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14조원 벌어도 신저가…끝없는 메모리 '눈치게임'
입력 22.04.29 07:00
1분기 DS 이익만 8조인데…시장 "투자 못하겠다"
'공급과잉 우려' 질문에 삼성전자 "가능성 낮다"
'눈치게임' 해 넘겨 지속되며 삼성전자 '또' 신저가
당분간 줄다리기 지속 전망…회복 시점도 불투명
  • 삼성전자가 1분기 시장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14조원대 영업이익을 벌어들였지만 주가는 다시 연중 신저가를 기록했다. 삼성전자가 좋은 실적을 낼 걸 알면서도 시장은 지금 당장 투자할 의지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일각에선 지속될 불확실성 탓에 지금 반도체는 투자 불가능한 산업이라는 평까지 나온다. 1분기 실적 발표회(IR)에서도 업황을 둔 '눈치게임' 장기화 가능성이 감지됐다. 

  • 28일 삼성전자는 1분기 매출액이 77조7815억원, 영업이익이 14조1214억원으로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3분기 연속으로 최대 매출액을 경신했고, 영업이익은 시장 전망치보다 1조1000억원가량 높게 나왔다. 그러나 주가는 장중 한때 6만4500원까지 하락하며 1년 중 최저치를 기록했고, 전일보다 0.31% 하락한 6만4800원에 마감했다.

    이날 삼성전자 IR에 참석한 한 기관투자가는 "서버 시장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높게 유지되는데 고객사 재고도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 공급과잉 가능성은 없을까?"라고 물었다.

    현재 서버 시장의 특수를 보며 지난 2018년을 떠올리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질문이다.

    2017년부터 시작된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 당시 메모리 반도체는 D램과 낸드를 가리지 않고 막대한 프리미엄을 누리며 팔려나갔다. 이후 2018년 들어 수요는 하반기로 갈수록 고꾸라졌고, 시장은 갑작스레 공급과잉 국면으로 바뀌었다. 메모리 가격은 폭락하고 자연스레 삼성전자의 영업익도 반 토막이 났다. 회복에는 수년이 걸렸다.

    단순하게 얘기하면 1분기 메모리 특수가 실은 고객사 사재기 영향이라면 하반기엔 죽을 쑤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삼성전자는 1분기에만 반도체(DS) 부문에서 8조원대 이익을 남겼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기조와 공급망 불안 등 하반기까지 수요에 영향을 줄 불안 요인도 산적해 있다. 그러니 투자자들은 지금 당장 삼성전자가 돈을 잘 버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삼성전자의 답답함도 전해진다. 메모리 업황을 둘러싼 시장 우려와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해를 넘겨 계속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측은 위 질문에 "결론적으로 공급과잉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데, 이유를 말씀드려보겠다"라며 "서버 업체에서 사용하는 CPU마다 채용하는 메모리가 다르고, 제품 믹스를 효율적으로 전환할 때 효율을 고려하면 공급 측면에서는 제약이 발생한다. 고객사 및 시장 수요에 최대한 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테지만 공급 제약 요소가 분명 존재한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도 삼성전자는 투자가들이 메모리 업황에 따라 기계적으로 매수·매도에 나설 때 "메모리 반도체 업황 주기가 변화하고 있고, 수익성 중심 대처가 가능하다"라는 입장을 알려왔다. 이 과정에서 매출액과 영업이익도 개선세를 보여왔지만 주가는 꾸준히 반대 흐름을 보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가 메모리 수익성을 일정 수준으로 지켜낸다는 점이 어느 정도 증명됐지만, 시장이 계속해서 다음 질문을 꺼내드는 형국이다. 

    전일 SK하이닉스 IR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당시 한 애널리스트로부터 "시장에서는 수요와 공급 모두 불안하게 보는데, 수요 불확실성이 더 크다는 인상을 받는다"라며 "이런 와중에 공급사 장비 수급마저 어려워지니 연초 목표 달성이 어려워질 것 같다"라는 질문을 던졌다. 

    SK하이닉스 측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투자 부담이 굉장히 큰데 회수 시점이 불특정한 산업이라 소수 공급자가 공급사슬 전반에 강한 장악력이 있어 수요 불확실성이 더 큰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단기적으로 수요 불확실성이 있더라도 수요가 달아나는 것은 아니다. 구조적으로 수요가 증가한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했다. 

    결이 다른 듯해도 삼성전자의 시각도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삼성전자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로 인한 중국 일부 지역 봉쇄 등 공급망 불안 및 금리 인상으로 세트 업체 수요가 불확실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현재 서버 시장 수요는 가격이 오르기 전 재고를 축적하기 위한 사재기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어 글로벌 기업의 신사업 목적 IT 인프라 투자는 확대하고 있고, 중앙처리장치(CPU) 신제품 출시에 따른 메모리 탑재량 증가 등 근본적인 수요 성장을 재차 전망했다. 

    그러나 시장에선 메모리 시장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낙관적 수요 전망을 포기하기 전까지 투자 시점을 늦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수년 동안 삼성전자를 비롯한 업계 전반의 설비투자(CAPEX) 지출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든 공급과잉 국면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시각엔 변함이 없다는 얘기다. 

    이 역시 작년부터 수차례 해명된 바 있다. 반도체 공정 난이도가 올라가는 데다 급작스럽게 공급을 늘리기 어려운 산업 특성에 따라 인위적으로 투자를 줄이는 식으로 공급과잉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는 것이 불가하다는 얘기다. 현재 반도체 공정 장비 리드타임은 약 1년 수준으로 불어났다. 설비투자·생산비용도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니 IR 때마다 투자비 증가를 수요 예측 실패로 인한 과잉투자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그럼에도 시장에선 계속해서 반대 논리를 마련하고 있다. 2분기 이후에도 메모리 업황을 둘러싼 시장과의 줄다리기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 주가 회복 시점을 점치기 어렵다는 평이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공정 난이도가 올라가고 수요 불확실성이 올라가고 있다 보니 공급 계획을 적시 조정하기가 어려울 거라는 우려로 맞불을 놓고 있다"라며 "메모리 업황을 둔 눈치게임이 쳇바퀴 돌듯 계속되는데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 재개 시점을 점치기가 어렵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