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담조직 만들어 줘'...커지는 OCIO 시장, 진땀 빼는 운용업계
입력 21.12.31 07:00
관행상 전담조직 조건 붙었지만…운용사, '매번 팀 꾸리기 부담'
신규 플레이어, 트랙레코드 쌓기 위해 적자 감수하고 전담조직 구성
대형운용사 불참하니…전담조직 조건 안붙이는 경우 늘어나
  • 외부외탁운용관리(OCIO) 시장이 커지면서, '전담 조직'을 요구하는 기관도 늘어나고 있다. 운용업계에서는 인력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며 부담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존 업무에서 배제하고 해당 기관의 OCIO 업무만 담당하는 운용 인력을 배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OCIO 서비스의 질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오랫동안 운용 실적(트랙레코드)을 쌓아온 운용사는 오히려 전담조직을 요구하는 기관의 OCIO는 지양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29일 운용업계에 따르면 기관의 전담조직 요구는 2001년 연기금투자풀 제도가 도입될 때부터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연기금투자풀이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하며 '전담조직 구성'을 요구사항으로 넣었다. 이후 운용규모가 큰 기금·기관에서도 OCIO를 도입하며 전담조직을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산재보험기금, 방사성폐기물관리기금 등 규모가 크지 않은 기금조차 전담 조직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기관에서 전담조직을 원하는 건 기관이 기금의 목적에 맞춰 적극적으로 운용하며 자신을 위한 최적의 서비스를 받고 싶은 '니즈' 때문이다"며 "제안서 5건 중 3건 정도는 전담조직을 입찰 조건으로 달고 있다"고 밝혔다.

  • 최근 이러한 추세가 바뀌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담조직 구성에 부담을 느낀 대형운용사에서 입찰에 응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규모가 작은 OCIO일수록 전담조직 조건을 달지 않는다는 평이다. 대학기금 등 민간기금과 지난 21일 첫 OCIO 운용사를 선정한 예금보험공사도 조건을 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운용사 OCIO 관계자는 "특정 기금을 위해 OCIO 운용 인력을 빼내다 보면 네트워크와 인프라 등 운용사가 가진 전체적인 OCIO 역량의 일부만 사용하게 된다. 규모가 작은 기관이 전담조직을 요구할 경우 운용사가 100%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며 "최근엔 운용규모가 크거나 전담조직 조건이 없는 OCIO 위주로 입찰하는 상황이다"고 전했다.

    다른 운용사 OCIO 관계자는 "OCIO 운용을 위해서 주식·채권·대체투자 등 여러 부서에서 인력을 빼 와야 하는데, 최근 운용보수 출혈 경쟁까지 겹치며 운용 규모가 작으면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며 "규모가 작으면 전담조직도 2~3명에 불과한 경우가 있는데, 최근 이를 인지한 기관에서 전담조직 조건이 없는 RFP을 발송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신규 플레이어는 여전히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전담조직 요구를 들어준다는 평가다. 트렉레코드가 중요한 OCIO 시장에서 트랙레코드를 쌓기 위해서다. 

    운용업계에 따르면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되면 현재 약 100조원인 OCIO 시장 규모가 1000조까지 커질 전망이다.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는 외부 기금을 설립해 전문 위탁기관에서 퇴직연금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제도다.

    이외에도 저금리·저성장 기조가 이어지자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기관에서도 OCIO를 희망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재작년 서울대에 이어 작년 이화여대가 삼성자산운용에 기금운용을 위탁하자, 성균관대·한양대·홍익대 등 다른 대학교에서도 OCIO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OCIO 시장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시장 참가자가 늘어나는 속도가 더 커 모두가 사업적으로 이익을 내기 쉽지 않다"며 "그럼에도 적자를 감수하는 건 지금 당장 시장에 먹을 게 있기보다는 향후 시장 확장성이 크다고 판단해 조금이라도 먼저 시장 파이를 늘리려는 목적 때문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