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기 상장’ 재검토하는 SK·카카오…고민 깊어진 CJ·KT·한화
입력 22.01.20 07:00
규제 강화 움직임에 ‘상장 계획’ 타격 불가피
분할 검토 기업들도 선택지 좁아질 수 있어
“국내 대기업, 자금 조달 접근법 바뀌어야”
  • 기업의 핵심 사업부를 분할해 재상장하는 ‘쪼개기 상장’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자 대기업들의 재무 전략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대선후보들이 물적분할 규제 공약을 내걸 정도로 논의가 불당겨진 만큼, 앞서 발표된 올해 상장 계획들도 ‘우선 스톱’ 분위기다. 또 분할 후 상장 허들이 높아지면 대기업들의 프리IPO(상장 전 투자) 유치 등 자금조달 전반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하는 방법은 국내 대기업들의 자금 조달 창구로 적극 활용되어왔다. SSG닷컴, SK온, 카카오엔터·모빌리티 등 올해 예상 IPO(기업공개) 대어 대부분이 대기업 계열사에서 물적분할한 자회사다. 지난해 IPO 대어였던 SK IET·바이오사이언스, 카카오뱅크·페이도 모두 쪼개기 상장 사례다. 

    이들 회사가 모두 앞으로 이번 논란이 어떻게 종결될지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의 투자자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주식시장에서는 단기적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포스코는 물적분할 발표 다음날 주가가 4.58% 하락했고, 만도는 만도모빌리티 분할을 발표한 다음날 11.17% 하락했다. NHN도 지난 12월 클라우드 사업을 물적분할해 ‘NHN클라우드’를 신설할 계획이라고 밝힌 다음날 주가가 10% 급락했다. 

    여론이 이렇다보니 기업가치 확대에 자회사 상장이라는 ‘파이낸셜 스토리’를 애용해 온 SK로서는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 SK바이오팜, SK바이오사이언스, SKIET 등이 분할 후 재상장에 나선 대표적인 계열사다. 규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다음 타자인 SK온의 IPO가 당장은 여의치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에서 분할된 SK온은 지난 12월 주관사 선정 후 3조원 수준의 프리 IPO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연이은 쪼개기 상장으로 재미를 본 카카오는 재검토에 나섰다. 카카오는 최근 계열사 경영진의 ‘먹튀 논란’ 등 여론이 악화하자, 13일 “상장 관련해서도 재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카카오는 지난해 카카오뱅크·페이·게임즈 등 3개 자회사 상장에 이어 올해 카카오오빌리티·엔터테인먼트 상장을 계획했다. 이에 카카오의 주주들은 계속되는 쪼개기 상장이 모회사인 카카오의 기존 주주가치를 희석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 최근 잇따른 사업부 분할로 IPO를 통한 적극 자금조달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 CJ그룹도 선택지가 제한될 수 있다. 

    CJ그룹은 ‘2023년까지 10조원 투자’ 목표 달성을 위해서 막대한 자금조달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 12월 CJ ENM은 예능·드라마·영화·애니메이션 사업의 주요 제작 부분을 물적분할해 신설법인 설립 계획을 밝혔고, 이달 CJ제일제당은 건강사업부를 분할해 ‘CJ 웰케어’로 분사했다. 지난 10월 CJ ENM에서 물적분할한 티빙은 프리IPO 투자 유치를 진행 중이고, 2019년 CJ올리브네트웍스에서 인적분할한 올리브영은 상장 주관사를 선정해 상장 작업중이다. 

    사업부의 물적분할을 검토하던 기업들도 당장 진행을 결정하기는 조심스럽다. KT는 비통신 기업간거래(B2B) 사업의 핵심인 클라우드 및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사업부문을 분사한 후 사모펀드(PEF)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물적분할 방식이 유력하지만, 해당 부문이 비통신 강화 전략에서 핵심인 부분인 점을 고려하면 신중히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 

    한화솔루션도 첨단소재부문을 물적분할한 후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큰 진전이 없는 상태다. 지난해 9월 물적분할 가능성이 알려진 후 한화솔루션의 주가는 4만원대 중반에서 12월초 3만원대 초반까지 하향곡선을 그렸다. 다만 한화솔루션의 경우 비주류 사업을 떼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분할 후 매각 시 재무개선 및 투자 재원 마련 효과가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3분기 한화솔루션의 전체 매출 중 첨단소재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7~8%에 그친다. 

    한 기관투자자는 “지금의 ‘쪼개기 상장’ 논란은 국내 대기업들이 주주 보호를 간과하고 과도한 투자계획을 가진 데서 출발한 문제”라며 “LG, 한화, 두산 등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회사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일을 벌인 후 성장 명목으로 돈을 빌려달라고 투자자를 찾는 사례가 너무 많았고, IPO나 유상증자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결국 재무 부담을 시장에 떠넘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프리IPO로 자금을 받아 투자하려는 대기업들의 움직임 전반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그룹내 ‘신사업’이었던 11번가와 쓱닷컴 등 e커머스 기업, SKT의 티맵모빌리티, CJ의 티빙 등이 물적분할로 설립된 직후 PEF(사모펀드)로부터 초기 투자를 받으며 기업가치를 키워왔다. ‘자금줄’ 역할을 해온 PEF들은 향후 규정 변화가 투자금 회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당국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국내 기업들이 자금조달을 위한 분할 및 상장에 주주와의 이해관계를 고려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LG화학의 경우도 만약 에너지솔루션(배터리) 사업부를 모회사에 남기고, LG화학 사업부를 물적분할해서 100% 자회사로 내리고 석유화학 등 비주류 사업을 매각해 배터리사업에 투자했으면 주주와의 이해관계도 맞고 시장의 불만이 없었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됐다. 다만 LG화학으로서는 배터리 사업부를 자회사로 만들어야 외부투자자들이 대규모 자금을 제공할  '동기'가 마련된다는 점, 또 성장사업에 대한 높은 가치평가를 받으면서도 지배회사의 지분희석으로 인한 지배력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불가피했다는 반박도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대선 이후 관련 규제가 정립이 되면 기업들도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며 “우선청약권 등 제도가 개편이 되면 오히려 시장이 성장성 있는 사업을 물적분할하는 기업을 찾게 되는 순기능이 나타날 수도 있는데, 결국엔 대주주가 어떤 액션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시장의 평가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