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증시도 호재 없다…포트폴리오 주가 관리 골머리 앓는 사모펀드
입력 22.07.21 07:00
올해 급격한 증시 하락에 PEF 투자 상장사들 타격
경영권 인수는 물론 소수지분 투자자 부담도 커져
하반기도 악재 가득…장기 투자 기업 회수 안갯속
증시 침체 후 '진짜 기업가치' 갈릴 것이란 평가도
  • 올해 주식 시장이 급격히 침체하며 상장사에 투자했던 사모펀드(PEF)들이 난처한 처지가 됐다. 거래 후 주가가 급격히 빠지면 투자자를 볼 낯이 없고, 상장사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면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생할까 신경을 써야 한다. 내실이 탄탄한 포트폴리오 기업이라도 지금 같은 상황에선 주가 하락을 막을 방도가 마땅치 않다. 하반기 이후에도 증시 침체가 이어질 가능성이 커 PEF들의 고민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샘은 주가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한샘 측은 지난 몇 년간 ‘주당 25만원’을 고집해 M&A가 무산됐지만, IMM PE와는 주당 22만원 수준에 합의했다. 작년 M&A 소식이 알려질 때만 해도 한샘 주가는 10만원을 넘었지만 최근엔 6만원 선도 무너졌다.

    IMM PE는 한샘 지분 담보로 7700억원(한도대출 제외)을 빌렸는데, 이는 담보 지분의 시가보다 많은 금액이다. 주가가 과도하게 하락하면 대주단이 추가로 지분 투자금을 넣으라 요청하거나 치유할 기간을 부여하기도 한다. 당장 대주단에 주식을 내놓아야 할만큼 위급하진 않지만 IMM PE의 고심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한샘 대표는 주가가 10만5000원이 될 때까지 최저임금만 받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베어링PEA는 지난달 PI첨단소재 경영권 인수 계약(주당 8만300원)을 맺었다. 당시만 해도 회사 주가가 5만원 언저리였는데 직후 국내외 증시 악재가 이어지면서 3만원 초반대까지 빠졌다. 베어링PEA가 스웨덴 발렌베리가(家) 사모펀드(PEF) 운용사 EQT파트너스에 인수된 후 내놓은 첫 작품인데 한 달 새 주가가 급락하니 난처한 모양새가 됐다. 달러 강세에 거래 규모가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 밑으로 낮아진 점이 위안거리다.

    베인캐피탈은 올 1월 6700억원을 들여 의료기기 제조사 클래시스를 인수했다. 회사 주가는 경영권 변경을 전후해 2만원을 넘기도 했지만 최근엔 다시 1만5000원 수준을 오가고 있다. 주당 인수가격(1만7000원)을 감안하면 초반 주가 등락이 신경 쓰일 수준은 아니다. 의료·미용 관련 산업의 M&A 거래 배수가 낮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한 것이 어떤 회수 결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IMM PE가 2020년 초 하나투어 유상증자(주당 5만5500원)에 참여해 경영권을 확보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확산하며 실패 우려가 커졌지만 2년여 간 주가 방어를 잘했다. 회사는 지난달 추가 증자에 나섰는데 갑작스런 증시 한파에 발행가를 목표했던 6만4100원에서 4만9800원으로 낮춰야 했다.

  • 하반기 이후에도 당분간 증시 침체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달 들어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등 각종 악재에도 증시가 박스권을 지키는 모습을 보였지만 본질적 체력이 강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금리는 계속 인상될 것이고, 환율 추이에 따라 외국인까지 증시에서 발을 뺄 수 있다. 기업들의 실적 하향세는 이제부터 본격화할 것이란 우려가 많다.

    회수기가 가까워 오는 장기 투자 포트폴리오는 증시 부진이 더 부담이다. 경쟁을 잘 붙인다 해도 상장사 M&A의 핵심 기준을 결국 주가이기 때문이다.

    JKL파트너스는 2019년 7000억원 이상을 들여 롯데손해보험을 인수했다. 이후 회사는 항공기금융 부실을 떨어내는 등 체질 개선 성과를 냈지만 주가는 몇 년 째 게걸음이다. 올해 시장금리가 급등하며 롯데손해보험 등 보험주의 주가가 잠시 반등했으나 이내 제 자리로 돌아왔다. 최근 주가는 JKL파트너스의 평균 투자 단가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롯데그룹에선 롯데카드와 달리 롯데손해보험을 매각한 것을 크게 아쉬워하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의 락앤락 인수는 만 5년이 됐다. 인수 당시 6300억원가량(주당 1만8000원)을 투입했는데 최근 주가는 1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올해 초와 대비해서도 30% 이상 주가가 빠졌다. 사업다각화에 성공하지 못했고, 괄목할 실적 개선을 이룬 것도 아니다. 회사는 올해 들어 국내 부동산과 해외 법인 등 자산을 매각하고 있는데, 어피너티 회수를 위한 사전 작업이 아니냐는 평가가 있다.

    소수지분 투자자도 증시 부진이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주가는 출렁이게 마련이라지만 관계자에 투자 경과를 알릴 때는 무색할 수밖에 없다. 국내 PEF 운용사(GP)는 때마다 출자자(LP)와 인수금융 대주단 눈치를 봐야 한다. 월마다 포트폴리오 관리 내역을 보고해야 하는 일부 글로벌 PEF는 상장사 투자를 극히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IMM인베스트먼트가 간접적으로 투자금을 댄 휴젤 주가는 최근 12만원 대를 왔다갔다 했다. 휴젤 M&A 주당 단가(28만원)나 3년 내 최고점 대비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앵커에쿼티파트너스 등이 투자한 카카오뱅크 주가는 상장 후 한 때 10만원을 넘봤지만 지금은 3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티웨이항공 주가도 올해 들어선 JKL파트너스의 투자 단가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의 증시 부진이 PEF 상장사 포트폴리오의 진짜 기업가치를 가릴 계기가 될 것이란 평가도 있다. 일부 기업의 주가가 과다하게 떨어지기도 했지만 전세계적인 매크로 악재에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었다는 것이다. 한샘, PI첨단소재만 해도 1위 사업자고 장기적으로 국내외 확장 가능성이 크다. 최근엔 기업의 내재가치만 훼손되지 않았다면 PEF 만기를 늘려 기다리면 된다는 분위기도 확산하고 있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주가보다는 회사가 얼마나 돈을 잘 벌고 실질 가치가 좋으냐가 중요할 것”이라며 “당장 팔 것이 아니라면 2~3년 뒤에 2배로 만들면 되기 때문에 당장의 주가 하락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