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K-배터리 전략, 역주행 하면서 부담은 민간에 떠넘기기
입력 21.07.20 07:00|수정 21.07.21 10:11
K-배터리전략서 민간 몫 명시된 해외자원개발
자금 지원하겠다지만 편성된 예산은 '역주행'
40조 출처는 민간…탈원전에 인프라는 '후퇴'
민간 혁신 노력 정부 계획에 짜맞춘 무리수
  • "14조원을 투자했는데 수업료도 건질 게 없다"

    공기업 해외 자원개발 사업 부실 문제를 검찰에 수사 의뢰한 전 산업부 장관의 발언이다. 이어 정부는 광물자원공사 통·폐합안을 발표하고 구조조정 작업에 들어갔다. 에너지 공기업 부실화로 이어진 무리한 해외 자원개발을 끊어내겠다는 의지였다.

    이번 K- 배터리 전략에서 해외 자원개발 사업은 민간 몫으로 부활했다. 보도자료에는 "안정적 공급망을 갖춘 튼튼한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적혀 있다. 구체적으로는 민간 기업의 해외 소재 광물 개발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작 산업부는 현재 광물공사가 보유한 멕시코 볼레오 구리 광산,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니 니켈·코발트 광산, 코브레파나마 구리 광산의 매각 작업을 추진 중이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노력해 배터리 1등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하지만 정부만 역주행하는 모양새다.

    전략 발표 한 달 전 국내 배터리 업체는 산업부 측에 정부 차원에서 자원개발 사업을 지속 추진해달라는 요구를 전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해외 자원개발 사업은 민간 몫으로 못 박아버렸고 정부 보유 광산 매각 작업에도 변함이 없다.

    해외 자원개발에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원래 리스크가 높다 보니 민간이 직접 나서기 어렵다. 개발 과정에서 탄소 비용이 증가해 ESG 측면 부담도 크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해외 광산 업체에 지분 투자하거나 배터리 가격에 광물 가격 연동제를 적용해 원자재 수급에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처방으로 보기 힘들단 지적이 많다.

    정부 측에서 민간이 개발에 나서면 융자 등 자금 지원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예산 편성은 거꾸로 가고 있다.

    올해 해외 자원개발 특별융자사업 예산 규모는 지난 2019년 367억원에 이어 349억원이 책정돼 역대 최저를 갱신했다. 14년 전인 2007년 융자 예산 4260억원에 비하면 10분의 1토막 이하다. 배터리 핵심 소재인 니켈 선물 가격이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완전한 역주행이다.

    K-배터리 전략이 정부 역주행 속에 출범한 배경은 지난해 공표된 제6차 해외자원개발 기본계획에 있다. 6차 계획에선 2001년 1차 기본계획 수립 때 선정한 8대 전략 광종과 자주 개발율 성과 지표가 모두 사라졌다. 당시 관련 업계에서는 국내 정유 및 정·제련 산업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을 갖추고 있고 95% 이상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8대 광종 대신 희유금속 원료 자원 확보에 맞춰 계획을 수정하는 게 맞느냐는 문제가 제기됐다. 해외 자원개발 성과와 피드백 모니터링도 불가능해졌다.

    대신 6차 계획에선 민간 기업 투자 활력 제고를 주요 정책 과시로 제시했다. 정부는 손을 떼고 민간을 지원하는 방향이 이미 작년에 수립됐다는 이야기다. 여당도 한몫 거들었다. 지난 1월 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한국광해공단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3월 9일 제정되며 공기업의 해외 자원개발은 사실상 법으로 금지됐다.

    대통령 공포 6개월 뒤인 오는 9월 10일 광해공단법이 시행된다. 이제 국내 배터리 업계는 300억원 규모 융자지원에 기대 직접 개발에 나서거나 정부가 매물로 내놓은 광산을 인수해야 할 지경이란 말이 나온다. 산업부는 헐값에 팔지 않기 위해 매각 시한을 정해두지 않았다면서도 국내 기업 우선 매각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거꾸로 말하면 국내 기업이 정부가 적폐 딱지를 붙인 광산 매물을 제값에 떠안으라는 이야기다.

    K-배터리 전략과 관련한 정부의 황당한 태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전략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40조원 투자 계획은 모두 민간 몫이다. 전략 발표식의 사실상 호스트이자 맏형 격인 LG화학이 15조원 투자 계획을 밝혔지만 업계에선 뒷맛이 쓰다는 반응이다. 성장성이 가파르다는 점을 제하면 당장 하반기도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미국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되며 친환경 규제에서 전향적 태도를 보일 거라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쟁송에서 극적인 합의를 이루고 미국 시장에 조 단위 뭉칫돈을 투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내 3사의 경우 글로벌 톱 티어 지위에 있다 보니 글로벌 완성차 업체나 각국 정부가 쏟아내는 정책에 대응하자면 국내에 얼마를 투입하겠다고 못 박아두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 중국에서 정책을 쏟아내는 데다 기관투자자 압박도 심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는 미리 투자 계획을 꺼내놓는 데 리스크가 크다"라며 "아직 성장 초입 단계고 워낙 장기 계획인 데다 조달 전략도 계속 바뀌고 있어 결국 정부 장단에 맞춰주는 그림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여기다 정부 보유 광산은 팔면서 민간이 직접 하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꼬집었다.

    정부가 배터리 산업을 반도체에 버금가는 자랑거리로 삼고 세제혜택 등 지원 의지를 내비친 것 자체는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업계 안팎에선 민간의 혁신 노력을 정부의 독단적인 판단과 계획에 끼워 맞추다 보니 무리수가 펼쳐진단 지적이 상당하다. 정작 정부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선 영역 구분을 전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배터리 산업을 추켜세우는 동안에도 전기차 충전요금 할인율은 반 토막 났다. 전기료 인상 때문이다. 탈원전 후폭풍이란 비판이 거세다. 탈원전 정책이 충전 인프라 및 배터리 생태계 확장의 발목을 잡을 거란 지적이 꾸준히 나오지만 여기서도 정부는 아랑곳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수업료 운운하던 전 장관은 원전 가동 필요성을 보고받자 담당 공무원에게 "너 죽을래"라고 말했다가 기소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