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 실트론 투자 논란…SK㈜ㆍ계열사가 나섰다면 계약위반 혹은 위법
입력 21.12.21 17:20
3년여 끈 최태원-SK실트론 사익편취 논란, 공정위 곧 결정 발표
결국 '왜 SK㈜가 나서지 않았느냐' 논리인데 계약상 실행 불가능
타 계열사는 공정법 위배 우려…광주신세계 유사 사례도
  •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7년 LG실트론 소수지분을 인수한 이후 사익편취 논란에 시달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 회장의 지분 인수에 위법성이 있는 것으로 봤다. 요지는 "SK㈜나 다른 계열사가 아니라 굳이 최 회장이 직접 나서서 샀어야 했느냐"로 요약된다. 심지어 매입가격도 낮다보니 "최 회장이 사익을 추구해서 사들인 것 아니냐"라는 의구심이 생긴 것. 

    다만 이때 체결된 양해각서와 매매계약에 따르면 이때 최 회장이나 다른 주체가 아닌, SK㈜나 계열사가 나서서 인수했을 경우 기존 매매계약이 파기될 '계약위반' 사항이 발생했다. 그렇다고 다른 SK 계열사가 지분을 샀다면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규제를 위반하게 됐다. 

    이는 실트론 대주주인 ▲LG(51%) ▲KTB PE(19.6%) ▲보고펀드 대주단(29.4%) 사이에서 발생한 매각 경쟁이 원인으로 풀이된다.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번주 중으로 최태원 회장의 SK실트론 투자 사익편취 혐의에 대한 전원회의 결정 내용을 발표한다. 공정위 전원회의 위원은 9명인데 4명이 제척·기피 사유로 빠졌다. 전원회의 의결정족수는 5명이기 때문에 1명이라도 법위반이 아니라 판단하면 최 회장에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다. 최 회장은 지난 15일 공정위에 직접 출석해 해당 논란에 소명했다.

    SK㈜는 2017년 1월 LG실트론 경영권 지분 51%(주당 1만8138원)를 LG로부터 인수했다. 이에 나머지 49%를 나눠서 보유했던 KTB PE와 우리은행 등 보고펀드 대주단도 2개월 뒤부터 동시다발적으로 매각을 진행했다. 결과적으로SK㈜가 KTB PE 지분 19.6%를, 최태원 회장이 보고펀드 대주단 지분 29.4%를 인수했다. 매입가격은 모두 주당 1만2871원으로, 기존 경영권 지분보다는 인수가격이 낮다. 

    그러자 그해 10월 경제개혁연대가 최태원 회장의 투자가 사익편취에 해당하는지 조사해줄 것을 공정위에 요청했다. 이에 공정위는 4년이 지나서인 올해 8월 SK그룹 측에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공정위는 SK㈜가 최 회장 대신 지분 29.4%를 인수했다면 실트론 기업가치 상승에 따른 추가 이익을 얻었을 것이지만 이를 포기해 이익이 최태원 회장에 귀속됐으며 이는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봤다. 즉 SK㈜가 벌어들일 이익을 그룹 총수에게 '양보했다'라고 해석된다는 의미다. 

    다만 당시 체결된 양해각서들에 따르면 SK㈜가 최태원 회장을 대신해서 지분을 인수하는 것 자체가 주주간 계약관계상 불가능했다.  

    2017년에 실트론 경영권 지분이 갑자기 LG→SK로 넘어가자 2대ㆍ3대 주주인 KTB PE와 보고펀드 대주단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이들은 원래 실트론의 기업공개(IPO) 혹은 경영권과 함께 매각을 염두에 두고 사모펀드(PEF)를 통해 2007년 실트론에 투자했으나 여러 이유로 투자금 회수에 실패했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LG가 경영권 지분을 넘겨버린 터라 본인들의 지분을 더 높은 가격에 팔 기회를 놓치게 됐다. 

    이로 인해 두 곳은 실트론 잔여지분을 놓고 경쟁적으로 '내 지분을 먼저 사가라'며 매각 협상을 진행했다. SK㈜가 이미 51% 지분을 인수했으니 두 곳 중에 자기 지분을 먼저 SK에 파는 곳이 '승자'가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SK㈜는 KTB PE를 선택했다. KTB PE와 보고펀드 대주단 두 곳의 지분을 모두 살 필요가 없었고,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지분율이 적어 돈이 적게 드는 KTB PE를 선택하는게 낫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양측은 그해 4월6일에 곧바로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그러자 남은 주주인 보고펀드 대주단이 5일 뒤인 4월11일 잔여지분 공개경쟁입찰 매각공고를 냈다. 

    이때 KTB PE는 SK㈜에 지분을 넘기는 대신, 몇가지 조건을 요구했다. "SK㈜는 KTB PE가 보유한 실트론 지분 인수작업이 마무리 되고, 입금까지 끝내기 전에는 다른 실트론 지분을 매수하는 것을 금지한다"라는 조항이었다. 

    KTB PE입장에서는 SK㈜가 자기 지분을 산다고 했다가, 이 계약을 깨버리고 갑자기 보고펀드 대주단 지분을 인수하겠다고 입장을 바꿔버리면 '낙동강 오리알'로 전락할 상황이었다. 행여 이런 점을 노려서 보고펀드 대주단이 "KTB PE보다도 더 낮은 가격에 지분을 넘겨줄 수 있다"라는 식으로 접근할까봐 우려해야 할 상황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세운 조항이 "우리 지분을 살거면 다른 지분(보고펀드 대주단 지분)을 같은 기간에 동시에 살 수는 없다"라는 조항이었다. 

    이 내용은 SK㈜-KTB PE가 체결한 양해각서에 고스란히 담겼다. 

    아울러 KTB PE는 "행여 SK㈜가 나중에 보고펀드 대주단 지분을 추가로 산다고 해도 우리가 매각한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에 인수해서도 안된다"라는 조항도 첨부했다. 

    그도 그럴것이 KTB PE와 보고펀드는 2007년 컨소시엄을 구성해 함께 실트론에 투자한 사이였다. 두 사모펀드의 투자 결과가 어느 한쪽이 높고, 어느 한쪽이 낮으면 기관투자자(LP)들에게 문책을 당할 상황이 발생했다. 

    결과적으로 SK㈜는 일단 KTB PE 지분을 사기로 했으면 보고펀드 대주단 지분을 살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행여라도 이런 움직임을 보이면 계약 위반 사유가 되고, KTB PE로부터 소송 가능성도 감수해야 했다. 이에 SK㈜는 장동현 대표를 통해 나머지 보고펀드 대주단 지분을 인수하지 않기로 확정했는데, 오래지 않아 이 결정을 번복한다면 경영진과 이사회 모두 배임 문제에 휩싸일 수 있다. 당연히 가격에도 손을 댈 수 없었다. 

    다른 SK계열사가 보고펀드 대주단 지분을 인수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렇게 될 경우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규제를 위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SK㈜가 얻을 이익을 계열사에 몰아주는 것으로 본다면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아울러 SK㈜를 대신해서 지분을 인수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다른 계열사를 움직이려면 그 회사 이사회의 독립성 침해 여부가 문제될 수 있었다. 

    아울러 SK이노베이션, SK E&S, SK텔레콤 등 투자 여력이 있던 그룹 주력사들은 공정거래법상 중간지주 역할을 하는데, 이들은 공정거래법에 따라 자회사 아닌 주식을 5% 이상 보유할 수 없다. 

    결국 SK㈜도 지분 매입이 불가능하고, 다른 계열사도 대신해서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선 지분 70%를 인수했으면 경영권 확보에 충분한데 100%까지 확보하라면 투자금이 묶일 수밖에 없다"며 "신주로 신규 자금을 넣는 것이 아니라 구주를 사는 경우라면 더더욱 지분을 늘릴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대기업 총수 일가가 회사의 사업 기회를 유용했느냐가 문제됐다 무죄를 받은 사례도 있었다.

    광주신세계는 1995년 신세계의 100% 자회사로 설립됐다. 회사는 1998년 유상증자를 추진했는데 신세계는 신주 인수를 포기했고, 해당 지분을 정용진 부회장(당시 이사)이 41억원을 들여 모두 취득해 지분 83%를 확보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 9월 광주신세계 지분 전량을 신세계에 2285억원에 팔아 막대한 차익을 거뒀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소액주주들은 정용진 부회장이 광주신세계 주식을 사들여 신세계가 누려야 할 사업 기회를 유용했다 주장하며 소를 제기했는데 대법원은 정 부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정용진 부회장의 투자 당시 IMF 외환 위기로 경제 여건이 악화한 점, 다수의 백화점이 도산한 점, 광주 신세계가 자본잠식 상태고 증자 대금 역시 채무 변제에 쓰인 점, 광주신세계가 실권 통보를 받은 후 신주 인수자를 물색했으나 실패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충분한 정보를 수집하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 사업기회를 포기하도록 승인했으며, 그 과정에 현저한 불합리가 없다면 이사회의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