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적립 300조' 운용사들, OCIO 펀드 출시...맞춤형 컨설팅은 '아직'
입력 22.05.06 07:00
적립금운용위 설치 의무화에 OCIO펀드 출시 이어져
‘임금인상률 못따라가는 수익률’에 DB형 기업 수요 늘어나
원금보장형에서 실적배당형으로 비중 늘리는 데 기여할까 기대
“연봉인상률·근속연수 다른데…OCIO 취지 어긋나” 지적
  • 최근 자산운용사들이 외부위탁운용관리(OCIO) 펀드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올해부터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 개정되고 근로자가 직접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퇴직연금(IRP)에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퇴직연금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기업마다 퇴직금 지급시기와 규모가 다른데, OCIO의 취지와 목적에 맞지 않는 펀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올 들어 운용사들의 OCIO 펀드 출시가 잇따르고 있다. NH아문디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은 OCIO펀드를 내놓았다. 키움투자자산운용도 OCIO 펀드 출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상반기 안에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신한자산운용, 유진자산운용, VI자산운용 등 운용사들이 OCIO펀드 상품 출시에 집중하고 있어 관련 펀드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미래에셋, KB, 한투신, 한화 등 4개 운용사가 OCIO 펀드를 출시한 바 있다. 

    OCIO 펀드는 연기금, 공제회 등 기관의 자금을 운용사가 굴려주는 OCIO 방식을 접목한 펀드다. 통상적으로 3~5%의 목표 수익률을 제시하고 있어 손실을 보는 요즘 같은 변동장에 매력도가 높다는 평이다. 퇴직연금 상품으로 OCIO 펀드를 이용하면 안정적으로 연금 수익률을 올릴 수 있어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OCIO 펀드 출시가 잇따르는 이유는 퇴직연금의 OCIO 서비스를 활용할 기업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다. 삼성증권이 지난해 연말 924개 법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67.2%가 2년 내 OCIO 서비스를 활용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현대백화점과 대우건설 등 일부 기업들이 운용사와 OCIO 계약을 맺고 퇴직연금 적립금 일부를 펀드 등 실적 배당형 금융상품에 투자하기로 했다. 지난해 현대백화점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1.87%로, 미래 임금 상승률 3%에 못 미친다. 수익률이 임금상승률 조차 따라잡지 못해 매년 추가 적립금을 부담하는 일이 반복되자,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우건설도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 두 곳을 적립금 위탁일임 운용사로 선정해 2~300억원의 적립금을 위탁했다. 

    4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적립금운용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 시행되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퇴직금 담당 임원과 외부전문가, 근로자 대표 등이 참여한 적립금운용위원회를 설치하고 적립금 운용 목적이나 방법, 목표 수익률과 운용 성과 평가 등이 포함된 운용계획서(IPS)를 매년 1회 이상 작성해야 한다. 

    그동안 퇴직연금 적립금 투자는 기업의 재무팀 담당자가 책임져야 했던 반면, 이제는 위원회 전체로 책임이 분산되면서 기업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의 OCIO 담당 임원은 “DB형 퇴직연금 적립금은 부채로 인식되기 때문에 대부분 사업장들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으로 운용됐고 수익률이 다소 낮더라도 아직까지 기업들이 돈을 잘 버니까 추가 적립금을 부담해왔다”며 “최근 적립금 수익률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는데, 큰 돈을 한 번에 운용사에 위탁운용을 맡기기엔 부담스러워 어렵고 OCIO펀드에 가입하는 식으로 기업 연금시장에 접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OCIO 펀드가 퇴직연금 적립금의 운용 폭을 넓히는 목적으로 출시됐지만, OCIO의 본래 취지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근속연수나 연령대, 임금인상률 등 기업마다 다른 부채구조에 맞게 맞춤형 전략을 세우고 자금을 운용하는 것이 정통 OCIO인데, OCIO펀드는 기업마다의 다른 부채구조에 맞게 컨설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해 기아와 현대차의 평균 근속연수는 각각 22.4년, 18.9년인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3.4년, 네이버 5.7년, 카카오 4.9년으로, 근속연수가 기업마다 제각각인 상황이다. 최근 인력난에 따른 임금 인상 바람에 삼성전자는 9%, 카카오가 15%로 임금상승률도 높아졌는데, 이 역시 기업마다 편차가 크다. 임금상승률이 높을수록 그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여야 하고, 직원들의 퇴사가 잦다면 비용이 늘어나고 적립금 수익은 적기 때문에 추가 운용수익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자산운용사의 퇴직연금 담당 임원은 “OCIO 펀드의 목적은 좋지만 본래 취지에 맞게 기업에게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기 어렵다”며 “OCIO 펀드는 마치 각자 택시를 타고 다른 길로 가는 목적지에 다함께 버스를 타고 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변동장에 OCIO 펀드도 저조한 성적표를 받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재 출시된 모든 OCIO펀드들은 연초 이후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상태다. 

    퇴직연금 담당의 이 임원은 “OCIO 펀드 출시는 곧 수익률 경쟁으로 이어질 텐데, 고수익으로 가게 되면 불필요한 리스크를 안고 가 목적에 맞는 수익률을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기업의 부채구조마다 목표 수익률도 상이한데, 잘못된 분위기로 시장이 흘러갈 수 있어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