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 때마다 백기사 자처한 칼라일…글로비스發 현대차 지배구조개편 탄력
입력 22.01.21 07:00
현대카드에 이어 글로비스에 투자한 칼라일
정의선 회장 든든한 우군 자처
정 회장이 나서기 애매한 ‘글로비스 가치 키우기’
이사진 합류한 칼라일, 역할 대리 가능성
실탄만 1.6兆…칼라일 자금 더하면 조단위 M&A도 충분
  • 현대차그룹에 경영권 승계작업은 완성 단계에 달했고 이제 남은 숙제는 정의선 회장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즉 정몽구 명예회장이 보유한 현대모비스와 현대차의 지분을 오롯이 넘겨받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수년 전만 해도 정의선 회장이 지분승계와 상속세 납부라는 ‘정공법’을 선택하기엔 자금이 다소 부족했다. 그러나 정의선 회장은 최근 글로비스 지분 매각,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공개(IPO), 추후엔 보스턴다이내믹스 등의 상장을 통해 추가 자금 마련에 나설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쳐지면서 자금 문제는 일정 부분 해소했다는 평가다.

    지분 승계과정에서 정의선 회장이 최대주주인 글로비스의 활용도 배제할 순 없다. 당장 정 회장이 지분 매각을 통해 현금 확보에 나선다기보단 기업가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수반돼야 지분 스왑 및 유동화 등 비롯한 활용도가 높아진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현대차 지배구조개편의 밑그림이 점차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꾸준한 관계를 맺어온 칼라일의 역할에 기대감이 모이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의 그룹 지배구조에선 정의선 회장이 정몽구 명예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을 인수하면 그룹 지배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7.15%)가치는 약 1조6000억원이다. 정의선 회장은 올해만 6000억원 이상을 확보했다. 그 동안의 배당 재원 등을 포함하면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이란 평가가 나온다.

    사실 정의선 회장이 현대모비스의 지분만을 인수한다면 그룹 지배력을 유지하는데 큰 문제가 없으나 장기적으론 순환출자고리를 끊어내야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가장 큰 숙제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어냄과 동시에 현재 오너가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의 최대주주(17.3%)는 기아(KIA)이다. 현재 지분가치는 약 4조3000억원,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하면 이보다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지난 2018년 현대차가 실패한 지배구조개편의 방안은 ▲현대모비스 모듈 및 AS부품 사업 분할 후 글로비스와 합병 ▲정 회장 부자의 계열사 지분 정리 후, 기아·현대제철·글로비스 보유 현대모비스 지분 인수 ▲정 회장 부자의 현대모비스 지배력 유지 등이 핵심이었다. 일단 투자금융업계에선 과거 주주들의 반발을 고려해 현대모비스의 분할과 같은 방식이 재차 추진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정 회장이 모비스의 지분의 추가 인수, 지배력 강화에 나설 것이란 전망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 이 과정에서 문제는 역시 자금이다. 정의선 회장이 현재 보유한 계열회사들의 지분가치는 약 4조원대 이상으로 평가 받는다. 이 가운데 추후에도 지분을 사들여야 할 개연성이 높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제외하고 가장 활용도가 높은 지분은 역시 글로비스이다.

    최근 정 회장 부자의 지분매각으로 인해 글로비스의 주주구성은 ▲정의선 회장(19.9%) ▲덴 노르스케 아메리카린제 AS(Den Norske Amerikalinje AS)(11%) ▲칼라일그룹(10%) ▲현대차(4.9%) ▲현대차 정몽구 재단(4.5%) 등으로 재편됐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오너의 핵심 계열회사 지분이기 때문에 확실한 우군이 아니면 매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2대주주와도 충분한 협의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글로벌 PEF를 주요 주주로 맞아 현대차그룹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공감대가 형성됐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칼라일은 2017년 GE캐피탈이 보유한 현대카드 지분 43%를 매각할 당시 계열회사인 알프인베스트파트너스(AlpInvest Partners)를 통해 지분 일부(5%)를 사들인 바 있다. 당시 맺은 이후에 정 회장은 2019년 칼라일이 주최한 좌담회에 참석하면서 공고한 관계를 나타나기도 했다.

    칼라일은 글로비스 3대 주주로 올라서며 이사 1인의 지명권과 함께, 정의선 회장이 글로비스 지분 매각에 나설 경우 함께 매각할 수 있는 태그얼롱(Tag-along) 권리를 확보했다. 해당 권리를 통해 칼라일은 정 회장이 지분을 매각해 현금 확보를 시도할 때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한 차익을 함께 얻을 수 있게 됐다.

    정 회장과 칼라일이 한 배를 탄 만큼 글로비스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은 공통의 목적이 됐다. 일단 글로비스가 일감몰아주기 규제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계열사 내부거래 물량을 줄이는 것은 현안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장기적으론 외부 매출 물량을 크게 늘려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추고, 그룹 내 협상력을 높여 완성차 업체와의 수직적 관계를 개선하는 과제가 남았다. 이를 비쳐볼 때 현대차그룹의 거래 과정에서 글로비스가 단가 인하를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너 일가의 회사라는 색채가 강한 상황에선 단가 인하 제안 같은 글로비스에 우호적이고, 반대로 완성차 업체에 부담이 되는 전략을 취하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외국계 PEF의 추천 인사가 이사진에 포진하게 될 경우엔 이야기가 다르다.

    투자금융업계 관계자는 “이번 지분 매각이 단순히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벗어나기 위한 목적도 있으나 PEF를 투자자로 맞아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글로비스에 유리한 사업 조건을 조성하겠단 의도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꾸준한 실적, 단가 인하 등을 통한 수익성 강화, 모빌리티 사업 투자 등으로 인한 사업 확장 등 글로비스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방안은 꾸준히 그리고 다각도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단숨에 확장 전략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기업 인수·합병(M&A)이 확실한 방안으로 꼽힌다.

    지난해 3분기 연결 기준 글로비스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총 1조6500억원(현금 및 보통예금 7250억원, 예적금 9300억원)이다. 매출채권(2조5700억원)을 포함한 금융자산은 약 5조1000억원 수준이다. 

    이는 2020년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에 현대글로비스가 1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출자한 것과 같은 거래가 언제든 등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사실 그동안의 현대차그룹의 핵심 M&A(한전부지 인수, 앱티브 JV설립 등) 과정에선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가 주축이었으나 현대차그룹의 미래를 가장 잘 대변하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인수전에 기아 대신 글로비스가 참여한 것에 대한 의의는 남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글로비스가 확장 전략을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칼라일의 주목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함을 물론, 공동투자와 같은 방식도 언제든 열려있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