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두고 너도나도 훈수 두는 가상자산 정책, 멀고 먼 '투자 양지화'
입력 21.12.01 07:00
취재노트
당정, 대선캠프까지 과세∙업권법 등 가상자산 관련 정책 내놓아
“가상자산 과세 내년부터인데”…당정 기싸움에 시행여부도 불투명
협회 난립에 통일된 목소리 없어…독자노선 걷는 기업도 문제
  • “과세까지 한달 남았는데, 정부는 과세를 한다고 하고 정치권이나 대선주자는 유예하자고 하고 솔직히 어느 장단에 맞춰야하는지 모르겠어요. 정부 가이드라인에 예외도 너무 많아서 문의해도 이렇다 할 답도 없고 답답합니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 A) 

    “생전 처음 들어보는 협회도 많을 만큼 협회가 너무 많아요. 그나마 외관을 갖춘 한국블록체인협회도 정책 다 나오고 뒷북치듯이 의견을 내놓으니 협회에 대한 실망도 크죠. 기업들도 서로 경쟁하고 살아남기 바쁘다 보니 의견이 통일되지 않을 때도 많고…”(가상자산 업계 관계자 B) 

    가상자산 과세를 주장하는 정부, 유예하자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엇갈리며 관련 업계는 물론, 가상자산에 대한 투자를 검토하던 투자자들도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너도나도 정책에 한마디씩 더하면서 한달 정도 남은 가상자산 과세 여부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현재 국회에서는 내년 예정된 과세를 1년 뒤로 미루자고 주장하지만, 기획재정부는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상황이다. 국회 법안 심사가 시작된지 2주째이지만 양측 간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으면서 약 한달 정도 남은 과세 여부도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일부 대선후보가 1년간 과세 유예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업계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정치적 셈법으로만 관련 법안이 논의되며 현장에선 볼멘 소리만 나온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마련한 적은 별로 없었다”며 “최근 국세청에서 과세 관련한 논의는 있었지만 과세 제도에 대한 설명이었지, 모호한 가이드라인에 대한 답변이나 업계 이야기를 듣는 자리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정책만 쏟아지는 실정이다. 최근 논의된 가상자산업권법이 대표적이다. 급속도로 커진 가상자산 시장이 대한 법안 논의가 급하게 이뤄지면서 기본적인 ‘정의’도 확실하지 않다는 평이 나왔다.

    물론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엔 가상자산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업계의 잘못도 적지 않다는 평이 많다. 정책 논의에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장 가상자산 관련 협회가 우후죽순 난립하고 있다.

    당장 블록체인 관련 협회만 최소 10개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블록체인협회를 포함해 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 한국블록체인기업진흥협회 등 이름만 조금씩 다를 뿐이다.

    심지어 정부부처 사단법인 인가를 받은 곳은 거의 없다. 4대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등 암호화폐 거래소가 가입한 한국블록체인협회 정도만 금융위원회와 소통할 때 공동으로 대응하는 등 어느 정도 대표성을 가진 상황이다.

    금융당국의 각종 규제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가상자산 관련 기업들이 독자노선을 걷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9월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마감일을 앞두고 한국블록체인협회 소속 중소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사업자 신고 관련 공동성명을 냈다. 당시 ‘금융당국의 눈치보기’로 일부 중소 암호화폐 거래소가 빠졌다. 시중은행과 실명계좌 발급 협상이 진행 중인 거래소들이 괜히 ‘긁어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가상자산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규제당국의 범위에 들어설 것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2017년 금융위원회가 시중은행을 상대로 가상화폐 거래를 위한 신규 가상계좌 제공을 중단하는 등 가상화폐 관련 긴급대책도 내려진 바 있었다. 암호화폐 거래소, 블록체인 기술기업이나 투자사 등 기업들이 사업 경영에만 몰두한 나머지, 소통창구도 통일하지 않고 대관에 소홀했던 건 아쉬운 부분이다.

    보수적인 투자 성향을 보이는 연기금ㆍ공제회조차 투자 여부를 심도있게 검토할 정도로 가상자산 투자는 양지화하고 있다. 제대로 된 자금 집행과 혹시 모를 투자자 보호를 위해선 관련 제도 정착이 최우선 현안으로 꼽힌다.   

    그러나 내년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가상자산 관련 정책은 ‘표심용’ 공약으로 전락한 모양새다. 금융당국도 정권 말기에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가상자산 관련 정책 논의는 다음 정권으로 넘어갈 공산도 크다. 

    시장엔 혼란만이 가중되고 있다. 지금 상태라면 가상자산 시장은 또다시 불투명한 영역으로 남겨질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들의 우려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