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그룹의 '백기'와 김남정 부회장 손익계산서
입력 22.05.23 07:00
취재노트
  • 동원그룹이 소액주주들의 반발에 결국 동원엔터프라이즈와 동원산업의 합병비율을 변경한다. 만년 저평가란 꼬리표가 붙은 동원산업의 가치는 시가로 평가한 반면 김남정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동원엔터프라이즈의 가치는 부풀려지며 사실상 오너일가에만 유리한 방안이란 지적을 받아왔다.

    주주총회는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동원산업 주주들의 반대가 지속할 경우 합병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동원산업의 소액주주 비중은 총 20.6%인데 이 가운데 절반가량만 반대해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았다. 여기에 국내 자산운용사로 구성한 단체에서 공동행동과 법적 대응을 시사하면서 위기감이 고조한 점이 이번 변경안이 제시된 배경이다.

    회사는 결국 최초 합병 계획을 발표한 지 한달 반만에 이사회를 다시 열어 동원산업의 기존 합병가액을 24만8961원에서 38만2140원으로, 합병비율은 1대 3.838에서 1대 2.7023으로 변경했다. 동원엔터(소멸회사) 액면가 5000원짜리 보통주 1주에 액면가 1000원짜리 동원산업(존속회사) 주식 3.838주를 배정하기로 했으나 이번 안을 통해 동원엔터 1주에는 동원산업 주식 2.7023주가 배정된다.

    합병후 약 48%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던 김남정 부회장의 지분율은 43%로 줄어들게 됐다. 김 부회장은 5%포인트가량 지분율이 줄어들며 추후 있을 배당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했지만 회사의 지배력은 공고히 유지할 수 있다.

    이번 합병 추진에서 주주들의 반발이 극심했던 것은 기술적인 측면 외에도 합병에 대한 정당성과 명분이 미흡했던 탓이기도 했다.

    동원산업은 합병과 관련해 ‘시너지 효과 극대화를 통환 경쟁력 강화’, ‘경영 효율성 제고’ 등을 목적으로 설명했지만 지배구조 개편 이후 향후의 사업 방향과 지향점, 자금의 사용방법 및 주주환원책 등에 대해선 제시하지 않았다. 어찌보면 ‘김남정 부회장→동원엔터→동원산업’의 연결고리에서 각각의 지분율이 70%에 육박하기 때문에 소액주주들의 권익까진 신경 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오너는 그룹 알짜 상장회사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는데 소액주주는 지분 희석과 불리한 합병 비율까지 감수해야했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반발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새로운 지배구조가 확립되면 김 부회장의 '대관식' 준비는 얼추 마무리된다. 시기를 예단하긴 어렵지만 회장 승진의 가능성이 열려있고 김재철 명예회장의 지분 승계도 점쳐볼 수 있다. 그룹의 외연을 M&A를 통해 확장해 온 김 부회장의 이력을 비쳐볼 때 새로운 지주회사 체제 내에선 다양한 투자 활동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동원산업의 현금창출력과 자회사들의 배당을 통해 투자 재원을 마련한다면 지금보단 수월한 환경이 조성된다.

    재계에서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았던 동원그룹은 이번 홍역을 치르면서 투자자들에게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고 주주들의 요구사항을 수용할 수 있는 기업임을 입증하는 효과를 봤다. 한편으론 ‘결단’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으나 해당 안이 소액주주들의 또다른 반발에 부딪히지 않으리란 보장은 할 수 없다. 새로운 합병가액 역시 동원산업의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수준으로 동원엔터의 지분가치에 포함한 동원시스템즈 PBR(2.5배)에 미치지 못한고 매수청구권 행사 금액 또한 원안과 동일한 수준(23만8000원)이기 때문에 앞으로 주주들의 움직임은 좀 더 지켜봐야한다.

    동원산업은 소액주주와 기관투자가들의 반대에 부딪혔던만큼 추후에도 감시와 견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최초 제시한 합병 방안이 오너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전략이었다는 점은 경영진과 사외이사진들이 주주권익보호의 중요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잘 나타낸다. 새로운 지배구조 내에서 오너의 투자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선 투자자들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회사는 이제라도 주주들의 중요성을 깨닫고 합병 그 이후 동원산업이 그리는 미래에 대해 보다 상세히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