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 대신 야놀자 택한 손정의…나스닥 가기 전 몸집 불리기 예고
입력 21.07.13 07:00|수정 21.07.14 07:29
이번주 주주 설명회 열고 본계약 전망
10조원 기업가치 인정, 10% 남짓 지분 확보 계획
기존 주주들 일부 지분 매각 가능성도
비전펀드 자금 유입된 이상 국내 상장은 힘들 듯
美 증시 상장전 투자금으로 대규모 M&A 나설 전망
  • 손정의 소프트뱅크(Softbank)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가 국내 숙박 플랫폼 업체 야놀자에 1조원가량을 투자할 전망이다. 이번 투자에서 책정된 야놀자의 기업가치는 약 9~10조원. 앞으론 국내 증시의 상장보단 더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미국 증시 입성을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할 것이란 전망이 합리적이다.

    이번에 유치할 투자금은 야놀자의 상장 전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글로벌 플랫폼의 M&A와 고객군 증가를 위한 마케팅 비용에 대거 투입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1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야놀자 측은 비전펀드와 투자 유치 협의를 마쳤다. 이번주 내로 야놀자의 주주들에게 최종적으로 구체적인 투자 구조 및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갖는다. 이르면 이번주 투자유치를 위한 본계약(SPA)을 체결할 가능성도 있다.

    기업이 외부의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선 주주 설득 과정이 필수적이다. 신규 투자자를 유치할 경우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이 희석됨은 물론 주주간계약 조건에 위배할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존 투자자들이 자금을 투입할 당시보다 더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기존 주주들이 납득 할만한 합리적인 수준의 조건이 뒷받침 돼야한다. 현재 야놀자의 국내 주주사는 한화자산운용·SBI인베스트먼트·아주IB투자·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싱가포르투자청(GIC) 등 국내 금융기관 및 벤처캐피탈(VC), 사모펀드(PEF) 및 해외 연기금 등으로 구성돼 있다.

    야놀자 투자유치 과정에선 회사와 주주들 간 큰 잡음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소프트뱅크·비전펀드라는 글로벌 투자업계의 상징적인 투자자가 등장했다는 것을 차치하고, 불과 2년 만에 기업가치를 10배 이상 인정받았기 때문에 밸류에이션(기업가치평가)에 대한 이견을 제시하기 어려운 상황인 게 사실이다.

    실제로 야놀자가 지난 2019년 6월 GIC와 부킹홀딩스로부터 1억8000만달러(약 21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할 당시 기업가치는 10억달러(약 1조1100억원) 수준이었다. 당시 야놀자는 국내 7번째 유니콘 기업에 오르며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었으나 불과 2년만에 데카콘 반열에 등극하며 다시 한번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야놀자 투자는 비전펀드의 네 번째 국내 기업 투자임과 동시에 네번째 여행·플랫폼 기업의 투자이다. 사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과거 글로벌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Aitbnb)에 투자 실패를 상당히 아쉬워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비전펀드를 통해 2018년 오요(OYO), 2019년 겟유어가이드(GetYourGuide)와 클룩(KLOOK)에 차례로 투자하며 여행 관련 플랫폼 업종에 대한 큰 관심을 나타내 왔다. 이번 투자 또한 손 회장의 해당 업종에 대한 성장성에 베팅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전펀드는 이번 투자에서 일부 주주들이 보유한 주식(구주) 일부를 매입하고 동시에 신주를 인수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구주 인수 규모는 주주들간의 협의와 이해관계에 따라 변동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로선 기존 주주들의 주주간계약은 큰 변동사항이 없을 것으로 전해진다.

    IB 업계 한 관계자는 “비전펀드가 야놀자에 대한 투자를 확정하고 이르면 이번주 최종 계약을 맺을 계획”이라며 “비전펀드가 책정한 기업가치를 고려할 때 국내 증시보단 미국 증시 상장으로 가닥을 잡고 경영 계획을 구체화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야놀자는 지난해 국내 상장을 목표로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을 공동 대표주관사로 선정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해외 상장으로 가닥을 잡은 현재로선 일정이 다소 늦춰질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 야놀자가 나스닥 행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현실적인 이유다.

    국내 상장이 거론될 당시만 해도 약 3~4조원, 최대 5조~6조원 규모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것으로 전망됐으나 이번 투자유치로 인해 눈높이를 더 낮출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됐다. 국내 증시에 풍부한 유동성이 머물러 있긴 해도 역시 10조원 이상의 밸류를 인정받기엔 무리가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비전펀드의 가세로 국내 주주들 또한 더욱 높은 투자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됐기때문에 주주사들의 동의와 지지를 이끌어 낸다면 미국 증시 상장을 위한 준비 작업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쿠팡이 나스닥에 상장하며 100조원의 기업가치를 일시적으로 달성한 것을 확인한 비전펀드 입장에선 투자금 회수의 극대화를 기대해볼 만한 시점이기도 하다. 손정의 회장이 놓친 에어비앤비의 상장 사례를 야놀자의 투자금 회수 가능성도 기대해 볼만 하다.

    지난해 에어비앤비가 PEF 운용사 실버레이크(Silver Lake), 투자회사 식스 스트리트 파트너스(Six Street Partners)로부터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을 투자받을 당시 인정받은 기업가치는 약 260억달러(약 30조원)이다.  지난해 12월 에어비앤비의 상장 첫 날 주가는 공모가를 2배 이상 상회했고 현재 에어비앤비의 시가총액은 100조원 내외로 형성돼 있다.

    든든한 우군을 얻은 야놀자는 일단 나스닥 상장을 위한 기업의 성장 스토리를 써내려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야놀자엔 하버드 출신의 김범석 쿠팡 의장, 골드만삭스 출신의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이사와 같이 미국 증시에서 거론될 만한 창업주의 화려한 이력이 없다. 대신 회사는  글로벌 기업 출신의 전문가들을 영입하며 몸집을 불려왔다.  맥킨지컨설팅 출신의 김종윤 클라우드부문 대표, PwC와 KPMG를 거친 배보찬 경영부문 대표, 테슬라코리아 대표이사 출신인 김진정 오프라인 부문대표가 꼽힌다. 이번 비전펀드의 투자유치는 김종윤 대표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 10조원의 기업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현재의 사업 및 매출구조를 더욱 탄탄히 만들어 내야하는 과제가 남는다. 회사는 2019년 연결기준 2450억원과 영업적자 100억원을 기록했다. 2020년 개별기준으론 매출 1920억원, 영업이익 161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국내에 한정한 사업모델이 주를 이루다보니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야놀자는 지난 2018년부터 동남아 이코노미 호텔 체인 젠룸스, 호텔자산관리 시스템(PMS)을 개발하는 인도의 ‘이지테크노시스’ 등을 인수하며 해외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이번 투자 유치 이후 손정의 회장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일본 및 동남아 국가의 여행 플랫폼 사업 투자 확대 기조가 강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IB 업계 한 관계자는 “손정의 회장이 이번 투자 이후 야놀자의 투자 포트폴리오 강화를 위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했다”며 “오라클에 이은 글로벌 2위 수준의 여행 플랫폼 업체로 성장하기 위해 투자금의 상당수가 사업 확장을 위한 글로벌 M&A에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