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잇는 ‘이익 미실현’ 기업 상장...갈수록 유명무실해지는 할인율
입력 21.09.30 07:00
Weekly Invest
비트나인·원준·차백신연구소 등 이익 미실현 기업 상장 줄 지어
대부분 할인율 폭 커...상단 기준 50%까지 육박
할인율 제 기능 상실되는 사례 더욱 많아질 듯
  • 공모주 시장에 적자 기업 상장 사례가 많아지면서 공모가 산정 과정에서 추정 실적을 활용하는 발행사들이 늘고 있다. 

    이 때문에 할인율이 제 기능을 잃는 현상이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 추정 순이익 또는 매출을 기준으로 기업가치를 따지다 보니 자칫 몸값이 ‘뻥튀기’되는 사례가 늘어나는 탓이다. 여기에 맞춰 할인율을 적용하는 만큼 해당 수치가 공모가에 미치는 영향도 갈수록 미미해지고 있다. 

    2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비트나인, 원준, 차백신연구소, 지니너스 등은 모두 이익 미실현 기업으로 상장을 앞두고 있다. 청약 일정이 9월 중순부터 올해 연말까지로 잡힌 기업들  가운데 이익 미실현 기업은 모두 네 곳으로 집계된다. 

    이 중 차백신연구소와 지니나인은 바이오회사다. 차백신연구소는 면역증강 플랫폼기술을 활용한 신약 개발회사로 만성 B형 간염 치료백신, B형 간염 예방백신, 대상포진 백신 등을 개발하고 있다. 지니너스 역시 삼성서울병원에서 스핀오프한 바이오 벤처회사로 유전체 분석 기술 및 유전체 분석 솔루션 개발을 주요사업으로 두고 있다. 비트나인은 그래프 데이터베이스를 납품하는 소프트웨어 회사다. 

    추정 실적이 최근 상장 과정에서 많이 보이는 까닭은 바이오나 소프트웨어 등 초기 적자가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기업들이 많은 탓이다. 실제로 원준은 지난해 약 41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봤고 차백신연구소는 2019년 약 29억, 2020년 약 62억, 올해 상반기 약 3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이 때문에 순이익을 기준으로 하는 주가수익비율(PER)을 활용하는 대신 고육지책으로 미래 실적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방식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추정 실적을 산출하는 과정에서 주관적 해석의 여지가 많은 만큼 할인율 역시 ‘고무줄’ 식으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원준, 비트나인, 차백신연구소, 지니너스의 할인율은 대부분 50~30% 수준이다. 2020년 기준 코스닥시장 신규상장법인의 평가액 대비 할인율 평균은 36.52~23.91%, 2019년 기술성장기업의 평가액 대비 할인율 평균은 37.46~22.84%에 그쳤다. 

  • 한 IB업계 관계자는 “증권신고서상에 나오는 할인율을 통상 직전 3개월 또는 일 년간의 할인율 평균과 비교하고 있지만 참고 정도일 뿐, 실질적인 비교 지표로 삼기는 적합지 않다”라며 “실무단에서 할인율은 종전 기업가치를 어떻게 평가했느냐에 따라 폭을 키울지 줄일지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추정 실적은 이를 추산하는 발행사나 주관사에서 자의적인 해석이 끼어들 여지가 크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이다. 만약 공모가를 높이고 싶다면 추정 매출 또는 순이익을 산정하는 기본값을 조금만 조정하면 된다. 실제로 원준은 증권신고서를 통해 ‘향후 수년간의 미래 주당순이익을 추정해야 하며, 추정과정에서 여러 단계 가정이 필요하므로 평가자의 자의성이 개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명시했다. 

    바이오회사의 경우는 추정 실적의 실현 가능성이 더 낮다. 개발 중인 파이프라인의 임상 성공, 글로벌 제약회사 대상의 기술수출(라이선스 아웃) 등 추정 실적을 달성하기까지 통과해야할 관문이 많은 데다 통과율도 높지 않은 탓이다.  

    꼭 이익 미실현 기업이 아니더라도, 할인율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사례는 또 있다. 카카오페이는 첫 증권신고서 정정 당시 할인율을 31.28~54.19%로 정하고 기존 할인율(21.51~48%)보다 보수적으로 산정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다만 실제 기업가치를 따져보면, 두 번째 공모가 산정 당시 할인율 적용 전 기업가치가 종전보다 높았다. 비교회사를 다시 선정하면서 기업가치 수치부터 변경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공모가는 낮아졌지만 산출된 기업가치에 따라 할인율이 바뀌는 사례를 방증한다는 후문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카카오페이의 첫 번째 증권신고서를 보면 실무진들 누구라도 정정을 각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며 “원하는 공모가 값을 정해놓고 이를 끼워 맞추기 위해 할인율을 사용하는 경우는 카카오페이 말고도 많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