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기 '고유가'로 수렴하는 원유시장…정유업계, 본업 부활 기대
입력 22.03.29 07:00
지난달 '슈퍼 백워데이션' 후 3월 재차 폭등 중
러시아 원유 공백 대체 불가할 거란 전망 우세
항공유 수요 복귀 전망에 소비 감소도 '제한적'
정제마진도 급등…정유사 주가에 기대감 몰리는 중
  • 국제유가가 널뛰기 하는 가운데 올해 석유 수요 및 유가 전망 시각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일단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평화 협상 기대감이나 미국 정부의 유가 안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고유가가 지속될 거란 시각에 힘이 실린다. 수년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트렌드와 팬데믹으로 인해 관심 밖으로 밀려난 정유 산업에 기대감이 몰리고 있다. 

    23일(현지시각)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5월물 브렌트유는 전일보다 6.12달러(5.3%) 오른 121.60달러에 마감했다. 지난 8일 브렌트유가 장중 139달러를 기록한지 보름 만에 다시 120달러를 돌파한 것이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역시 전날보다 배럴당 5.66달러(5.2%) 오른 114.9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3월 유가 폭등 사태는 지난달 선물 시장에서부터 조짐을 보였다. 

    2월 말 브렌트유 선물 시장 베이시스(현물과 선물 가격 차이)는 '슈퍼 백워데이션'을 기록했다. 백워데이션(back-wardation)은 만기가 남아 있는 원유 선물이 현재 원유 가격보다 낮게 거래되고 있는 상황을 가리킨다. 원유 선물 가격에는 이자와 보관 비용이 반영되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선물이 현물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콘탱고(Contango)'를 정상 시장으로 본다. 

  • 코로나 팬데믹 직후와 정반대 상황이다.  2020년 4월 원유 선물 베이시스가 기록적 '콘탱고'를 보였을 땐 원유 선물 가격이 최초로 마이너스를 기록했었다. 반면 베이시스가 백워데이션을 나타낼 땐 유가는 보통 올라가는 모습을 보이는데, 유가 폭등을 앞두고 극단적인 백워데이션이 관측된 것이다. 

    한 차례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떨어지는 등 안정세를 보이자 시장의 시각도 갈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국제유가는 보름 만에 다시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결국 시장이 러시아산 원유 공백을 어떤 방법으로도 채우기 힘들 것이라 내다보는 상황으로 풀이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러시아 제재로 오는 4월부터 하루 300만배럴 공급 감소를 전망하고 있다. 러시아 제재로 인한 공백을 해소할 경우 유가는 안정세로 돌아설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전략비축유를 방출하고 핵 협상을 통해 이란 등 기존 제재국 공급을 정상화하더라도 그 절반 밖에 채우지 못할 거란 목소리가 높다. IEA에 따르면 여유 생산 능력을 갖춘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도 증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선물 시장이 극단적 백워데이션을 보인 것도 공급 부족 우려로 당장 원유를 확보해야 하는 수요가 몰린 탓이란 분석이다. 외신에 따르면 원유 투자 업계 거물인 피에르 앙듀랑은 "강제로 석유제품 소비를 규제하지 않을 경우 배럴당 200달러까지 갈 수 있다"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 및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기 침체로 석유 수요가 동시 하락할 것이란 우려도 있지만, 연간 석유 수요 전년보다 올라갈 것이란 시각에 힘이 실리고 있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차트를 기준으로 보면 고유가로 인해 소비가 위축될 거라 전망할 수도 있지만, 전반적인 임금 인상 등 변수를 반영하면 배럴당 100달러 이상 고유가에 적응하게 될 것"이라며 "각국 상업용 석유재고도 최근 5년 평균치보다 낮고, 항공업 정상화로 인한 항공유 수요 복귀로 석유 수요 하락 가능성은 제한적이라 본다"라고 설명했다. 

    국내 정유사의 주가에도 이 같은 기대감이 서서히 반영되고 있다. 

    이달 들어 국제유가에 맞춰 정제마진도 기형적으로 치솟았다. 정제마진은 석유 제품 가격에서 운영비용과 원료인 원유 가격을 뺀 수치로, 정유사 실적에 직결되는 지표다. 국내 기업이 기준으로 삼는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도 급등 후 정상화하는가 했지만, 다시 치솟고 있다. 시장에선 연말까지 정제마진이 5년 평균선 위에서 유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당장 1분기에는 국내 정유 4사 모두 수천억원 규모의 재고평가이익을 남길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의 종합 마진도 최근 배럴당 10달러 안팎을 오가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맥쿼리에선 SK이노베이션의 1분기 영업이익이 증권가 전망치의 90%를 웃돌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증권사 정유산업 담당 한 연구원은 "최근 정유사들이 수요 위축 우려로 가동률을 선제적으로 낮출 거란 보도가 나오기도 했는데, 올해 구조적으로는 공급이 제한되고 수요가 회복되는 모습이 유지될 것"이라며 "수익성 회복과 함께 정유 사업의 가치도 재평가를 맞이할 거란 기대감이 높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