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각광 컨티뉴에이션 펀드(Continuation Fund)…한국 시장서도 활용될까
입력 21.10.21 07:00
대형화 된 사모펀드 만기 전
새 펀드 꾸려 기존 자산 이전
중요 투자회수 수단으로 부상
국내 사례 없지만 도입 가능성
  • 해외 사모펀드(PEF) 시장에선 컨티뉴에이션 펀드(Continuation Fund)가 화두다. 시장이 커지고 투자 호흡도 길어짐에 따라 운용사(GP)들은 기존 포트폴리오를 새로 꾸린 펀드에 이전해 시간을 벌려는 의지가 커졌기 때문이다. 컨티뉴에이션펀드는 실패한 자산을 담는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팬데믹 이후엔 우량 포트폴리오를 더 좋은 시기에 팔기 위해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형 투자가 늘어난 한국 시장에서도 컨티뉴에이션펀드가 회수 수단으로 자리잡을 지 관심이 모아진다.

    사모펀드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히 개별 투자건의 규모도 과거보다 커졌다. 그만큼 한 번에 투자 회수를 하기 어렵거나 오래 걸리는 사례가 늘었는데, 출자자(LP)들은 회수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 PEF 산업 역사가 긴 해외에선 일찌감치 다양한 회수 기법과 시간을 벌 수단을 고안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세컨더리(Secondary) 거래다. 국내에서는 한 운용사(GP)의 포트폴리오를 다른 GP가 인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은데, 해외에선 주로 PEF의 LP 출자 지분을 다른 LP가 사가는 것을 뜻한다. 기존 LP의 회수, 신규 LP의 투자 욕구를 채울 방안이다. PEF 자체의 만기 연장과는 거리가 있다.

    PEF 만기를 아예 길게 늘리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통상 10년 만기(5년 투자, 5년 회수)의 펀드가 주를 이루는데 투자 전략이 다양해졌고 전보다 긴 호흡을 요하는 투자처도 많아졌다. 이 때문에 칼라일 등 대형 GP도 투자 10년, 회수 10년의 초장기 펀드 결성을 꾀하기도 했다. 아직 이런 경험이 없는 해외 GP들도 초장기 펀드 결성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 최근 해외 PEF 시장에서의 새로운 트렌드는 컨티뉴에이션펀드 활용이다. 기존 펀드의 만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경우 GP가 LP를 모아 새 펀드를 꾸리고, 기존 펀드 자산을 이전하는 방식이다. 말 그대로 기존 포트폴리오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펀드다. LP 교체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는데, 펀드를 새로 만드니 만기는 다시 갱신된다.

    컨티뉴에이션펀드는 한때 부실화한 PEF를 구조조정하는 수단으로 폄하됐다. 만기가 다 되도록 회수하지 못한 포트폴리오가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처분될 때까지 맡겨둘 수단이 필요해 이를 결성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작년엔 글로벌 경기가 위축되며 우량한 포트폴리오도 제값을 받고 팔기 어려웠다. 강력한 성장 잠재력이 있는 자산이라면 GP 입장에서도 회수를 서두르는 것보다 컨티뉴에이션펀드로 시간을 버는 편이 유리하다. 외신 등에 따르면 컨티뉴에이션펀드 시장 규모는 작년 한해 급성장했다. 기업공개(IPO)나 스팩(SPAC) 등과 같은 선택지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올해 유럽 운용사 BC파트너스는 글로벌 학술 출판사 스프링어 네이처(Springer Nature) 투자를 이어가기 위해 10억유로 규모 컨티뉴에이션펀드를 결성했다. 자본시장이 위축되며 상장(IPO) 계획이 틀어진 탓이다. 미국 웹스터 에쿼티(Webster Equity)도 올해 2014년 펀드로 인수한 2개 회사를 컨티뉴에이션펀드에 이전한 바 있다. 블랙스톤(Blackstone)이나 KKR 등 대형 운용사들은 팬데믹 이전부터 컨티뉴에이션펀드를 활용해왔다.

    컨티뉴에이션펀드를 활용하면 GP는 시간을 벌면서 관리보수를 받고 여유있게 회수 시기를 노릴 수 있다. 기존 LP들은 GP의 투자회수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고 유동성을 회수할 수 있다. 새 펀드 출자로 남아도 된다. 신규 LP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해 펀드를 결성할 수 있다. 해외에선 초장기 투자를 선호하는 LP도 적지 않다 보니, 컨티뉴에이션펀드 자금만 전문적으로 매칭해주는 주선사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형 PEF 관계자는 “해외에선 새로운 PE 상품을 만들어 투자자에 파는 것이 주요 화제 중 하나”라며 “컨티뉴에이션펀드는 자전거래 성격도 있다보니 LP들이 싫어했고 망한 투자란 인식이 있었는데 지금은 달라졌다”고 말했다.

  • 국내에선 아직 컨티뉴에이션펀드가 활용된 사례가 없다. 이제 GP간 세컨더리 거래가 늘고 있을 뿐 LP 지분 손바뀜 사례도 많지 않다. 그나마 한앤컴퍼니가 가장 다양하고 적극적인 수단을 활용하고 있으나 해외 수준의 움직임은 아니다. 한앤컴퍼니는 2017년 쌍용C&E(전 쌍용양회)를 통해 대한시멘트를 인수했는데, 1호 펀드의 시멘트 포트폴리오를 2호로 모으는 효과를 봤다. 작년엔 하나금융그룹과 손잡고 에이치라인해운 출자자 교체 작업을 진행했는데, 실질적으론 리파이낸싱 성격으로 봐야하는 거래란 평가다.

    앞으로 국내에서도 컨티뉴에이션펀드가 활용될 여지는 있다. 해외와 마찬가지로 PEF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고, 개별 투자 건들의 규모도 커졌다. 대형 운용사들이 가진 조단위 포트폴리오가 수두룩하다. 외부 변수에 따라 펀드 만기 즈음 일시적으로 기업가치가 하락할 수 있고, 실제 타격을 입었던 제조기업들의 실적이 회복되는 사례도 많았다. 시간에 쫓겨 헐값에 자산을 정리하거나, 청산법인 형태로 넘어가 평판 하락을 겪은 운용사가 적지 않다. 이는 기존 LP 입장에서도 부담이다.

    우량한 자산이라 당장 새주인을 찾기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한앤컴퍼니의 한온시스템의 매각 작업은 당초 시장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회사가 우량한 만큼 몸값이 너무 높아서라는 평가가 나온다. 여유를 두고 미래차 부품 선도기업으로 자리 잡아가면 높은 몸값도 시장의 인정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우량 기업이라면 컨티뉴에이션펀드를 활용할 만하다.

    다른 대형 PEF 운용사 관계자는 “컨티뉴에이션펀드를 활용하면 GP는 우량 포트폴리오를 시기에 쫓겨 팔지 않아도 되고, 기존 LP는 늦지 않게 자금을 회수할 수 있으며, 새 LP는 너무 비싸지 않은 가격에 투자하는 등 장점이 많다”며 “해외 시장에서는 컨티뉴에이션펀드가 큰 화두인데 국내에서도 활용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