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열차 타지 않겠다지만…뚜렷한 명분도 우군도 없는 산업은행
입력 22.03.16 07:00
尹, 산업은행 콕 집어 부산 이전 강조…어느 때보다 실현 가능성 커
산업은행은 경쟁력 약화 이유로 반발하지만 서울살이 평가는 의문
서울 이점 많지만 지방에서도 자금 조달·시장 소통 가능하다 평가
정치권에서 부산 이전 제동 걸지 미지수…국책은행간 공조도 의문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산업은행 부산 이전 의지를 여러 차례 드러냈는데 현실화할 것인지 관심이 모인다. 산업은행은 국가 경쟁력이 약화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그간의 역할이나 성적표를 보면 반드시 서울에만 있어야 할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국책은행 지방 이전은 여야 할 것 없이 내세워 온 공약이라 정치권에서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크지 않다. 다른 국책은행, 공공기관도 산업은행에 힘을 실어주기보다는 함께 거론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산업은행 지방 이전은 선거 때마다 표심을 잡을 카드로 쓰이다 유야무야된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엔 분위기가 다르다. 윤석열 당선인은 지난 1월 부산 유세에서 부산이 세계 최고의 해양도시로 발돋움하려면 금융자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국회를 설득해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대선 직전인 지난 4일엔 산업은행 외에 대형 은행과 외국 은행도 부산에 자리잡게 하겠다고 언급했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 계획은 대선 캠프 정책위원을 맡은 박성훈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선인의 핵심 측근인 장제원 비서실장은 부산이 고향이자 지역구고,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도 부산 출신이다. 당선인이 특정 기관의 이름을 콕집어 이전 계획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보니 당선인 쪽에서 산업은행 이전 목표를 수정하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이 많다.

    산업은행은 본점 이전 계획에 반발하고 있다. 산업은행의 기여도를 감안하면 지방 이전 시 국가 경쟁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05년에 1차 이전대상에서 빠졌었는데 이제 와서 이전하겠다니 납득하기 어려울 법도 하다. 지난 1월 이동걸 회장은 산업은행의 지방 이전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라고 지적했다. 최근 대형 캐피탈사 경력직 채용에 산업은행 직원들이 대거 지원하는 등 내부 동요도 일고 있다.

    산업은행은 혁신성장 지원, 글로벌 확장 등을 꾀하고 있다. 부산보다는 서울이 금융산업 인프라가 잘 갖춰진 것은 사실이다. 노조 주장대로 서울에 있으면 자본시장과 소통, 기업과의 협의, 대면 마케팅 등에 더 유리하다. 우수 인력도 당연히 부산보다는 서울에 많다. ‘마차를 말 앞에 둔 꼴’이라는 이동걸 회장의 지적처럼, 금융사가 간다고 꼭 금융산업이 발전하는 것도 아니다.

    서울에 남아야 한다는 산업은행의 주장이 틀렸다고 보긴 어려운데, 그렇다고 반드시 서울에서만 국책은행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서울에 있으면서 뚜렷한 족적이나 성과를 남겼는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노조가 밝힌대로 ‘업무·비용상 비효율 및 직원의 불편함’이 생길 수 있지만 그런 명분이 부산행 급물살을 되돌릴 수 있을 정도인지는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산업은행은 ‘시장형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한다. 경쟁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공급한다는 것인데 최근 몇 년간은 저금리 공세를 앞세운 영업으로 시장의 원성을 샀다. 기업이나 다른 금융사와 관계에서 우위에 서려는 성향이 강해 비판을 받는 경우도 많았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이 몰려 있는 서울에 있어서 글로벌 경쟁력이 올라갔는지는 의문이다. M&A 전문성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산업은행은 국내외 채권 발행시 주관사와 투자자들간 소통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하는데, 부산으로 이전한 공사들도 채권을 잘 찍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채권 발행 업무야 IB에 맡기면 되니 반드시 숱한 대면 회의를 거칠 필요가 없다. 산업은행은 국가 신용등급 후광을 업고 있어 본점이 서울에 있든 제2 도시에 있든 채권 발행에 미칠 영향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혁신금융이나 기업금융 업무도 마찬가지다. 수도권 소재 기관 및 기업들과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 면도 있지만, 이 역시 서울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2년간의 팬데믹을 거치면서 비대면 협의, 화상 회의 활용도는 높아졌다. 혁신금융에선 산업은행이 간접투자자로 한발 물러서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일부 대규모 외화가 필요한 해외 거래의 경우 산업은행을 빼고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

    수출입은행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수출입은행은 부산에 해양금융단을 두고 조선·해양 기업 관련 업무를 수행해왔는데 큰 업무 차질은 없었다는 평가다. 거래 기업 대부분이 서울에 소재하지만 대부분 비대면으로 업무를 처리했고, 급한 기업의 경우 직접 부산을 찾기도 하니 수출입은행이 크게 불편할 것은 없었다.

    산업은행이 다른 금융사와 가장 차별화된 점은 구조조정과 시장 안전판 역할인데 후한 평가를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금호타이어, 두산중공업 등 성과도 있었지만 KDB인베스트먼트 설립과 대우건설 매각 등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특히 3년여를 끌다가 무산된 대우조선해양 M&A가 뼈아프다. 처음부터 너무 낙관적으로 접근했다는 평가가 있었던 만큼 실패의 책임도 클 수밖에 없다. 이동걸 회장이 정치권에 ‘반드시 서울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성과나, 내놓을 카드가 많지 않은 셈이다.

    산업은행을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시각도 있다. 국민연금이 전주로 이전해 축사 악취에 시달리고 위상이 약화한 사례가 있으니 산업은행도 옮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전주 이전은 당시나 지금이나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그런데 성과가 썩 나쁘지는 않다. 한 외신에선 국민연금의 운용수익률이 2017년 7.3%에서 2018년 -0.9%로 감소했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이후 2019년 11.3%, 2020년 9.7%, 2021년 10.8%로 안정적이다. 이를 지방 이전의 성과로 보긴 어렵지만, 지방으로 이전해 어려워졌다는 근거로 삼기에도 부족하다.

    한 금융투자사 관계자는 “산업은행 입장에선 국민연금이 전주로 이전한 후 수익률이 나빠야 서울 잔류 주장을 강하게 펼 수 있을텐데 국민연금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며 “국민연금을 서울 잔류 논리에 끌어들기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이 우수 인력을 충원하기에 유리하겠지만 국책은행에 어느 수준의 인력이 필요하느냐에 대한 평가는 나뉜다. 민간 수준의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한 영역이 있지만, 대부분은 국가 정책을 수행하는 데 부족하지 않은 제너럴리스트가 더 중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산업은행은 내부 인사 관리에서도 불협화음이 있었다. 외부에서 영입한 부행장을 통해 인사를 단행하며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막아줄 우군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국책은행 노조들이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했다지만, 민주당의 당론이 국책은행 서울 잔류인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20년 총선거를 앞두고 공공기관을 추가로 옮기겠다는 뜻을 드러냈었고, 작년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선 여당 후보가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부산 이전 공약을 냈었다. 산업은행법에서 ‘본점은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곧 지방선거를 앞둔 국회가 법 개정을 기를 쓰고 막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수출입은행과 IBK기업은행 등 국책은행, SH수협은행, 예금보험공사 등이 산업은행과 함께 부산으로 이전될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이들도 산업은행과 반드시 입장이 같은 것은 아니다. 모두 부산 이전행이 공식 확정된다면 총력 반대에 나서겠지만 그 전까진 산업은행과 함께 묶여 언급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윤석열 당선자가 산업은행을 찍었지만 산업은행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겠느냐”며 “직원들은 산업은행이 다른 국책은행과 공기업까지 확전시켜 부산행을 무산시키려는 전략을 펴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