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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 사외이사의 다양성ㆍ전문성을 높이고 경영진 견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하 지배구조법)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났지만, 국내 주요 금융그룹의 이사회는 여전히 복지부동과 천편일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대적으로 고령인 사외이사진이 장기간 재임하며 시대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날 선 비판도 들린다. 자본주의의 첨단에 서 있어야 할 국내 주요 금융사들이 구(舊) 산업이라는 낙후된 이미지를 얻게 된 책임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사외이사진이 최고경영진을 견제하긴커녕 상부상조하며 인사권만 휘두르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 주요 대형금융지주의 지배구조를 근본부터 혁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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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신한ㆍKBㆍ하나ㆍ우리금융 등 4대 대형금융지주에는 총 31명의 사외이사들이 재직하고 있다. 신한금융이 12명으로 가장 많고, 우리금융이 4명으로 가장 적다. 올해 기준 이들의 평균 연령은 만 65세다.
특히 50대가 전무한 KB금융 사외이사진의 평균 연령은 만 67.5세에 달한다. 50대 중반이면 사외이사 중 젊은 축에 속하고, 40대는 아예 찾을 수 없다.
신구(新舊) 조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다른 산업군에선 30대 임원, 40대 대표이사가 나오고 있는 판국인데 1966년생 만 55세 신임 행장을 내정하며 '세대교체'라고 표현한다"며 "고령의 사외이사진이 회장 중심 연공서열식 인사라는 구태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직업군도 비슷하다. 31명 중 교수가 12명으로 가장 많다. 금융ㆍ경제부문 관(官) 출신 인사와 법조계 출신 인사도 반드시 한 명 이상 포진하고 있다. 지분을 투자 혹은 매입한 기관이 사외이사 추천권을 행사하기 시작하며 투자회사 관계자들도 사외이사진에 합류하기 시작한 것 정도가 최근의 변화로 꼽힌다.
성별은 남성이 압도적이다. 여성 사외이사는 최근 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ESG)가 이슈로 떠오르며 이사회에서 조금씩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일례로 최근 우리금융지주는 예금보험공사 지분 4%를 인수하며 사외이사 추천권을 얻은 유진프라이빗에쿼티(PE)에 여성 사외이사 추천을 요청했다. 우리금융은 현재 4대 금융지주 중 유일하게 여성 사외이사가 없다.
출신ㆍ배경ㆍ나이ㆍ성별이 비슷한 인물들이 사외이사진에 포진하고 있는 셈이다. 금융권에서는 지속적으로 금융지주 사외이사 다양성 확충이 필요하다고 역설해왔다. 지배구조법의 토대가 된 2014년 지배구조 모범규준 역시 이런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
한 지배구조 전문가는 "해외 특히 아시아 금융시장 진출을 외치며 이사회엔 아시아 금융시장 전문가가 없고, IT 플랫폼을 강조하며 은행원마저 이공계로 뽑겠다면서 이사회엔 IT 전문가가 없다"며 "지배구조법 도입 후에도 교수ㆍ관(官)피아 중심 사외이사 선임 시스템엔 전혀 변화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지배구조법이 '면죄부'를 줬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지배구조법은 사외이사가 금융ㆍ경제ㆍ법률ㆍ회계 등 관련 분야의 전문지식이나 풍부한 실무경험을 갖춰야 한다고 규정(제6조 8항 3호)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교수 및 관가 출신 인사들이 금융회사 사외이사직을 맡아오던 핵심 근거였다.
해당 규정이 법 조문에 강제되며, IT 등 미래 사회에 중요한 지식을 갖춘 전문가의 사외이사직 진출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그나마 사외이사 후보풀(pool) 중 디지털ㆍIT 부문을 별도로 관리하고 있는 곳은 KB금융 정도다.
금융감독원도 2018년초 지배구조 운영실태를 점검한 후 "형식적으로는 지배구조법상 요건을 갖추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과거부터 지적돼왔던 지배구조 문제점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며 규제 실패를 인정하기도 했다.
사외이사의 다양성을 키우고 견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사외이사 순차 교차제'는 함흥차사다. 2018년 금융위원회가 지배구조법 개정안을 통해 추진했지만,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금융위는 같은 개정안을 지난해 다시 제출했지만, 아직 법안 심사조차 제대로 되고 있지 않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개정안은 통과된다 해도 효력이 불확실하다는 비판도 많다. '사외이사 전원의 임기가 동시에 만료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조항 하나가 추가될 뿐인 까닭이다. 예외조항은 있고, 처벌규정은 없다.
자정의 노력은 사실상 없는 상태다. 일례로 KB금융은 2015년 '사외이사 내외부 평가를 통해 하위 2명은 연임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개혁안을 내놨다. 2016년엔 '하위 1명은 연임 제외'로 물러섰고, 지금은 '매년 적절히 선임과 퇴임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한다'고 바뀌었다. 우리금융은 2016년 과점주주 민영화 이후 사외이사진의 변동이 거의 없었다. 현 이사회 의장을 비롯한 사외이사진의 임기는 2년 이상 남은 상태다.
이는 최고경영진과 사외이사의 유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2016년 신한금융은 임기가 만료된 남궁훈 이사회 의장(사외이사)를 기타비상무이사로 재선임했다. 사외이사 임기가 만료된 인사를 편법으로 이사회에 잔류시킨 것이다. 2017년엔 한동우 전 회장이 전례없이 '고문'으로 임명됐다. 당시 황선태 이사회 의장과 한 전 회장이 부산고-서울대 법대 동기동창이라는 언급이 금융권에 회자됐다.
2020년에 이어 2021년에도 4대 금융지주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들을 모든 안건에 사실상 찬성 의견을 냈다. KB금융에서 반기 배당 관련 '보류' 의견이 단 1건 있었을 뿐이다. 이사회 부의 안건은 사전 조율 과정을 거친다는 해명을 받아들인다 해도, '거수기'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는 일방적인 계열사 대표 및 주요 임원 인사에 대한 지적으로도 이어진다. 주요 금융지주들은 대부분 계열사 대표이사 등 주요 인사를 결정하는 인사위원회의 위원장으로 회장을 임명하도록 이사회 규정을 통해 못 박고 있다. 100% 자회사를 거느리는 순수지주회사인 금융지주 입장에서 계열사 대표이사 임명은 사업의 핵심인데, 회장의 '의중'에만 따른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회장의 의중에 따라 차기 CEO가 결정되고 해당자에겐 당일 통보되는 걸 '인사'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모범규준과 지배구조법은 사실 예측 가능하게 차기 CEO 후보를 육성하라고 도입한 규제인데, 여전히 구태식 인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상업은행 중 경쟁사와 비교에 압도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JP모건의 경우 젊은 인사를 일찍 임원으로 발탁해 투명하게 후계 경쟁을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2023년 퇴임을 공언한 제이미 다이먼 현 회장은 현재 제레미 바넘 JP모건체이스 CFO, 마리안 레이크 소비자 및 커뮤니티 뱅킹(CCB) 공동대표, 와 제니퍼 핍스자크 JP모건 CCB 공동대표 등을 후계자로 밝히고 있다. 이들은 모두 40대의 나이로, 2013년 전후 이른 시기에 임원으로 발탁됐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후계자들의 성과는 다이먼 회장을 포함, 10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매 분기 평가하고 판단한다. 후보군 중 한 명이 차기 회장이 된다. JP모건의 이사회는 남성 6명, 여성 4명으로 이뤄져 있으며 인종 구성도 다양하다. 사외이사들의 출신 또한 전직 GE 부회장(전자), IBM 사장(IT), KPMG 회장(회계), NBC유니버셜 회장(미디어), 투자 전문가 등으로 배경이 나뉘어 있다. 흑인 여성인 멜로디 홉슨 이사의 경우 48세였던 2018년 이사진에 합류했다.
한 지배구조 전문가는 "적어도 1년에 전체 사외이사의 3분의 1은 교체되도록 하고, 특히 외부 평가를 통해 실적이 부진한 이사는 연임되지 않도록 하는 규제가 필요할 수 있다"며 "노동이사제 도입도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추천 인사의 자질이 지속적으로 문제가 돼왔던만큼 주주 가치 제고와 공존할 수 있도록 논의가 더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로 교수ㆍ관(官) 출신ㆍ법조계 인사들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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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12월 08일 10:44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