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ENG 상장 흥행 예고에 차별성 숙제 안은 '모회사' 현대건설
입력 22.01.18 07:00
'정의선 자금줄' 현대ENG 상장에 투자자 관심 집중
주가 관리 기대감에 그룹 신사업 밸류체인 담당
현대건설, 주택·원전 등 기존 사업 역량은 강점
"독자적 사업영역 구축해 기업가치 제고해야"
  • 현대건설 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이 다음달 코스피에 입성한다. 공모가 밴드 중반(6만6800원)으로만 잡아도 시가총액은 5조3000억원, 현대건설(4조9887억원)을 제치고 건설 대장주에 등극할 전망이다.

    주택, 플랜트 등 양사의 핵심 사업이 중복되는데다 오너 일가 지분이 있는 현대엔지니어링이 상장을 하다보니 시장의 관심은 한쪽으로 쏠리는 모양새다. 독자적인 사업영역을 구축하고 기업가치를 높일 방법을 마련해야 하는 현대건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최근 회사의 강점과 미래 성장 전략을 설명하는PDIE(Pre-Deal Investor Education)에 나섰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주관사단의 리서치센터와 함께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PDIE 이후에는 17일부터 자금조달 설명회를 통해 본격적인 공모주 마케팅에 나서고 25~26일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을 통해 공모가를 확정할 전망이다. 공모가 밴드 중반에만 확정돼도 모회사인 현대건설을 제치고 건설업종 시총 1위에 올라서게 된다. 

  • '형을 넘어설 만한 아우'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장이 본격화하면서 시장에선 현대건설의 역할론에 의문을 품고 있다. 모회사-자회사 관계인 현대차그룹의 두 건설사가 차별성이 크지 않은데다 현대건설은 오너 일가 지분이 없어 상대적으로 투자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와서다. 

    두 회사의 사업 차별성이 없어진건 2014년 현대엔지니어링이 비상장 건설 계열사였던 현대엠코와 합병하면서다. 합병 이후, 현대엔지니어링은 화공플랜트의 설계와 시공에서 건축, 주택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그 결과, 현대엔지니어링의 지난해 3분기 사업부문 매출 비중에서 건축∙주택 부문(45.70%)이 기존 사업 영역인 플랜트∙인프라 부문(42.22%)을 앞지르기도 했다. 

    신사업에서도 두 회사의 방향성이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현대건설이 진출한 해상풍력, 원전 등 저탄소 에너지 신사업에 현대엔지니어링도 뛰어들고 있고, 디벨로퍼(개발사업자) 역량을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업 수익성 측면에선 오히려 현대엔지니어링이 우세하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연속 현대건설보다 많은 영업이익을 거둬들였다. 유안타증권은 2021년 현대엔지니어링의 영업이익은 3980억원으로 현대건설(3010억원)보다 더 높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이 건설사 시총 1위가 된다면 현대건설의 추가적인 주가하락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덱스 펀드나 상장지수펀드(ETF)의 투자 수요 일부가 현대건설에서 현대엔지니어링으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 담당의 한 증권사 연구원은 “오너 일가의 구주 매출이 대다수이지만 상장 이후에도 현대엔지니어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며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컨소시엄 사업에서 매출과 순이익을 현대엔지니어링에 몰아줬던 전례가 있는 만큼, 그룹 차원의 지원도 뒷받침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택, 플랜트, 신재생에너지 사업 등 건설사의 사업 영역이 다 비슷한데, 현대엔지니어링이 밑에서 무섭게 올라오고 있어 차별성을 찾아야 하는 게 현대건설이 당면한 과제”라고 말했다. 

  • 일부 사업 영역이 중복되지만, 이번 IPO에서 현대건설의 구주매출 물량이 없는 만큼 각자의 영역이 두드러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이번 상장에 현대건설의 구주매출이 없어 현대엔지니어링의 최대주주 지위는 유지되기 때문에 각 사가 갈라지기 보다는 각사 역량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현대건설의 경우, 유력 대선 후보들이 주택공급 확대를 내걸고 있는 만큼 주택 사업을 순조롭게 진행하는 가운데 자회사 현대스틸산업을 통한 해상풍력사업, 소형모듈원전(SMR) 사업 등 앞서 진출한 신재생 사업에서 좋은 실적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룹사 차원에서는 두 건설사가 경쟁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최근 대형 건설사들이 ‘디벨로퍼(개발사업자)’로서의 역량을 키우는 가운데,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같은 사업에서 맞붙는다면 그룹 차원에서는 사업을 따낼 확률이 두 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복투자 비용을 줄이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양사의 차별성을 드러내고 양사의 기업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만약 그룹 차원의 조정이 이뤄질 경우, 현대엔지니어링이 계열사의 관련 사업을 맡을 가능성이 커보인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차그룹의 신사업인 수소밸류체인의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수소 비전 2040’을 선포하며 수소에너지를 대중화하겠다고 밝혔다. 수소전기 상용차의 대중화는 물론, 주택, 빌딩, 공장, 발전소 등으로 수소에너지를 산업 전반에 확대해 수소생태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현대엔지니어링도 이에 발맞춰 이산화탄소, 폐플라스틱에서 수소를 생산하는 플랜트 건설에 나서며 수소 사업에 나서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8월 수소가스 충전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하고 수소 플랜트 건설 등 수소 사업에 공모자금을 사용할 계획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차 수소밸류체인의 수소 에너지 공급을 담당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또 다른 증권사의 건설 담당 연구원은 “현대건설은 주택이나 화공플랜트에서 워낙 강점이 있기 때문에 그룹 차원에서 굳이 현대건설을 지원해줄 필요가 없다”며 “현대차그룹의 수소 밸류체인에 필요한 시설을 짓거나 수소 플랜트 등은 현대엔지니어링이 주도적으로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엔지니어링 역시 오너 일가 지분이 상장 후 청산된다면 자체적인 기업경쟁력 증명이 중요한 과제로 남을 예정이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건설보다 시장의 관심을 받는 이유는 오너 일가의 지분이 남아있어 상장 이후에도 기업 가치 제고에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며 "현대엔지니어링이 정의선 회장의 자금줄에 불과하다는 평에 기관투자가의 투심이 좋지 않은데 기업 자체 경쟁력에 대한 설득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