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실적에도 답보상태 빠진 현대차·기아 주가…정의선 회장 금고는 ‘역주행’
입력 22.05.12 07:00
현대차·기아, 역대급 실적에도 주가는 박스권
전망은 ‘맑음’, 주식 시장 수급은 ‘불안’
정 회장의 금고 ‘글로비스’·’오토에버’는 펄펄
물류 대란에 수혜본 글로비스
자율주행 시대 기대감 한몸에 받는 오토에버
모비스 바닥 vs 글로비스 신고가, 지배구조개편 ‘최적기’
  • 반도체 수급난에도 불구하고 현대차와 기아의 실적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판매량은 줄었지만 수익성은 오히려 좋아졌는데, 주가는 팬데믹 상황보다 오히려 큰 폭으로 하락하며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다. 코스피가 전반적으로 답보상태에선 대외 변수에 상대적으로 민감한 현대차·기아의 급격한 주가 반등을 기대하긴 쉽지 않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위치한 현대모비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차와 기아의 주가 그래프와 반대의 모습을 띄는 곳은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오토에버이다. 신사업에 대한 기대감, 전동화차량·자율주행 사업의 확대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받으며 역대 신고가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정의선 회장이 대주주로 등재돼 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주가가 눌려있으면서, 정 회장의 금고가 투자자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상황은 추후 진행될 승계 작업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올해 1분기 전년 대비 약 16.4%늘어난 약 1조93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기아는 이보다 영업이익 증가폭(49.2%)이 컸는데 1분기 약 1조6100억원의 영업이익을 발표했다. 양사 모두 지난 2010년 새로운 회계기준(IFRS)이 도입된 이후 분기 최고 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차와 기아의 주가는 실적과 연동하지 못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24만원까지 치솟았던 현대차 주가는 올해 초 16만원까지 하락하며 신저가를 기록했다. 최근 반등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18만원 박스권에 갖혀있다. 기아 또한 전년 최고 수준을 회복하기까진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의 러시아 제재에 대한 여파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현대모비스는 신저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30만원을 넘나들던 주가는 20만원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다.

  • 사실 현대차와 기아, 모비스의 실적 전망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여전히 차량 대기 수요가 넘치는 상황에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공급망이 정상화 될 것이란 기대감, 여기에 환율 효과까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다만 올해 실적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낙관하기만은 어렵다.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경기 둔화 우려로 인해 수요가 예년보다 꺾일 가능성, 원자재 가격 인상이 장기화 할 것이란 전망은 수익성에 부담 요인이다. 여기에 주가 지수의 반전 상황을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형주로 분류되는 현대차와 기아, 모비스가 현재의 실적과 기대감만으로 주가 상승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글로벌 대외 변수는 현대차그룹 계열사 모두에 공통된 문제이지만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기아와 사뭇 다른 모습을 띄고 있다. 올 1분기 매출액은 6조29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3%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약 4300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100% 이상 증가했다. 코로나 상황에 기반한 해운 운임의 상승했고, 신규 고객사의 자동차운반선 매출의 증가, 계열사 외 화물 선적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 현대차그룹의 인증중고차 사업은 1년 후로 미뤄졌으나 현대글로비스가 추후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것이란 기대감은 여전하다. 여기에 스마트물류 솔루션 사업을 새롭게 추진하면서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현대차그룹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유예된 것과는 별개로 최근의 영업환경이 상당히 우호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점, 추후 플랫폼에 기반한 현대차그룹의 신사업이 글로비스에 집중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차, 기아, 모비스, 글로비스 등 현대차그룹주를 대표하는 기업들 외에 최근엔 소프트웨어(SW) 개발사업을 영위하는 현대오토에버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현대오토에버는 지난해 4월 현대엠엔소프트(네비게이션), 현대오트론(소프트웨어 플랫폼)이 합병해 출범한 회사다. 1분기 연결매출은 약 5600억원, 영업이익은 224억원으로 시장 추정치(매출 약 5100억원, 영업이익 약 210억원)를 크게 웃돌았다. 주가는 가파른 상승세를 그리며 신고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여기엔 거스를 수 없는 전동화시대의 도래 그리고 자율주행차량의 보급이 가속화하면서 현대차의 자체 소프트웨어 개발이 가속화할 것이란 투자자들의 판단이 깔려있다.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오토에버는 정의선 회장의 금고로서 부각받는 측면도 강하다. 정 회장은 현대글로비스의 지분 20%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다. 올해 초 오너일가는 지분 일부를 글로벌 사모펀드(PEF) 칼라일에 매각하며 공정거래법상 행위제한 요건을 충족했고, 이후 오버행 이슈에서 벗어나며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이 사라졌다. 현대오토에버 또한 정의선 회장이 지분 7.3%를 보유한 대주주로서 지분가치는 약 2700억원에 달한다.

    현대글로비스는 과거에도 현대차그룹 지배구조개편 시도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만큼 언제든 정 회장의 실탄 마련 창구로 활용될 여지가 있다. 현대오토에버 또한 현대차, 기아, 모비스의 지분율이 공고하기 때문에 정 회장의 지분 매각이 이뤄지더라도 지배구조상 변동은 크지 않다.

    당장 정 회장이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오토에버의 지분을 활용할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현대차와 기아, 모비스보다 정 회장의 지분율이 높은 기업들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는 상황이 지속한다는 점은 지배구조개편에 상당히 긍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