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실명계좌'는 피해도 '수탁사업'은 원하는 은행
입력 21.07.21 07:00|수정 21.07.20 17:49
가상자산 성장성에 발을 걸쳐놓는 상황
블록체인은 은행망이 필요 없다는 시각도 존재해
  • 시중은행들이 가상자산 수탁사업(커스터디ㆍCustody)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와 실명계좌발급 제휴는 피하려고 하면서도 수탁산업 피하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지난 12일 우리은행은 블록체인 기업 코인플러그와 함께 가상자산 수탁사 ‘디커스터디’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11월 블록체인 기업 해치립스, 블록체인 투자사 해시드와 함께 가상자산 수탁업체 한국디지털에셋(KODA)를 설립했다. 신한은행도 지난 1월 커스터디 전문 기업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에 지분 투자를 했다. 하나은행은 현재 면밀히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커스터디란 금융자산을 대신 보관하고 관리해주는 서비스로 기관투자자를 고객으로 한다. 더 나아가 가상자산 보관 외에 가상자산 결제와 정산, 가상자산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등 운용 업무로 범위를 넓힐 수도 있다. 최근에는 가상자산 시장이 커지며 관련 업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글로벌 디지털자산 금융 서비스 기업으로 알려진 비트고(BitGo)는 기관으로부터 몇 십조원을 수탁업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행은 자금세탁방지 검증 책임에 부담감을 느껴 실명계좌 발급은 피해도 가상자산 수탁업무의 성장성에는 베팅하는 분위기다.

    현재 시중은행 가운데 가상자산 거래소에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를 내어주고 있는 곳은 NH농협은행과 신한은행 두 곳뿐이다. 실명계좌를 잘못 내줬다가 해당 거래소에서 해킹이나 자금세탁과 같은 사고가 발생하면 시중은행은 연대 책임에 휘말릴 수 있어 은행들은 계좌 발급을 점차 피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코인에 대한 규제가 심하지만, 신사업이라 생각하는 만큼 가상시장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수탁사업에 진출해 발을 걸쳐놓고 있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 가상자산 수탁산업에는 잇따라 진출 중이다. 이는 최근 이어진 은행들의 사모펀드 기피 현상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모펀드 사태로 금융 당국이 수탁업자의 책임을 강화하자 리스크는 높고 수익성은 적은 구조가 되어 은행이 관련 수탁업을 예전만큼 선호하지 않게 됐다. 그 빈자리를 가상자산 수탁산업으로 메우고 있는 셈.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비이자이익을 챙겨야 하는 은행으로서는 사모펀드 수탁산업이 위축된 상황에서 디지털 커스터디 사업이 앞으로 커질 거라 전망, 사업적인 측면에서 포트폴리오에 넣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시에 '신산업에 앞장서는 은행'이라는 이미지 구축효과도 거론된다. 즉 가상자산 수탁사업에 진출하는 은행은 코로나19 계기로 생존에 필요조건이 된 금융사의 디지털 전환(DT)에 앞장서고 있다는 모습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 한 블록체인 연구원은 “이제 막 태동단계이기 때문에 은행들이 당장 큰 매출을 올린다기보다 금융이 블록체인과 연계되는 시점을 보고 들어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활발해진 움직임에는 9월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수리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안에 따라 가상자산사업자는 오는 9월 24일까지 금융정보분석원에 사업자 신고서를 제출해 수리 절차를 밟아야 영업할 수 있다. 가상자산 수탁업자도 가상자산 거래소처럼 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 등 요건을 갖춰 신고 수리를 받아야 영업할 수 있어서다.

    다만 블록체인은 은행망이 필요 없는 서비스라 수탁사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 핀테크 업체 대표는 “블록체인의 특징이라든지 편의성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은행은 오프라인 금고까지 설립하는 아날로그식 접근을 했다”라면서 “은행이 가상자산을 수탁사업을 진행한다는 움직임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힘들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