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TSMC...내부에서 새어나온 ‘진짜’ 위기
입력 22.05.03 07:00
취재노트
  • 철저한 성과주의, 제품의 혁신을 통한 ‘일류’라는 자부심은 삼성전자 임직원들에겐 더 이상 유효한 원동력이 아니다. 혁신’보단 ‘안전’이란 단어가 더욱 어울리게 된 삼성전자에 이젠 저연차 직원들마저 ‘진짜 위기’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최근 삼성전자의 5년 차 한 임직원이 이재용 부회장이 보낸 메일이 화제가 됐다. 과도한 납기 설정, 직원들의 낮은 업무 성취, 내부 경쟁에서의 열패감(劣敗感) 등의 내용이 담겼는데 각 게시판에 공감하는 글이 인용되며 삼성전자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냉정한 시각이 내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했다.

    사실 이재용 부회장의 공백이 ‘삼성전자의 위기’로 치환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이 발생한지 6년, 삼성이 강조하던 시스템으로 대응이 충분히 가능했던 그 기간 동안 삼성전자의 동력은 힘을 잃어갔다. 대규모 M&A는 자취를 감췄고, 업황에 기댄 호황 외엔 재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GOS(Game Optimizing Service, 게임 최적화 서비스), 통화불량 사태 등 최근의 사업적 위기 상황에서 책임질 인사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오히려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민낯이 드러났다. 국내 대기업들이 앞다퉈 글로벌 인재들을 영입하는 동안 진작에 물러날 것으로 평가 받던 최고 경영진 인사는 ‘안정’을 꾀한다는 명목 아래 유임하며 투자자들의 의구심을 샀다. 

    배당까지 늘리고 최고 실적을 달성했음에도 삼성전자의 주식이 외국인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연일 신저가를 경신하고 있는 상황도 넓게 보면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최고경영자들은 해마다 ‘위기’를 언급했지만 정작 그 ‘위기’를 직접 타개해 나가야 할 임직원들의 ‘호응’은 얻지 못했다. 내부 조직 간의 경쟁, 글로벌 기업들과의 속도 경쟁으로 인한 직원들의 ‘피로감’은 삼성전자 임직원 대부분이 느끼는 공통적인 감정이다. 삼성전자와 가장 밀접한 계열사에선 적층된 인사들로 무거워진 조직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한다.

    철저한 성과주의에 입각해 ‘막대한 연봉’으로 직원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면 그 나름의 의미가 있겠으나 이젠 ‘삼성=최고 연봉’의 공식도 통하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현재 2022년 임금인상률을 약 9% 수준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직원들의 요구 수준에는 물론, 판교의 IT기업들의 두 자릿수 임금 인상률에 미치지 못하자 내부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은 ‘재계’의 가장 큰 화두이다. 한 번 오른 연봉, 즉 비대해진 비용 구조가 추후 부담이 돼 돌아올 것이란 지적도 타당하다. 다만 재계 1위 삼성전자가 인재의 유출을 막고 또는 최고 수준의 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지, 더 나아가 내부적으로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조직 문화를 갖출 수 있느냐의 문제를 삼성전자가 ‘비용’의 관점으로만 접근해선 안된다.

    삼성전자와 파운드리 시장에서 경쟁하는 TSMC에서도 최근 불만들이 나오고 있다. ‘과도한 업무 강도로 인해 임직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란 내용이 일부 포털사이트에 게시되고 있다. 어찌보면 속도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과정의 한 단면이기도 한데 이 또한 경영진 입장에선 장기적 발전을 위해 반드시 재고해야할 문제일 것이다.

    다만 삼성전자와 TSMC, 최고를 지향하는 두 기업 직원들의 고민에선 다소 질적인 차이가 느껴진다. 내부 직원들의 불만이 하나 둘 새어나오는 시점은 비슷하지만 ‘조직 문화’, ‘비전’과 ‘전략’에 대한 ‘충심’에 가까운 고민은 ‘워라밸’의 불만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삼성전자를 지탱해 온 원동력은 세계 제1의 전자회사,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독보적인 기술력, 세계 최고의 인재들과 함께 한다는 임직원들의 ‘자부심’이었다. ‘품질 경영’에 작은 흠집이라도 발견되면 경영진과 임직원들은 기민하게 대응했고 그 파고를 넘으며 한 계단씩 성장했다. 지금의 삼성전자는 과거와 다르다. ‘안전제일주의’에 입각한 경영진과 ‘파란피’의 자긍심이 사라진 직원들이 세계 일류의 타이틀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현재의 삼성전자를 몸소 체감하고 있는 직원들이 언급한 ‘위기’가 고(故) 이건희 회장이 언급한 ‘위기’보다 더 무게감있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