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어 잡아라” 다시 안 올 IPO 초호황에 증권사들 이전투구 치열
입력 21.09.17 07:00
굵직한 기업들 잇따른 상장 시도
카카오모빌리티·쓱닷컴 등 대어급 두고 증권사들 경쟁 치열
  • 조 단위가 넘는 대어급 공모주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렇게 많은 조 단위 공모주가 한 해에 집중되는 일은 전무후무할 거란 평가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기업공개(IPO)를 담당하는 증권사들도 덩달아 치열한 영업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연간 한 두 차례에 그치던 굵직한 공모 건수를 잡기 위해서다. 상장 수수료는 공모규모에 비례하는 만큼 절대적인 공모액이 커질수록 증권사 수익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보 공개에 민감한 기업이 늘어나면서 증권사들끼리 ‘몸을 사리는’ 현상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정작 발행사에서는 신경을 안 쓰지만 주관사 후보들끼리 신경전을 벌이는 사례도 많다. 작은 하우스들은 은근히 경쟁사를 깎아 내리거나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 카카오모빌리티, 쓱닷컴, 마켓컬리 등 굵직한 기업들이 잇따라 상장을 시도하면서 국내 증권사들 사이에서 주관 자리를 따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텍사스퍼시픽그룹(TPG) 등 카카오모빌리티에 투자한 재무적 투자자(FI) 역시 증권사들로부터 청탁(?) 문의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한 사모펀드(PE)업계 관계자는 “발행사들이 IPO 주관 시장에서 증권사들의 실력을 잘 모르기 때문에 FI들에 평판을 물어보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증권사들도 이런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투자자들한테 넌지시 어떤 곳을 주관사로 선택할지 청탁을 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물 밑에선 영업에 힘쓰지만 대외적으론 함구하는 경우가 많다. 전통 대기업들부터 대기업 반열에 오른 IT기업들은 대개 기밀유지 협약(NDA)을 엄격히 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증권사들끼리도 입찰제안요청서(RFP) 수령 여부를 쉬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발행사에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경쟁사 상장 딜(거래)에는 참여하지 않거나, 극단적으로 주관 계약을 고사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쓱닷컴과 마켓컬리, 오아시스마켓까지 이커머스 플랫폼 회사들의 상장을 줄을 잇고 있는 만큼 증권사들끼리 눈치싸움이 치열하다는 평가다. 

    당초 마켓컬리와 주관계약을 맺었던 삼성증권은 쓱닷컴 주관 경쟁으로 눈을 돌렸다. 미래에셋증권도 마켓컬리 RFP를 받았지만 제안서를 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오아시스마켓 주관사인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 역시 쓱닷컴에 제안서를 냈다는 후문이다. NH투자증권 등 증권사들이 신세계그룹과 회사채 발행 등 돈독한 관계를 맺어온 만큼 최소한의 성의 표시가 필요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과거에도 해당 사례가 없지 않았다. 지난 2009년 대한생명(현 한화생명)과 삼성생명 상장 주관사 선정시 대한생명 주관사였던 골드만삭스가 삼성생명을 대신 선택한 사례가 있다. 또 대형 딜이 동시에 나올 경우 전략적으로 한 딜에 ‘올인’하는 경우도 있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앞서 LG에너지솔루션 상장 사례만 봐도 동종업계 견제가 더욱 심해지는 상황”이라며 “주관사 입장에서는 설령 관계를 맺어뒀더라도 극단적인 경우에 발행사에 양해를 구하고 경쟁사 주관사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라고 말했다. 

    공모규모에 따라 수수료가 매겨지는 만큼 증권사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통상 주관사 수수료는 공모금액의 약 0.8%를 수수료로 받는다. 공모금액이 클수록 수수료도 비례해 올라가는 구조다. 크래프톤, SK IET 등 굵직한 상장 건을 주도한 미래에셋증권은 올해 상반기에만 주관사 수수료가 약 303억원으로 증권사 가운데 가장 많은 수익을 올렸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크래프톤 상장 사례만 보더라도 공모 과정에서 고평가 논란 등의 이슈가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주관사단에서 한 해 동안 수익을 한 건으로 벌게 된 셈”이라며 “공모금액을 키울수록 수수료가 커지는 구조라 주관사들 입장에서도 대어급 딜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