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스마트시티에 계열사 집결…‘네옴시티’로 지향점 뚜렷해진 현대차그룹
입력 22.06.21 07:00
총 645조원 규모 스마트시티 조성 프로젝트
현대건설이 인프라(터널) 수주로 첫 발
모빌리티, 물류, UAM, 건설 등 계열사 총력전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 전환 방향성 명확해 질 듯
  • 현대자동차그룹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메가 시티 건설 프로젝트인 ‘네옴시티(NEOM City)’ 건설 사업에 그룹 차원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룹의 맏형 격인 현대차뿐 아니라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현대건설 등 각 분야의 계열사들이 총동원 될 전망인데 단순한 완성차 업체를 벗어나 종합 모빌리티그룹으로 지향점을 잡은 현대차그룹의 방향성이 보다 뚜렷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네옴시티 프로젝트는 총 투자비 약 5000억달러, 우리돈 약 645조원을 들여 서울의 약 43배(약 2만6500㎢)에 달하는 신도시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사우디 북서부 지역에 부지가 예정돼 있고 황무지와 다름없는 사막 위에 신재생 에너지만을 사용하는 도시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해당 사업은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Mohammed bin Salman) 왕세자 겸 제 1부총리가 추진중이다.

    네옴시티의 준공은 2038년경으로 예정돼 있다. 각 부문별로 사업 일정을 계획하고 발주와 입찰을 병행하고 있다. 무에서 유를 창출해 도시를 건설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건설사, 에너지 기업, 완성차 등 각 분야의 톱티어급 기업들이 수주를 위해 상당히 공을 들이는 중이다.

    글로벌 기업들 가운데 완성차와 건설, 물류, 로봇, 금융, 친환경 사업 등을 모두 영위하고 있는 곳은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서 수주전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란 평가도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전세계 완성차그룹 가운데 수소트램, 친환경, 건설, 통신, 캐피탈 금융 등의 사업을 모두 갖고 있는 곳은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며 “사우디의 초대형 스마트시티 건설 사업은 현대차그룹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미래지향점을 투자자들에게 정확하게 인식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네옴시티 사업의 첫 발은 현대건설이 내딛었다. 현대건설은 삼성물산과 컨소시엄을 맺고 네옴컴퍼니가 발주한 철도터널 공사를 수주했다고 14일 밝혔다. 해당사업은 신도시 지하에 약 28㎞의 터널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경영상의 비밀을 이유로 정확한 계약기간과 수주금액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매출액(약 18조1000억원)의 2.5% 이상의 수주인 점을 고려하면 현대건설 기준 최소 4500억원(전체 1조원) 이상의 계약이 성사된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는 수출입은행이 금융지원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네옴시티 사업 가운데 현대건설을 중심으로 한 인프라 사업을 비롯해 자율주행, 스마트물류,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에 주력하고 있다.

    자율주행 분야의 중심은 역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는 이르면 올해 내로 레벨3 기술을 적용한 양산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레벨3는 완전 자율주행(레벨4)의 직전단계로 운전자가 운전대에서 손을 떼도 차량이 스스로 앞차와의 거리와 차로를 유지하며 운행하는 기술을 일컫는다. 현대차가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에 테슬라·BYD·모빌아이(인텔) 등 글로벌 기업간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어떠한 전략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

    현대차그룹이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차세대 이동수단 사업이 추후 사우디에서 실현될 수 있을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현대차그룹이 신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UAM 사업은 저고도의 공중을 활용한 도시 내 항공 운송 시스템을 말한다. 현대차는 2019년 UAM 전담 조직을 신설했고, 정의선 회장의 지지를 받으며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선 현대건설과 KT, 대한항공, 인천국제공항공사와 업무협약을 맺고 UAM 실증 사업을 추진중이다. UAM 사업 외에도 현대차가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통한 로봇사업의 확장 가능성도 열려있다.

    신도시의 스마트 물류 시스템은 현대글로비스가 유력한 사업자로 꼽힌다. 현대글로비스는 단순한 육상, 해상 운송 수단을 제공하는 기업에서 벗어나 물류 전담 및 플랫폼 사업자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사실상 현대차그룹이 수주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인만큼 내부적으로도 구심점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옅보인다. 현대차그룹 내 핵심부서로 꼽히는 전략기술본부 출신의 지영조 사장(이노베이션 담당)은 이번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계약 기간을 연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략기술본부의 투자 성과와 회수 결실이 가시화하지 않은 탓에 지 사장의 연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많았는데 이번 프로젝트가 반전의 기회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네옴시티는 현대차그룹의 완성차와 건설 등 전통적인 사업과 자율주행과 UAM, 로봇 등 신사업이 함께 참여하는 프로젝트로 현대차의 미래 지향점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의선 회장이 밝힌 것과 같이 ‘종합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이보다 더 좋은 기회를 잡기는 어려울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2019년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을 계기로 정의선 회장, 이재용 부회장 등 국내 대기업 총수들은 사우디의 현 집권 인사와 비교적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상황에선 우호적인 관계가 각 기업의 수주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사우디의 정치적 환경 변화 리스크도 일정 부분 고려해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