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픽싱 규제에 '오스템' 악재까지...증권사 CB 발행부서 '개점휴업'
입력 22.01.12 07:00
증권의 발행 및 공시에 관한 규정 시행 한 달 남짓
전환사채(CB) 발행 사실상 ‘잠정 중단’
한계기업들 자금조달 창구 좁아질 듯
  • 바뀐 전환사채(CB) 규제가 시행된 지 한 달 남짓 된 가운데 증권사 메자닌 부서의 ‘개점휴업’ 상태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CB 발행의 장점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증권사들 사이에서도 그나마 추진 중인 거래에서 세부 조건을 두고 눈치를 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최근 증권사의 메자닌 부서에 제안되는 CB 딜들이 검토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쌓여있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1일자로 시작된 ‘증권의 발행 및 공시에 관한 규정’에 따라 전환사채 리픽싱 관련 규제가 바뀌면서 그동안 이어져 온 ‘CB 러시’가 당분간 중단되는 모양새다. 

    해당 규제의 골자는 전환가액 조정 시 주가 상승에 대한 부분도 반영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CB 발행 시에는 주가가 하락할 경우 전환가액을 하향 조정해주는 조건만 있었다. 일부 작전 세력이 이를 악용해 차익을 실현하는 사례가 지적됐던 만큼 작년 12월부터는 주가가 다시 상승하면 전환가액도 오르는 ‘상향 리픽싱’ 조건이 추가됐다. 규제 상 상향 리픽싱은 최초 전환가액의 70%~100%로 제한된다. 

    그동안 증권사들은 CB 발행 업무가 봇물을 이뤘지만 규제 시행 한 달여가 지난 현재, 아직까지 CB 발행 업무를 진행하기까지 몸을 사리고 있는 눈치다. 리픽싱 조건이 바뀌면서 사실상 CB 발행의 메리트가 사라진 만큼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의 CB를 발행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상향 리픽싱 규정은 최초 전환가액의 70%~100%로 규정하고 있다. CB 발행 시 상향 전환가액을 70%까지로 정하더라도 법규상으로는 가능하다는 의미다. 100%로 정하는 것보다는 발행사 입장에서 조금 더 긍정적인 조건일 수 있다. 그럼에도 증권사들은 해당 조건으로 CB 발행을 하는 데에 부담을 느낀다는 후문이다. 

    최초 전환가액 수준으로 상향 조건이 부여된다면 CB 투자자로서는 주가 상승에 따른 시세 차익보다는 수익률이 적더라도 안정적인 금리 조건에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예를 들어 만기가 3년이고 풋옵션(조기상환청구)이 2년 내에 가능한 CB가 있다고 할 경우 하향 리픽싱이 30%라고 치면 풋옵션 기간인 2년 안에 주가가 한 번이라도 상승을 타면 업사이드를 크게 노릴 수 있다”라며 “반대로 상향 조정되는 정도가 커질수록 투자자 입장선 ‘먹을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최근 증권가에서 오스템임플란트 파장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증권사들로서는 CB 발행에 부담을 느끼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오스템임플란트는 약 500억원 규모 CB를 발행하며 다수 투자자들이 앞다퉈 이에 투자했다. 하지만 해당 회사가 1800억원대 횡령 사건으로 상장 폐지 가능성까지 거론되자 투자자들은 손실 위기에 직면했다. 여기에 CB 관련 규제까지 바뀌면서 기관투자자들을 설득하기가 더욱 만만치 않아졌다는 분석이다.  

    대개 CB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발행사들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소·중견기업이기 때문에 내부 통제 규율이 덜한 편이다. 물론 아무리 중소기업이라도 오스템임플란트와 같은 1800억원대 횡령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현재와 같은 분위기에서는 굳이 CB 발행을 맡아줄 증권사들이 많지 않을 전망이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재무상태가 좋지 못한 기업들이 풍부한 유동성을 계기로 CB 자금조달에 나서왔다”라며 “표면이자율이나 만기이자율을 0%로 두고 주가 상승에 인한 시세 차익을 금리와 맞바꾼 조건들도 많았지만 이제는 (해당 형식의 CB 발행이) 쉽지 않다. 2년 내 디폴트(채무불이행) 나는 회사들이 꽤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