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홍 대표, 서종군 전무 그리고 낙하산…파국 예고된 성장금융 트로이카 체제
입력 21.09.09 07:00
Invest Column
20조 뉴딜펀드 운용자리에 청와대 출신 경력없는 낙하산 인사
성 사장·서 전무, 출신 배경 및 성향 달라 불편한 관계
투자운용 주도권 싸움 혹은 보은성 인사라는 평가도 나와
경영진 의견 조율 애먹을 듯…향후 투명성 악화 우려
  • 한국판 뉴딜펀드의 투자를 총괄할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 본부장 자리에 청와대를 거친 인사가 내정되며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금융투자 경험이 일천한 낙하산 인사가 20조원이나 맡게 되면 정략적 판단에 따른 무리한 운용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성장금융은 기존에도 성기홍 대표와 서종군 전무(투자운용1본부장)는 성향과 역할 차이로 사이가 원만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제 제3의 인사까지 끼어들며 임원간 수월한 의사 조율을 기대하기는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무리한 운용과 부실한 실적으로 인한 여파도 거론된다. 

    한국성장금융은 이달 초 황현선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투자운용2본부장에 선임하겠다는 내용의 주주서한을 보냈다. 2본부장은 20조원 규모 뉴딜펀드 운용을 총괄할 자리다. 조국 전 민정수석비서관을 보좌했던 황 전 행정관은 이렇다할 금융 관련 경력이 없다 보니 낙하산 논란이 일었다. 그는 2019년 유암코 상임감사 선임 때도 같은 논란이 있었다. 유암코에선 감사 인력을 대거 확대하며 소속 직원들의 원성을 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2본부장 인사의 배경은 성기홍 사장 취임부터 거슬러가서 살펴야 한다는 관전평이 나온다.

    성기홍 사장은 2019년 3월 한국성장금융 2대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성 사장 역시 한국벤처투자 투자운용본부장, 글로벌본부장 등을 거친 전문가인데 취임 과정에서도 내부적으로 논란이 있었다. 

    당시 금융위원회에서는 성기홍 사장이 아닌, 다른 인물이 2대 사장 후보자를 내정해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해당분야에서는 금융위원회의 의중을 거스를 곳이 많지 않은데 결과적으로는 해당 후보가 아닌, 성기홍 사장이 취임했다. 투자 업계에선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2019년 1월~2020년 12월)과 성 사장의 학맥(청주고등학교)이 부각되기도 했다. 한국벤처투자는 중소벤처기업부 소관이다.

    서종군 전무는 과거 금융위원회 자산운용과 행정사무관, 성장사다리펀드 사무국장 등을 역임했으며 성장사다리펀드와 한국성장금융의 창립을 주도했다.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 발표자로 나서는 등 ‘뉴딜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한국성장금융의 창립 공신이자, 자리 잡는 과정에서의 이른바 ‘지분’도 가장 많다. 금융당국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기홍 사장과 서종군 전무는 모두 투자 전문가이긴 하지만 배경이나 성향은 다르다. 성 사장은 ‘벤처 투자’, 서 전무는 ‘금융 투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서로 비슷한 듯하지만 금융은 강력한 규제가 필요한 반면, 벤처는 방임에 가까운 자유가 있어야 한다. 출신 배경이 다르다 보니 의사 결정 과정에서 잡음들이 자주 거론됐고, 투자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시장에선 두 사람의 소원한 관계는 공공연하게 알려졌던 바 있다.

    성 사장은 조직의 수장이니 투자를 포함한 경영 전반을 아우르려 했지만, 한국성장금융의 돈줄은 금융위원회 쪽에서 쥐고 있으니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서 전무는 최고투자책임자(CIO)로서 역할을 하자니 사장의 눈치가 부담이 될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성장금융은 2020년말 조직개편에서 경영지원실을 경영기획본부로 승격했는데, 서 전무와 대등한 본부장 자리를 하나 늘리려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었다.

  •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한국성장금융이 투자본부를 둘로 쪼개고, 낙하산 인사까지 오니 뒷말이 무성할 수밖에 없었다. 

    즉 성 사장이 서 전무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또 하나의 본부장을 끌어들인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는데, 그보다는 '보은성’ 자리 만들기라는 평가가 보다 우세하다. 과거 청와대 쪽의 덕을 입었으니 이번엔 청와대 출신 사람을 하나 받아줘야 하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비전문가 낙하산 인사에 대한 비판이 빗발치고 있음에도 불구, 연관 부처 모두 이번 인사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 결국 보은성이라는 방증 아니겠냐는 의견도 있다. 청와대는 이번 인사에 대해 '개인의 취업'이며 '낙하산 표현은 유감'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사실 뉴딜 펀드는 이번 정부의 중요한 치적이자 정책 수단 중 하나다. 실효성과 성과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막대한 실탄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정권 교체기를 앞두고 다양한 정책에 쓸 수 있는 카드다. 이러니 ‘정무적 판단’이 중요한 자리며 정부의 의중을 잘 아는 인사가 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인사가 매끄럽지 않았고 급하게 이뤄졌다는 인상은 지우기 어렵다. 법적으로는 반드시 투자업계 경력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지만, 어쨌든 핵심적인 투자 의사를 정하는 자리인데 경력이 일천한 인사를 앉힌 것은 납득하기 쉽지 않다. 국무총리가 '흐름을 모르는 분이 아니'라 옹호한들 공감을 얻기 어렵다.

    시장에선 꼭 금융에 문외한인 인사를 받아야 했다면 이왕 만들어둔 경영기획본부로 앉혔다가 나중에 투자본부로 옮기는 것이 조용하지 않았겠냐며 혀를 차기도 한다. 성 사장은 언론을 통해 황 전 행정관에 ‘경영 관련 다른 보직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 뜻을 보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성기홍 사장과 2명의 투자운용본부장 체제가 유력한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향후 세 사람간의 의견조율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2명과 1명이 반목하든, 세 명 모두 뜻이 다르든 투자와 경영 방침을 설정하는 데 애를 먹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이렇게 될 경우 직원들도 두 본부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성장금융은 각종 펀드를 꾸리면서 운용사 선정이나 출자 사업에서 큰 잡음이 없었다. 그러나 뉴딜펀드 운용에 투자적 시각 외에 정치적 목적이 가미되기라도 한다면 시끄러운 일이 자주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잘 쌓아온 성과가 날아가는 것은 한 순간이어서다. 

    내년 3월 성 사장과 서 전무의 임기가 만료된 후 한국성장금융을 누가 이끌게 될 것이냐는 문제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