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서한, 비공개 면담, 주주제안' 패스하고 소송으로 직행하는 국민연금
입력 22.01.17 07:00
취재노트
올해부터 주주대표소송 본격화 예고
수탁위에 소송권한 이전 전망
스튜어드십코드,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 마련하고도
스스로 힘뺐던 국민연금
이제와 소송으로 주주가치 제고? 경제계 반발
3년 임기 수탁위, 책임 있는 의사결정 가능할까
  •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국민연금의 압박이 가시화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주주대표소송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기금운용위원회는 주주대표소송과 관련한 주체를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이하 수탁위)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국민연금의 주주대표소송이 현실화 할 경우 재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국민연금 자체적으로 그동안 주주권 행사와 관련한 수많은 장치들을 마련했음에도, 주주대표소송이란 초강수의 카드를 꺼내 든 것에 대한 기업들의 불안감이 상당하다. 9명으로 구성된 수탁위가 얼마나 전문성을 갖추고 기업 활동에 관여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란 평가도 나온다.

    주주대표소송은 회사의 중대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에게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말한다. 상장회사는 전체 주식의 0.01% 이상을 보유한 주주면 소송 제기가 가능하고 일반 법인은 1% 이상을 보유하면 소 제기가 가능하다. 결국 국민연금이 주식을 보유한 모든 기업이 사정권 안에 들어오는 셈이다.

    아직 수탁위로 주주대표소송 권한이 넘어간 것은 아니지만, 오는 2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앞서 국민연금은 기금운용본부는 지난 12월 주주가치가 훼손됐다고 판단하는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비공개 서한을 발송한 바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삼성전자, 배터리 소송전으로 배상금을 물어야하는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기업 약 20~30곳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국민연금은 측은 “주주가치 훼손과 관련한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서한을 발송했고, 대표소송 관련 대상기업 선정, 소송제기 시기 등은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수탁자 보호를 위해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활동에 나서는 것은 긍정적인 요인으로 볼 수도 있다. 기금운용본부는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적극적인 투자활동에 나서고, 주주가치제고와 기금운용위원회 전문성 보완을 위해 수탁위에서 전문적인 검토와 심의를 거치는 보완장치도 마련돼 있다.

    사실 국민연금은 2018년 7월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에 관한 원칙)를 도입하면서 의결권 행사및 배당과 관련해 기업과의 대화 등에 머물던 주주권 행사 범위가 임원의 보수와 법령 위반 등으로 확대했고, 이를 통해 얼마든지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가능했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총 6가지 중점관리사안 즉 ▲배당정책 수립 ▲임원 보수한도 적정성 ▲법령 위반 우려로 기업가치의 훼손 또는 주주권익을 침해할 수 있는 사안 ▲지속적인 반대 의결권 행사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는 사안 ▲정기 ESG 평가결과 하락한 사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사안 등에 해당하는 기업을 선정 비공개 대화와 비공개(또는 공개) 중점관리 기업 선정, 주주제안 등 단계적 절차를 통해 주주권 행사에 나설 수 있다.

    또한 2019년 12월엔 경영참여 목적이 아닌 중점관리사안 및 예상치 못한 우려와 관련해 기업과 대화하고 개선방안을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기도하다.

    소송은 마지막 단계다. 이 같은 적극적인 주주권행사에도 불구하고 개선의 여지가 없을 경우에 시행하는 방안이다. 기금이 주주로서 회사와 꾸준히 소통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려 애썼음에도 주주가치가 크게 훼손됐다면 얼마든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소송의 제기는 기존의 적극적인 주주활동이 충분히 이행됐을 때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 하지만 금융당국, 정치권 등의 압박으로 국민연금의 활동이 위축됐던 측면을 감안하더라도 이제껏 국민연금이 투자기업들에 대한 소통과 관리 감독, 개선 방안 등을 이끌어 내기 위한 적극적 활동을 펼쳐왔다고 보기만은 어려운 시각도 존재한다. 

    국민연금이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행사한 기업들 가운데 실제로 안건이 부결된 경우는 찾아보기 드물었다. 

    국민연금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책임을 묻겠다던 한진칼의 경영권 분쟁 당시 지분율을 크게 낮추며 스스로 힘을 빼는 모습도 나타났다. 투자목적을 단순투자로 변경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주총에서 주주제안을 통해 주주들의 동의를 이끌어 낸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고, 2020년도 주총 시즌부터 사외이사 풀(POOL)을 구성해 일부 기업에 이사를 추천하겠단 전략도 가시화한 것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부터 기업들에 대한 주주대표소송을 본격화 한다는 것에 재계 및 경제단체가 반발은 수긍이 간다. 국민연금이 국민들과 투자자들로부터 정치적으로 완벽한 독립체라고 인정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칫 기업들에 대한 과도한 정치권력 행사로 악용할 여지에 대한 불안감도 존재한다.

    향후 주주대표소송 권한을 얻게 될 수탁위가 기업 소송을 최종 결정할 만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수탁위는 경제계, 노동계, 지역가입단체 등에서 각각 3명씩 추천 총 9명의 위원으로 변호사, 회계사, 교수 등으로 구성돼 있다. 

    주주들의 압도적인 찬성을 받았던 LG화학(82%), SK이노베이션(80%) 등의 분할과정에서 수탁위가 결정을 내린 국민연금만이 반대표를 행사하며 의사결정의 합리성에 대한 지적을 받기도 했다. 기업에 대한 형사 소송이 수년이 걸리는 점을 고려할 때 임기가 3년인 수탁위 구성원들이 얼마나 책임감 있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