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돈 많이 벌어도 주가는 제자리!"...화난 주주들 배당ㆍ자사주로 달래는 기업들
입력 22.02.24 07:00|수정 22.02.24 07:36
유동성 파티 끝에 선 기업들
회사 이익 최대규모지만 주가는 그닥
"이익 공유하든가, 아니면 주가라도 오르든가"
화난 주주들…기업들은 앞다퉈 배당 등 약속
“지속 가능성이 관건, 대폭 확대한 환원책은 부담”
글로벌 행동주의펀드 활개…소액주주도 언제든 편승 가능
  • 한국 증시의 상승세는 이미 꺾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3300선을 넘보던 코스피는 2600대가 위태롭다. 주요 국가들의 유동성 완화 정책은 종식했다. 금리와 원자재 가격 상승, 높아진 비용 구조 등 대내외 변수로 인해 국내 증시의 가파른 상승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대세 하락장과는 대조적으로 지난해에 국내 주요기업들 상당수는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코로나 장기화하면서 소비 심리가 다소 완화하며 제조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됐고, 금융시장에 불이 붙으며 개인 자금이 몰린 금융회사들도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기업의 실적이 더 이상 주가를 받치지 못하는 상황, 결국 기업들의 실적과 증시의 괴리감이 점차커지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이에 대한 피로감은 고스란히 주주들의 몫이 됐다.

    기관·외국인·개인투자자 모두 기업을 향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내 증시에 큰 손은 더 이상 기관투자가, 외국인투자자만이 아니다. 코로나 시국에 개인투자자들이 급증했고, 이미 증시를 움직이는 주요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수년 전부턴 국내에서도 행동주의펀드, 헤지펀드들의 기업에 대한 공격이 가시화했다. 유동성 파티의 끝에서 기업들은 이제 외부의 공세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해야할 시점이 됐다.

    높아지는 금리와 원자재 가격 그리고 임금,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에 놓인 기업들은 주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전례없는 환원책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역시 배당이다.

  • 전년 대비 배당규모를 축소한 삼성전자를 제외하고 이달 중순까지 공시한 국내 상장기업의 전체 배당금액은 전년 대비 40%가량 늘어났다. 회계연도 총 배당금액이 1조원을 넘은 곳은 2020년 삼성전자가 유일했으나, 2021년엔 현대차·포스코·기아·KB금융·SK하이닉스, 신한지주 등이 1조원 이상을 배당하는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일부 기업은 기저효과로도 해석할 수 있으나 실적에 기반한 기업들의 전반적인 배당금 확대 기조는 뚜렷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SK는 2015년 통합지주회사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인 주당 8000원(기말배당 6500원, 중간배당 1500원)을 배당한다. 총 배당규모는 전년(3700억원) 대비 21%늘어난 4476억원이다. 지난해 역대 최대규모 실적을 달성한 현대차그룹 계열사들도 배당을 크게 늘리며 그룹 차원의 배당금은 총 3조원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한 기아는 전년 대비 3배가 늘어난 주당 3000원의 배당을 결정했다.

  •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기록한 금융회사들 또한 배당성향을 크게 끌어올렸다. KB금융과 하나금융, 신한금융은 26%, 우리금융은 25.3%의 배당성향을 나타내며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배당성향을 강화했다. 

    2년 연속 영업이익 1조원대를 기록한 미래에셋증권, 창사이래 처음으로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벌어들인 삼성증권도 배당을 강화했다. 미래에셋은 보통주와 우선주 각각 300원, 330원의 현금배당을 지급하고, 자사주 2000만주를 소각한다. 삼성증권은 1주당 3800원, 총 3393억원의 배당하며 전년 대비 규모를 2배 가까이 늘렸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시가배당률 6.8%를 기록, 교보증권은 차등배당폭을 확대했다.

    업계로 폭을 넓히면 통신3사, 그리고 패션업계 등의 배당이 눈에 띈다. SK텔레콤은 시가배당률 2.7%에 총 3612억원을 결의했고, KT는 전년대비 41% 늘어난 현금배당을 결정했다. LG유플러스는 배당성향을 별도 기준 순이익의 30%에서 40%로 상향 조정했다. 전년 대비 40% 이상의 영업이익 성장률을 보인 휠라홀딩스는 전년과 비교해 4배가량 늘어난 배당금을 지급한다.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는 방식도 주주환원책 중 하나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은 최근의 악재에서 벗어나 주가 방어가 시급한 기업들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다.

    올해 들어 바이오 섹터의 전반적인 약세, 분식회계 의혹 등으로 주가가 급락한 셀트리온은 계열사 셀트리온헬스케어와 함께 자사주 매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경영진의 대규모 스톡옵션 행사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카카오는 별도 기준 잉여현금흐름(FCF)의 15~30%의 자사주를 매입하고 일부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모시장(IPO) 최대어로 꼽혔던 크래프톤 또한 공모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주가에 장병규 의장, 배동근 CFO가 자사주를 매입하기에 나섰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지난해 실적에 기대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책을 쏟아내고는 있지만, 관건은 지속 가능성에 있다”며 “코로나 기저효과로 인한 어닝서프라이즈, 대세 하락장에서 발표한 주주환원책은 당장 주가방어에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기업에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의 주주환원책이 쏟아지는데는 주주들의 목소리가 한층 커지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이미 수년 전부터 ESG를 강조하며 국내 기업의 거버넌스 문제를 지적하는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이 늘고 있고, 국민연금을 위시한 국내 기관들도 기업에 대한 주주정책 강화, 거버넌스 개선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기업들을 차치하고도 국내 운용사들이 소액주주들과 힘을 합쳐 기업들에 주주제안을 요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VIP자산운용은 한라홀딩스에, 안다자산운용은 SK케미칼 등에 공개적으로 주주환원책을 요구했다. 글로벌 투자자 가운데선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인 네덜란드 공무원연금(ABP)의 기금운용자회사 APG가 삼성전자와 SK 등 10곳의 대기업에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요구했다. 현재는 탄소 발생 감축, 기후위기 대응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나 해외기관투자가가 직접적으로 국내 기업을 가시권에 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의 긴장도는 상당히 높아졌다.

    금리 및 원자재 가격의 상승, 박스권에 갖힌 장세가 지속할 것으로 전망되명서 헤지펀드, 행동주의펀드 등이 더욱 득세할 수 있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현재는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국내 사례는 많지 않으나 기업들의 환원책이 미미해질 경우, 언제든 투자자들의 마음이 외부 세력에 쏠릴 수 있다. 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기관투자가들보다 개인투자자들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엔 더욱 그러하다.

    실제로 장기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도시바(Toshiba), 세븐앤아이(7andi;세븐일레븐 소유) 등도 행동주의펀드의 압박을 받고 있다. 미국의 홈트레이닝 업체 펠로톤(Peloton), 장난감 제조업체 해즈브로(Hasbro) 등도 행동주의 투자자들로부터 공세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 기업들의 성장이 정체되는 시점, 그리고 주주환원책이 예년 대비 미흡해지는 시점에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재계의 불안감이 현재의 주주환원책 확장 열풍을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