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지는 JY 사면…차기 정부로 연장되는 삼성전자 '총수 부재' 불안감
입력 22.05.06 07:00
취재노트
文, 막판까지 이재용 부회장 특별사면 여부 고심中
'사법 리스크' 5년…2번 구속에 관련 재판만 수백회
'정치적 셈법' 못넘을 경우 차기 정부 몫으로 연장
지난 5년 답답한 '총수 부재' 국면도 연장될 가능성
  • 문재인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임기 마지막 특별사면을 고심하고 있다. 당초 전 대통령을 포함해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인사가 줄줄이 후보군에 올라 '경제인' 이 부회장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단 전망이 나왔지만, 불발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면 정국'에 이 부회장을 슬쩍 끼워넣은 구도였다 보니 덩달아 정치적 부담에 휘둘리게 됐단 평이다.

    떠나는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이 부회장 거취를 국정 카드로 만지작거리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입맛만 다시게 된 상황이다. 이리저리 끌려다닌 지난 5년을 마무리할 거란 기대감도 잠시, 총수 부재 불안감은 차기 정부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2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사면권을 행사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사면법상 사면을 위해선 법무부 장관이 사면심사위원회에서 대상을 심의 의결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후 장관이 대통령에 결과를 보고하고 국무회의 심의를 걸쳐 사면 여부가 공포된다. 차일 문 대통령이 주재하는 마지막 국무회의가 예정돼 있지만 하루 전인 이날 위원회에 어떤 지침도 전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여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의결을 위해 청와대에 국무회의 일정 연기를 요청한 만큼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늦추거나 오는 6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특별사면을 강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사면권 행사를 두고 여론을 의식해온 만큼 현재로선 가능성이 낮다는 목소리가 높다. 

    삼성전자로선 아쉬움이 크게 남을 상황이다. 특별사면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한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보군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배우자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도 포함돼 있다. 경제인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한 우호적 여론이 사면 대상 전반의 정치적 부담에 묻히게 됐다. 

    지난 5년 동안 이 부회장 거취 문제는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좌우돼 왔다. 

    이 부회장은 문 대통령 임기 중 두 번 감옥에 다녀왔다. 첫 번째 수감은 정부 출범 직전인 2017년 2월부터 2년 차인 2018년 2월까지의 354일이다. 뇌물 공여 등 혐의로 법정 구속돼 1심에서 징역 5년 실형,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2021년 1월 파기환송심에서 같은 내용으로 다시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돼 8월, 207일 만에 가석방됐다. 

    두 번 모두 이른바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한 재판 결과로 이 부회장은 거의 2년 가까운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공교롭게도 각각 수감과 출감을 전후해 지방 선거, 재보궐 선거, 대통령 선거가 껴 있었다. 재판이 4년 이상 길어진 탓도 있겠지만, 선거철 이벤트로 활용됐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이번 특별사면을 두고도 오는 6월 지방 선거에 대한 유불리 문제가 주요 변수로 거론됐다. 

    이 부회장 사면 여부가 임기 말까지 대통령의 정치적 셈법을 넘어서지 못할 경우 삼성전자의 '총수 부재' 불안감은 자연스레 차기 정부 몫이 된다.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삼성전자 주가가 재차 신저가를 기록하는 등 운때가 맞아들어가는 듯했다. 삼성전자 협력업체 모임인 협성회를 비롯해 경제 5단체에서도 열심히 군불을 때웠다. 임기 말 특별사면 검토 배경이야 어쨌건 문 대통령이 매듭을 지어주길 바란 셈이다.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높은 삼성전자로서도 국면 전환의 확실한 계기가 필요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부회장 없는 삼성전자에 대한 시장의 답답증이 장기화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수합병(M&A) 성과 부진이다. 지난 3년 동안 반도체 시장에선 수평적·수직적 통합이 수차례 이뤄지며 경쟁 구도가 급격하게 변화했다. 공정 난이도가 극한으로 치달으며 기존 반도체 산업이 시장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올 들어선 고객사가 칩 설계에서 경쟁우위를 갖추게 됐다는 평까지 나온다. 

    해마다 위기감은 커져가는데 '하만이 마지막 M&A'였다는 대목에 들어서면 여지없이 '이 부회장이 없어서 그렇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지난 2020년 김현석 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도 "전문경영인이 서로 돕는 체계로는 큰 변화를 만들 수 없고 빅 트렌드를 볼 수 없다"라며 "이재용 부회장은 큰 숲을 보고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 역할"이라고 말한 바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런 시각을 긍정하기도 부정하기도 힘들다. 이 부회장이 지난 5년 동안 백 차례 넘는 공판에 끌려다니는 상황에서 지금까진 대체로 동의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부실한 진단이다. 삼성전자와 어깨를 견주는 글로벌 기업 대부분은 전문경영인 체제 아래 수십조원 규모 M&A를 성사시켰다. 멀리 갈 것 없이 국내에서도 조 단위 M&A에 나서는 총수 아닌 기업인들이 늘고 있다. 

    사실은 삼성전자에 전문경영인 체제가 확고하게 자리 잡지 않았다거나, 그런 경영인을 키워내지 못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M&A 성과 부재에 대한 원인을 묻는데, 그때마다 '오너가 전문경영인보다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라는 일반론으로 퉁쳐온 셈이다. 아무리 삼성전자라도 이 부회장(총수) 없이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은근한 '가스라이팅'으로 볼 여지도 있다.

    지난 5년 동안 특정 사업에서 경쟁사보다 준비가 미흡하거나 성과가 부진할 때마다 이 부회장 부재가 삼성전자 경영진 책임의 '보험'으로 활용된 측면이 있다. 예컨대, 더 잘하려고 했지만 이 부회장이 없어 아쉽게 됐다는 식이다. 로봇·메타버스·인공지능(AI) 등 제시한 신사업부터 비메모리 반도체 1등 전략까지 구체적 성과를 내야 하는 과제가 여전히 산적해 있다. 하나같이 쉽지 않은 목표고, 기한도 촉박해지고 있다. 사면 여부가 불투명해진 만큼 삼성전자뿐 아니라 투자자 역시 답답한 5년이 반복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