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금 50%룰 변경이 가계부채 대책?...공모주 과열 부추기는 정부
입력 21.11.05 07:09
금융위-금투협, 기관청약 경쟁률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방안 논의
공모주 청약 노린 대출 늘자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방책
“대출청약자, 오히려 기관청약 경쟁률 높이면 더 많이 넣어”
공모주 청약 규모는 그대로...경쟁률만 높아질 수 있어
  • 금융당국이 공모주 시장의 과열을 막기 위해 현행 50%인 청약증거금 비율을 차등적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수요예측 경쟁률이 높은 공모주는 청약증거금 비율을 50% 이하로 낮추는 게 골자다. 이 경우 원하는 수량을 배정받기 위해 납입해야 하는 증거금의 규모가 늘어나게 된다.

    이는 가계부채 대책의 일환으로 논의되고 있다. 공모주 청약시 감당해야 하는 자금 부담을 늘려 대출을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는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탁상공론'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자본시장 관계자들과 함께 간담회를 열고 공모주 제도 개편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금융투자협회는 기업공개(IPO) 시장의 건전성 제고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50%인 청약증거금률을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에 따라 20~30% 등 차등 적용하는 방안 등이 논의됐다. 현재 경쟁률이 높은 공모주의 경우, 개인투자자들이 공모주를 더 많이 받고자 대출을 받아 수천만 원의 증거금을 넣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신용대출 등이 활용되다보니, 가계부채를 잡으려는 금융당국 입장에건 방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해당 조치는 공모주 제도 개편 방안에 포함될 지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벌써부터 증권가에서는 해당 조치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오히려 청약경쟁률을 더 높이며 공모주 시장을 과열시키는 조치라는 이유에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공모주를 한 주라도 더 받고자 대출을 받아 청약하는 투자자들은 증거금률이 낮으면 오히려 더 좋아할 것”이라며 “대출금만큼 청약 물량을 더 많이 넣어 청약 규모는 그대로고 경쟁률만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평균적으로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과 일반공모 청약경쟁률이 높을수록 공모주 수익률이 높다는 점도 문제다. 에스앤디, 케이카, 프롬바이오 등 최근 수요예측에서 실패한 공모주들이 공모가 이하를 밑돌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8월 인베스트조선의 집계에 따르면 수천 대 1의 경쟁률이 속출했던 상반기 공모 청약 시장에서도 수요예측 경쟁률 700 대 1 및 일반공모 청약경쟁률 1000 대 1 이하인 공모주는 기대수익률이 다소 낮은 경향을 보였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기관 수요예측에서 다른 공모주와 확연하게 차이 나는 경쟁률이 나오면 더 좋은 공모주라는 생각에 사람들이 더 넣는다”며 “따상 기대감이 높은 만큼 한주라도 더 많이 받고자 할 텐데 공모주 청약 열기나 가계부채를 관리하려는 금융당국의 의도대로 시장이 흘러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증거금률을 낮춘다면 증권사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일반 청약경쟁률이 예상보다 부진하다면 공모주 추가 배정을 위한 추가 납입을 해야 한다. 납입한 증거금보다 더 많은 물량을 배정받아서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이 흥행에 실패한 공모주에 추가로 납입할 가능성은 낮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공모주 수익률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졌는데 누가 추가납입을 하겠냐”며 “최근 공모주 시장 분위기도 열풍이던 상반기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주관사 입장에서는 난감하다”고 말했다.

    증거금률 낮춘다면 균등배정 제도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작년 금융당국은 일반청약자의 공모주 배정 기회를 확대하고자 일반청약자 배정 물량 중 절반 이상을 균등배정으로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만약에 수요예측이 흥행해서 증거금률을 10%로 낮춘다면 균등배정으로 소액투자를 할 유인이 적다”며 “소액투자자 중 일부는 비례방식의 일반청약으로 넘어가서 '영꿀 베팅'을 통해 청약 물량을 더 확보하려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