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에 이어 물류까지…기준도 대책도 모호한 일감몰아주기 개선책
입력 21.07.21 07:00|수정 21.07.22 10:48
물류 기업 대상 자율규범 마련
자발적 참여? 사실상 선전포고
기준은 모호, 현실적 대안도 미흡
급식에서 물류로, 다음은 SI 계열사로
  • 급식 일감몰아주기 개방에 나선 정부가 이번엔 대기업 물류 사업을 타깃으로 삼았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시장 개방에 나설수 있도록 유도하겠단 취지이지만 사실상 일감을 전면 개방하라는 정부의 선전포고와도 같다. 내부거래 비중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낮춰야 정부의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지 여부는 모호하다. 현실적으로는 대기업의 물류사업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업도 찾아보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앞으론 물류 사업에 이어 시스템통합(SI) 사업도 규제 사정권에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이달 초 국토교통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마련한 상생 협약식에는 국토부장관과 공정위원장, 삼성전자(이인용 사장)·현대차(윤여철 부회장)·LG전자(배두용 대표)·롯데쇼핑(강성현 대표)·CJ제일제당(최은석 대표) 등 주요 대기업 사장단이 참석했다. 물류 기업에선 삼성전자로지텍·현대글로비스·LX판토스·롯데글로벌로지스·CJ대한통운 사장단이 참석했다.

    정부의 물류시장 거래 환경 개선안은 크게 ▲일감개방 자율준수 기준을 세우고 ▲물류서비스 표준계약서를 보급하는 게 핵심이다. 대기업집단 소속 물류 기업의 내부거래 비중은 37.7%로, 다른 모든 산업의 평균 12%를 크게 상회한다는 것이 이번 개선안의 출발점이다. 정부는 이제껏 대기업 집단이 수의계약을 통해 내부거래 물량을 확보함으로써 물류업계 전반의 경쟁력 강화를 제약하고, 독립·전문 물류기업의 성장을 저해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기업 화주 측의 자율준수 기준에는 ▲투명한 절차에 따라 거래 상대방을 선정함과 동시에 ▲성장 잠재력이 큰 독립·전문 물류기업의 직접거래를 확대할 것이란 내용이 담겼다. 계열회사라는 이유로 우선권을 주지 말라고 사실상 외부에 맡기란 의미에 가깝다.

  • 대기업이 협력업체를 선정함에 있어 절차적 정당성을 보장하라는데 이견을 다는 이들은 많지 않다. 다만 현실적인 대안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100% 자회사인 삼성전자로지텍은 삼성전자의 제품의 배송과 설치를 전담한다. 쉽다시말해 TV와 에어콘, 빌트인 가전 등 삼성전자 제품을 가정과 기업체에 배송하고 설치하는 역할을 맡는다. 단순 배송을 차치하고 삼성전자 제품의 이해도가 없이는 불가능한 사업이고, 삼성전자의 서비스 측면에 가깝다는 평가도 있다.

    현대차그룹의 물류를 담당하는 현대글로비스는 완성차 및 부품을 국내 및 해외에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한다. 국내 매출만 갖고 판단하는 공정위 기준 내부거래 물량 비중은 약 21.6%이다. 매년 비중이 줄어들고는 있으나 현재 수준 이상으로 낮추는 데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국내에서 완성차를 수출할 수 있는 기업은 사실상 현대글로비스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룹사 일감을 빼앗길 처지에 놓인 물류 기업의 자율준수 기준에는 ▲물류전문 인력 육성과 고용 증대를 위해 노력 ▲장비·운송수단·해외인프라 등 물류자산에 대해 지속적으로 투자 ▲녹색물류를 위한 기술개발 ▲3자 물류거래 비중 확대, 그리고 국내 물류시장의 발전과 혁신을 주도할 것이란 내용을 포함했다.

    정부는 이번 자율기준을 지키지 않는다고 불이익이 없는 만큼 강제조항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그리고 “그동안 재벌개혁과 관련해 경성규제로 접근했으나 앞으론 연성규범을 함께 병행하려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사실 자율적으로 기준을 준수하는 형태를 띄고 있으나 최근 수천억원 대의 삼성웰스토리의 과징금 부과에서 볼 수 있듯 일감몰아주기, 내부거래에 대한 명확한 기준선 없기 때문에 언제든 규제 사정권에 들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공정위는 일부 경쟁업체와 시민단체의 신고만으로도 조사에 착수할 수 있고, 조사 결과에 따라 검찰에 고발이 가능하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차라리 내부거래의 기준 및 비중 등에 대한 명확한 상한선을 정해두고 기업들에게 충분한 유예기간을 부여한다면 오히려 자정 노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는 기업들에 알아서 해보라는 식으로 던져놓은 방식의 정책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대기업 물류 기업의 방향성에 대한 불확실성은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자율준수 기준의 대상에는 기업집단 내부의 물류 거래 뿐만 아니라 기업집단에 소속한 회사는 아니더라라도 총수일가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회사의 거래에도 광범위하게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사실 ‘밀접한 관계’란 단어 자체는 모호하지만, 공정위가 지정한 사익편취 규제대상 기업들이 그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2020년 기준 사익편취 규제대상은 대기업집단 50곳의 계열사 총 210곳이다. 올해 말부터 기준이 강화하기 때문에 사익편취 규제대상에 해당하는 기업의 수는 이보다 크게 증가한다.

    공정위는 물류산업과 별개로 대기업 SI 사업에도 일감 개방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삼성SDS, LG CNS, SK㈜C&C, 포스코ICT 등 계열사들이 사정권에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 SI의 일감 개방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지속해 왔으나, 보안과 정보유출의 이유를 비롯해 기업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드러내야하는만큼 보다 세밀한 정책 방향이 설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IT 업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 SI를 비롯한 IT 서비스는 상당히 민감한 정보와 구체적인 데이터를 다루기 때문에 외부에 맡길 수 없는 업종의 특성이 강하다”며 “상생과 협력이란 정부의 취지는 이해할 만하지만 보다 현실적인 정책이 마련돼야만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