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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보다 더 나쁜 것은 실패를 숨기는 것, 그보다 더 나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 실패조차 없는 것”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달 1일 열린 올해 롯데그룹 하반기 가치창조회의(VCM)에서 ‘미래 관점의 투자’와 ‘과감한 혁신’을 거듭 강조했다.
롯데그룹은 이번 VCM 시기를 예년보다 보름이나 앞당기면서 ‘전열 정비’에 대한 조급함을 내비쳤다. 그러나 시장에선 “롯데가 또 ‘회장님 메시지’로만 혁신을 말한다”는 냉소적인 평가가 나온다. 올 초 VCM에서도 신동빈 회장은 비슷한 메시지로 ‘혁신’을 주문한 바 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그 동안 롯데가 보여준 ‘혁신 사례’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총성없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현재 국내 유통시장에서 롯데그룹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신세계그룹은 야구단, W컨셉, 이베이까지 공격적으로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재무부담은 커지지만 어쨌든 기대감도 오르고 있다. 쇼핑 플랫폼 1위인 네이버도 신세계, CJ대한통운 등과 '합종연횡'을 맺고 이커머스를 확장하고 있다. ‘새로운 공룡’ 쿠팡은 미국 상장 이후 들어온 자금으로 국내외에서 무섭게 사세를 넓히고 있다. 적극적인 인재 영입으로 유명한 쿠팡은 업계에서 ‘인재 블랙홀’로 불린다.
상반기 국내 M&A(인수합병) 시장에서 가장 관심이 쏠린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도 롯데는 신세계그룹에 승기를 내줬다. 물론 롯데쇼핑의 재무상황을 고려하면 ‘오히려 샀으면 큰 일’이라는 평도 적지 않다. 여전히 고전 중인 ‘롯데온’과의 시너지도 쉽지 않았을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롯데가 이번에는 뭔가 보여주길’ 기대했던 시장의 실망이 큰 것도 사실이다.
이베이코리아 딜을 차치하고도, 롯데가 제시하는 대안이 없다는 게 문제다. 'M&A 추진, 활발한 투자'를 얘기하지만 보이는 '액션'이 없다보니 "아무것도 안하는 게 더 나쁘다"는 메시지가 모순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두고도 롯데쇼핑 내부에선 ‘미래 시너지’ 고려 보다는 ‘덜컥 샀다가 비용이 더 들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앞섰다는 후문이다.
신동빈 회장은 이번 회의에서 "창의적으로 업무를 추진할 수 있는 핵심인재 확보에 우리의 성패가 달려있다"며 "핵심 인재가 오고 싶어하는 회사를 만들어줄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회장님 주문'을 따르기에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최근 롯데쇼핑 내부에서는 "난파(難破)하는 배를 보는 것 같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나마 패기있는 핵심인력들은 쿠팡 등 이커머스 회사로 대거 이직하거나 ‘이직 준비 중’이라고 한다. 주니어급은 물론이고 실무를 진두지휘 해야하는 부장급 인사까지 회사를 떠나면서 책임 지고 혁신을 추진할 사람이 전무한 분위기라는 것.
롯데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지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전반적으로 중심에서 그룹 전체를 컨트롤하는 지주의 역할이 명확하지 않고, 전적으로 각 계열사의 CEO의 역량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 공통된 평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지난 몇 년 간 롯데지주의 IR(Investor Relations) 담당이 연락할 때마다 바뀌면서 그룹 전반에 대한 기본 정보를 얻기조차 힘들다"며 "잦은 인력 이탈에 대해 이유를 물어보면 공채 출신, 외부 출신을 막론하고 '조직의 답답함'을 호소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롯데그룹의 '양 축' 중 하나인 화학 부문에 거는 기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롯데케미칼이 지난 1분기 호실적을 올리는 등 실적이 나쁘진 않지만, 업황에 크게 좌우되는 부문인 만큼 올해 하반기나 내년에 업황이 꺾이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롯데의 화학 계열사들은 전통 화학기업으로서 '원래 잘 하는' 분야에서는 입지를 갖고 있지만 '다음 단계'를 볼 만한 신사업은 부족한 상황이다. 롯데의 화학 부문은 이번 회의에서 플라스틱 재활용, 모빌리티·배터리, 수소, 친환경 소재 등 4개를 신사업 영역으로 선정해 2030년까지 9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다만 SK, LG, 한화 등 화학 계열사를 가진 타 대기업들이 일찌감치 미래 먹거리 찾기에 전력을 다해 온 것에 비해 '한 발 느린' 감이 없지 않다는 평이다.
이번에도 신동빈 회장은 "새로운 미래는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다"며 과거의 성공 경험을 과감히 버리라고 말했다. '회장님 말씀'이 무색하게 시장에서는 "불과 몇 년 사이에 비해 롯데의 시장 내 위상이 급격히 떨어졌는데, 아직도 롯데는 정확한 자기진단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이제는 정말 롯데그룹이 ‘회의’를 통한 혁신이 아닌, 실제 '변화'를 보여주지 않으면 '과거의 성공'을 말할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을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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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7월 05일 17:17 게재]
또다시 ‘회장님 메시지’로만 혁신을 말한 롯데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