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원 이상 매물 쌓인 셀트리온...합병 반대 물량 노리는 투자업계
입력 22.01.13 07:00
지주사 이어 셀트리온 3형제도 합병 나설 듯
주가 이상 매물대 두터운데 상승 여력 제한적
합병후 청사진 의문…대규모 주식매수청구 우려
회사 여력 제한적…업계선 ‘염가 투자 기회’ 기대
  • 셀트리온그룹 지주사 합병에 이어 셀트리온 3형제(셀트리온·제약·헬스케어) 합병 작업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대장격인 셀트리온의 경우 현재 주가보다 높은 금액대에 들어온 투자자들이 많은데, 주가 부진을 타개할 청사진이 마땅치 않아 합병 작업이 순탄하게 진행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투자업계에선 셀트리온 투자자들의 실망 매도가 염가 매수 기회로 이어질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명예회장은 2020년 1월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 셀트리온 3형제 합병 계획을 밝혔다. 그해 9월 셀트리온은 셀트리온홀딩스와 신설 셀트리온헬스케어홀딩스 합병 계획을 알리며 이후 3형제 합병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공시했다. 지난달 합병 셀트리온홀딩스가 출범하며 그룹 지배구조 개편 첫 단추는 꿰어졌다.

    남은 것은 셀트리온 상장 3형제 합병인데, 그룹에선 본격적인 합병 검토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3형제 합병이 완료되면 바이오, 케미칼, 연구개발(R&D) 등 쪼개져 있던 기능이 하나로 모이게 된다. 셀트리온의 발목을 잡았던 일감 몰아주기와 내부 거래, 회계 논란 등 논란도 상당 부분 잠재울 것으로 예상된다.

  • 걸림돌은 주가다. 셀트리온은 제약·바이오 분야 대장주로 군림하며 정부와 투자자들의 지지를 받아왔다. 회사 주가는 합병 계획 발표 이후에도 꾸준히 올라 한때 39만원에 육박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20만원 안팎을 오간다. 주요 제품의 판매 부진, 신제품 판매 지연 등이 겹치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셀트리온 3형제는 모두 시장 가격이 있는 상장사고, 주가도 거의 한몸처럼 움직이고 있다. 어느 시점에 합병에 나서든 합병비율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나 주가 상승 기대감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는 주주들로부터 합병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셀트리온 상황을 살펴보면 20만원 이상 구간에 매물대가 강하게 형성돼 있다. 회사가 팬데믹 국면에서 각광 받을 때 주식을 담은 투자자가 많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 물량이 모두 이익 실현을 하려면 셀트리온 주가가 역대 최고치를 찍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서로 얽혀있는 사업구조 상 합병 후 시가총액이 합병 전 3사 시가총액 합산액보다 높아지기 어려울 것이란 평가가 많다. 서 명예회장은 ‘주주들이 원할 경우’ 3사를 합치겠다고 했는데, 현재 주가보다 높은 금액대에 물려 있는 주주들이 호응할지 미지수다.

    합병을 반대하는 주주들은 회사에 주식을 사달라고 청구할 권리(주식매수청구권)를 갖는다. 청구권 행사 가격은 주주와 회사의 협의에 의할 수 있지만 싸게 사려는 회사와 비싸게 팔고 싶은 주주간 합의가 이뤄지긴 어렵다. 이 경우 상장사는 이사회 결의 전 2개월·1개월·1주일 가중산술평균 가격의 평균값으로 행사가를 정한다.

    셀트리온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보다 낮게 형성되면 주주들은 주식을 회사에 팔고 나가려 할 가능성이 크다. 주가가 행사가보다 높더라도 미래 성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주식장에서 손절할 수 있고 이는 곧 추가적인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회사의 합병 후 청사진에 따라 주식매수청구권 규모와 합병 추진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 셀트리온 지주사 합병만 해도 계획과는 달랐다. 당초 셀트리온스킨큐어도 합병 대상이었는데, 회사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를 약 57만원으로 정했고 청구 규모가 500억원에 달할 경우 합병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했다. 회사 주식 전체 가치 대비로는 약 5%에 불과한 규모였다. 서정진 명예회장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80%가 넘으니 무난히 합병이 이뤄질 수 있었지만 매수청구 규모는 500억원을 넘었고 결국 셀트리온스킨큐어가 합병에서 제외됐다.

    셀트리온그룹 입장에선 셀트리온 주가가 상승세여야 큰 차질 없이 합병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셀트리온과 셀트리온제약은 지난 10일 각각 1000억원, 5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 계획을 공시하며 주가 부양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달엔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가 현금과 주식 배당을 결정하기도 했다. 주가도 이에 화답했지만 장기적인 상승 효과가 날지 예단하기는 이르다. 오히려 단기적으로 주가가 오르면 묶여 있던 투자자들이 발을 뺄 기회로 여길 수도 있다.

    셀트리온 그룹에 대한 시선은 예전보다 서늘하다. 서정진 명예회장은 은퇴를 공식화하며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그러나 서진석·서준석 두 아들이 계열사 요직을 차지하며 사실상 승계 국면에 접어들었다. 소액주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던 서 명예회장이 퇴진하며 투심을 모을 구심점이 사라졌다는 평가도 있다. 신약 개발 역량을 입증해야 하는데 기대를 모았던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의 성과는 부진했다.

    현재 상황에서 셀트리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을 마무리하기 위해 합병을 밀어붙인다면 반대 주주 주식 매입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3사 시가총액 합산만 40조원이 넘는 점을 감안하면 주식 매입 규모가 조단위에 달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회사들이 막대한 현금을 쌓아두는 것은 아니고 R&D 비용도 필요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매입 금액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규모가 크다면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투자 업계에선 셀트리온 합병 과정에서 투자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는 상황이다.

    투자자로선 합병 과정에서 생기는 자사주에 투자하거나, 회사가 먼저 사들인 주식을 나중에 받아오는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 판단한 적정 가치보다 낮은 가격에 주식을 사들이면 차익을 기대할 만하다. 셀트리온그룹은 과거 JP모건 계열 펀드와 싱가포르투자청(GIC), 국내 사모펀드(PEF)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사례가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셀트리온 3형제 합병 과정에서 실망한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투자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살피는 중”이라며 “과거보다 주가가 많이 낮아진 상황이라 투자 위험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