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역대급 투자' 보따리…정권 교체때마다 봐야 하는 불편함
입력 22.05.26 07:00|수정 22.05.26 10:23
Invest Column
  • 정권이 교체할 때마다 나오는 게 대기업들의 투자 확대 발표 보도자료다. 이번에도 어김없었고 게다가 윤석열 정부가 친(親)기업 정부를 표방한 만큼 또다시 재계는 '역대급' 투자 보따리들을 꺼내 들었다. 25일 조간신문 지면은 모두 이 내용들로 가득 찼다.

    삼성이 450조원으로 역시나 가장 많았고, 현대자동차 63조원, 롯데 37조원, 한화 37.6조원이다. 한 날에 발표된 4개 그룹의 투자 규모만 600조원에 육박한다. (26일엔 SK와 LG가 화답했다. 5년간 SK는 247조원 중 국내 179조원, LG는 국내에만 106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들 그룹이 이번에 강조한 것은 '국내 투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오자 미국 투자 선물을 전하더니 바이든이 떠나자마자 '국내'를 강조하고 있다. 상당히 정치적인 행보다.

    매번 갱신되는 재계의 역대급 투자 계획 발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것도 기업의 전략을 수립하는 연말연초도 아닌, 뜬금없는 초여름 초입에 말이다.

    삼성그룹을 예로 들면 5년간 450조원 투자, 그 중에 80%인 360조원이 국내 투자임을 강조했는데 단순 연간 투자금액은 72조원 정도다. 삼성그룹 계열사 수를 감안하면 그렇게 특별하게 늘어난 수치는 아니다. 기존 5년간 투자금액 대비 전체적으로는 30%, 국내는 40% 이상 늘었다고 하는데 그건 인플레이션에 따른 영업비용 증가, 전세계적인 고임금 기조 현상, 거기에 더해 신사업 투자 자체의 고비용이 불가피하다는 점들을 더하면 투자금액은 자연스러운 수준이다. 다른 그룹들도 마찬가지다.

    이러니 대기업들이 보도자료로 발표하는 투자 금액 전부를 온전히 '투자'라고 읽을 수 없다. 기업과 그 기업이 모인 그룹의 영속성을 높이기 위한 운영 비용 규모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게 더 현실적이다. 그룹의 크기가 클수록 이 비용은 늘어나게 된다.

    이 자료들이 분명 주주들이나 직원들을 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유는 결국 하나, '오너'를 돋보이기 위함이다. 오너 경영인의 리더십, 결단, 위기 극복 등 수많은 미사여구들을 양산한다.

    한국의 '특수성'을 잘 모르는 투자자들은 이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투자 계획이 이사회는 거치고 결정된 것인가"

    "왜 주주총회에서 CEO나 CFO가 발표하지 않나"

    "이렇게 즉흥적이고 정치적인 발표를 신뢰할 수 있나"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단순히 지정학적 리스크만은 아니다.

    기업들이 국내에 투자를 많이하고 고용도 늘리고 하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고, 기업 입장에선 홍보할 가치가 충분한 내용이다. 다만 몇십년간 달라진 게 없는, 오너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지금의 '콘셉트'는 수명이 다 된 듯 하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결합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모두가 확인했다. 이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조금의 세련됨이 더해져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