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가는 회사채 금리에 정부기관·은행 찾는 대기업들
입력 22.06.14 07:00
회사채 금리 상승에 은행 대출로 선회하기도
A급 대기업들, 산업은행·P-CBO 통해 금리 부담 덜어
AA급 이상 ‘큰 손’ 발행 재개…"우량채 중심 회복세"
  • 신용등급 A급의 대기업 계열사들이 신용보증기금과 산업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얼어붙은 공모 회사채 시장에 금리 부담에 회사채 대신 은행으로 발길을 돌리는 곳들도 많다.

    최근 회사채 시장의 위축이 이어지며 A급 대기업 계열사들이 연이어 P-CBO(프라이머리채권담보부증권)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지난달 말 SK머티리얼즈(A+/안정적), SK렌터카(A/긍정적) 등 SK그룹 계열사, 롯데글로벌로지스(A/안정적) 등이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을 받아 P-CBO를 발행했다. 

    P-CBO는 신용등급이 낮아 자체적으로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회사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로, 평판훼손을 우려로 통상 대기업 계열사들의 발행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A급 기업의 공모채 발행은 더욱 여의치않아 조금이라도 낮은 금리에 자금을 조달해 실리를 우선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A급 회사채 시장은 워낙 안 좋다보니 대기업 계열사들도 P-CBO 등 정부 기관에 손을 빌리고 있다”며 “P-CBO로 조달하면 AAA급 등급민평금리 기준으로 하고 일부 가산금리를 붙이기 때문에, 금리 측면에서 혜택이 좋은 편이라 많이들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마트의 부동산개발 자회사인 신세계프라퍼티(신용도 A+)는 사모채 1000억원 규모를 발행하는 데 산업은행의 지원을 받았다. 표면이율은 4.069%로, 동일등급 민평대비 40bp(1bp=0.01%포인트) 정도 높지만, A급 크레딧물에 대한 투심이 부진한 것을 감안하면 선방했다는 평가다. 

    금리 변동성에 회사채 발행 시장은 여전히 활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3년물 회사채(AA-)의 신용 스프레드는 3월 말 67bp 수준이었는데 6월 9일 77bp까지 벌어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수준을 이어가는 중이다. 

    한 증권사 크레딧 담당 연구원은 “사업보고서나 주주총회가 있는 3월에 잠시 주춤하다가 4~5월에는 다시 발행이 몰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지금은 금리 인상 여파로 조달금리가 작년보다 1%p 이상 오르면서 회사채 발행 부담이 매우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회사채 금리보다 은행권 대출금리가 더 저렴하기 때문에 일부 기업들은 회사채 시장에서 은행으로 발길을 돌리는 분위기다. 은행권의 대기업 대출금리는 지난 4월 기준 연 3.17%로 집계됐는데, 비슷한 시기 AA급 회사채 발행금리는 4%에 달한다. 

    실제 최근 기업 대출 규모가 크게 늘어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 기업대출 규모는 지난달보다 13조1000억원 늘어났는데, 이는 5월 기준 코로나 대응을 위해 일시적으로 대출 규모가 크게 증가한 2020년을 제외하고는 관련 통계 속보치가 작성된 2009년 6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이달 들어 AA급 이상의 우량 기업들이 대규모 발행 준비에 나서면서 발행시장이 점진적으로 온기를 찾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A급 이하 회사들이 발행을 꺼리면서 AA급 회사채 위주로 투자수요가 몰리자 발행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포스코(AA+)를 포함해 한화생명보험(AA) 등이 이번 달 공모채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포스코는 수요예측이 흥행하면 최대 8000억원 규모로 증액 발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중소형 증권사 채권 담당 관계자는 “4월 이후로 우량등급과 기업별로 차별화가 나타나며 수요예측 시장이 점차 회복되고 있다”며 “최근 수요예측에서는 우량등급을 중심으로 개별 민평보다 낮은 수준에서 발행금리가 결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당분간 AA급 우량채 선호 기조가 이어질 뿐, 단기간에 회사채 시장이 회복되긴 어렵다는 전망이다. 이달 KT(AAA)와 LG유플러스(AA) 등 우량 기업들이 이달 회사채 발행에 나설 계획이었으나, 금리 변동성에 적절한 발행시점을 잡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공포에 13일 오전 국고채 3년물 금리가 23bp나 치솟는 등 시장 변동성이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회사채 투심을 가늠하는 지표인 크레딧 스프레드(AA- 회사채 3년물 금리와 국고채 3년물 금리 차)도 유의미하게 줄지 않고 있는 데다, 이번에 발행하는 우량채들은 대규모 만기 물량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NH투자증권은 보고서에서 “국내외 금융 시장 변동성이 확대됨에 따라 투자자의 위험 자산 회피 심리가 높을 것”이라며 “크레딧 채권 중에서 AA등급 이상의 상위 등급에 대한 선호 기조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