 달랐고, 또 다른 후보들은 대우건설 내부 사정에 밝은 자문사를 선임하기도 했다. 이는 보통 원매자가 감수해야 할 불평등 요소긴 하지만, 이번엔 일부 후보들에 과도한 편의가 주어진 것 아니냔 지적도 나왔다.

    결과적으로 대우건설 매각은 큰 흥행이 되지 않았다. 관심을 보였다던 원매자 중 상당 부분이 일찌감치 발을 뺐고, 외국계 후보들은 이번에도 매각 흥행을 위한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점이 드러났다. 호반건설도 막판까지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지난 매각 막판 발을 뺐으니 훨씬 많은 자금을 제시할 것이란 이야기가 입찰 당일까지 있었지만 결국 참여하지 않았다.

    호반건설의 부상 가능성에 긴장했던 곳은 중흥컨소시엄이었다. 스카이레이크보다 수천억원이나 많은 금액을 쓰게 되자, 내부 검토를 거친 후 발을 빼겠다는 뜻을 KDBI에 전했다. KDBI는 시장가보다 훌쩍 높은 가격을 제시 받았지만, 500억원의 입찰 보증금은 양해각서(MOU) 체결 단계에서 받기로 해 중흥건설을 잡을 수단이 없었다.

    이에 KDBI는 초유의 재입찰을 결정했다. KDBI는 한 인수후보가 제안을 수정하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고, 이에 수정 제안서를 받았으며, 다른 후보에도 원하면 수정하라는 뜻을 전했다고 설명했다. 한 인수후보는 가격을 낮춰서 제시했고, 다른 후보는 높여서 제시했다. KDBI는 2조원대 금액은 지켰지만, 처음 받았던 제시안보다는 낮아진 금액을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보통은 가격을 받아들고 경쟁을 붙이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엔 최고가 원매자를 잡기 위해 가격 인하를 감수했다. 어찌됐든 중흥건설의 편의를 봐준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공정성 논란은 패자 쪽에서도 나올 만한 상황이다. KDBI는 이번 대우건설 매각에서 가격 조정한도를 3%로 정했는데, 중흥컨소시엄은 최초 제시가를 높이되 가격 조정 한도를 그보다 늘리길 희망했다. 사모펀드(PEF) 컨소시엄은 가격 변동시 완충력이 크지 않을 수밖에 없다. 매각자가 정한 기준에서 어긋난 제안을 했으면 적격 후보로 볼 수 없고, 자신들에 인수 우선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할 만했다.

    KDBI는 매각자가 룰을 정해도 원매자는 5%나 10%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각 절차의 공정성 문제도 없을 것이란 분위기다. 산업은행은 과거 대우조선해양이나 아시아나항공 매각에서도 시작 전부터 확실한 원매자를 잡아둬 거래 종결의 확실성을 높였다. 대우건설 매각은 이전 호반건설 사례가 있으니 매각 종결성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KDBI는 이번 거래에서 매각 대금 극대화, 거래종결의 확실성, 신속한 거래 완료, 공정한 절차 진행의 원칙을 적용했다고 밝혔지만 어느 것 하나 속시원히 충족한 것이 없는 모양새다. 이대현 KDBI 사장은  “한 번도 이익을 취하기 위해 큰 명분을 저해하려고 한 적이 없다”고 말했는데, 이는 거래 무산 위기를 넘은 후의 자기 위안에 가까워 보인다.

    KDBI는 산업은행을 등에 업고 PEF 시장에 연착륙 했지만, 투자회수 역량엔 의문 부호가 붙었다. 시장의 호황 덕에 대우건설을 산업은행에서 분리할 기회를 만들어낸 것은 공이라 할 만하지만, 아마추어적인 일처리로 민간 운용사와의 격차만 다시 확인했다. 일처리가 매끄럽지 않으니 '조속한 경영 안정화' 목표 달성도 늦어지게 됐다. 한번 기선을 내준 터라 중흥컨소시엄과의 협상 과정도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