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정부 출범 5년간 확대된 벤처캐피탈(VC) 시장 유동성의 결말은 무엇일까. 해당 기간 동안 창업은 늘었고 일각에선 시장에 풀리는 '눈먼 돈'이 정당한 밸류에이션(Valuation)을 어렵게 만든다는 토로가 쏟아졌다.
최근 금리 인상기와 맞물려 조정받고 있는 주식시장과 달리 비상장 주식들은 여전히 '오버밸류'(Over Value)를 형성하고 있다. 최근엔 동종업계 기업이 프리IPO(상장전투자유치)에서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면 이를 호재로 여기고 펀딩에 나서는 사례가 유독 늘어난 모습이다.
VC업계 자금줄이 마르지 않을 것이란 믿음의 근거는 대체로 '정책자금'이었지만, 최근 한국벤처투자의 모태펀드 출자사업 예산은 줄어들었다. 2~3년 이후 비상장주식들도 조정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드는 배경이다. 심사역들은 신중해졌다. 기술적으로 뛰어나 전략적투자자(SI)에게 흡수되거나 MAU(월간 활성 사용자수)가 높은 플랫폼이더라도 매출이 나오는지를 보기 시작했다.
-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이래 벤처투자 금액은 5년 만에 3배 이상 늘었다. 투자건수도 2017년 상반기 1033건에서 2021년 상반기 2367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이같은 유동성 확대에 비상장주의 밸류는 고공행진 중이다. 먼저 이미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비상장주의 밸류는 단기간 확대되고 있다. 사례로 꼽히는 건 금융플랫폼 '토스'(Toss)를 운영하고 있는 '비바리퍼블리카'다. 올초 프리IPO에 나서는 비바리퍼블리카의 몸값은 지난해 6월 투자유치 당시 인정된 8조원가량에서 최대 20조원까지 이를 것이라 점쳐진다.
이에 대해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토스는 확장할 사업 자체가 한정된 게 분명한 데도 불구, 투자에 나서는 분위기에 몸값을 높게 인정받는 모습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시리즈A 단계의 스타트업도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는다. 업계에서 꼽히는 곳으로는 자율주행 스타트업인 '포티투닷'(42dot)이 있다. 네이버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인 송창현 대표가 설립한 기업으로, 1000억원 규모의 시리즈A를 유치한 정도에 그침에도 밸류는 5000억원 수준으로 거론된다.
'눈먼 돈'이 미친 여파도 있다는 지적이다. 늘어난 유동성 덕에 소액펀드가 크게 늘면서 작은 규모의 기업들도 투자 받기 어렵지 않았다.
한 때 '인공지능(AI)을 활용한'이란 표현이 기업 소개에 붙을 경우 자금 조달이 비교적 용이했다는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300억원짜리 펀드가 수도 없으니 5~10억원 정도 투자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또한 동종업계에 프리IPO로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벤처기업이 있는 경우, 해당 기업을 피어그룹(Peer Group)으로 삼고 펀딩에 나서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일례로 배우 전지현씨가 광고하는 핀테크(Fintech)기업 '핀트'나 '핀다' 등이 핀테크 투자 열풍에 힘입어 펀딩에 나선 상태다. 이미 커진 기업에 투자 집행 기회를 놓친 VC들은 동종업계 기업 대상 투자를 검토하기도 한다.
창업도 늘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창업이민인재양성프로그램'을 활용, 유럽 국가에서 넘어온 20~30대 청년 창업가들이 한국에서 '웨어러블' 등 관련 사업을 꾸리고자 국내 주요 로펌에 자문을 요청하려 문을 두드리고 있다. 창업에 있어 상대적으로 허들이 높은 바이오 부문에서도 '기술'을 앞세운 창업 사례가 늘고 있어 바이오 전문 VC 하우스들은 최근 상당히 분주해졌다는 설명이다.
비상장주의 가치는 치솟는 가운데 주식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이달 들어 코스피 지수는 연일 하락, 25일 기준 전 거래일(2790.00)보다 0.20% 내린 2786.41에서 출발했다. 코스닥 지수도 전일 대비 2.05% 하락한 896.68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움직임이 이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
다만 비상장주 또한 이같은 조정을 받진 않을지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당장은 정책자금이 워낙 많이 풀린 만큼 밸류가 당장 내려가진 않을테지만 상장 주식들이 연이어 조정받을 경우 비상장주식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간 '비상장주 밸류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란 주장의 근거는 '정책 자금'이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한국벤처투자의 모태펀드 출자사업 예산은 줄었다.
지난해 1조700억원가량에서 올해 5200억원으로 책정된 상태다. 실제로 이달 모태펀드 1차 정시 출자사업 계획에서 일부 분야(비대면·멘토기업 매칭출자 등)의 '출자비율'이 40%에서 30%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대선 직전 줄어든 예산에도 중기부가 존재감을 보이기 위해 '사업규모 축소'가 아닌 '출자비율 축소를 통한 사업규모 유지'를 택한 결과란 설명이다. 운용사들은 정책 자금보단 출자자(LP)들로부터 모집해야하는 자금 규모가 늘게 됐다. 이 경우 소액펀드에 투자하는 일부 LP들은 '시장이 움츠렸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은 건 우려다.
한 관련업계 관계자는 "물론 펀드 결성이 어려움이 있으면 중기부가 연장 조치를 하겠지만 출자비율을 줄이면 펀드 출자 작업이 상당히 어려워질 것 같다"이라면서도 "시장이 움츠리면 소액펀드에 투자하는 출자자들은 좀 움츠려드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VC업계 심사역들은 신중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투자 집행뿐만 아니라 투자금 회수 또한 중요한 까닭에서다.
투자 단계나 분야에 따라 상이하지만, 일부 심사역들은 '기술 기반' 기업이나 주력 제품 수요가 있는 곳 위주로 매물을 찾고 있다. 최근 마켓컬리로부터 투자를 받은 드라이아이스 제조 설비업체 빅텍스도 '전략적 투자자(SI)들의 수요가 많을 것'이란 판단에 여러 심사역들이 투자를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플랫폼이나 커머스 등 트래픽이 중요한 기업은 시리즈A 단계라 하더라도 '매출 증가세'를 중시하는 기조로 돌아섰다는 전언이다. 과거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에 주목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이익이 나는가' 여부를 투자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여러 벤처기업들이 투자를 받기 위해 VC들과 접촉점을 넓히려고 하지만 '이익이 나는가' 여부에 초점을 맞추어 보려고 한다"라며 "증권사 IPO 부문에서 VC 분야로 넘어오는 인력 가운데선 기술력이 있다고 판단했던 비상장 기업을 VC 하우스에 소개, 후속 투자를 한 뒤 상장까지 이어줘 엑싯(투자금 회수)하려고도 한다"라고 말했다.
文 정부 5년, 확대된 VC시장 유동성의 결말은?
비상장주 고밸류 여전…올해 모태펀드 예산은 삭감
증시처럼 비상장주도 조정 받나 우려감 점점 커져
심사역들 '신중 모드', 기술력·매출이 판단 근거
비상장주 고밸류 여전…올해 모태펀드 예산은 삭감
증시처럼 비상장주도 조정 받나 우려감 점점 커져
심사역들 '신중 모드', 기술력·매출이 판단 근거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2년 01월 26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