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잃은 현대오일뱅크, 철회 배경은 또 기업가치...'반토막 우려'
입력 22.07.22 07:00
동종업계 주가 하락에 기업가치 축소 압박 불가피
구주매출 물량 결정도 부담…아예 없애는 사례 다수
세 번째 철회 소식에 주주들도 한숨…평판 훼손 가능성
  • 불투명한 정유업황에 현대오일뱅크가 결국 세번째 상장 시도마저 중단하게 됐다. 작년 한 때 15조원까지도 거론되던 기업가치가 침체된 공모주 시장 분위기 속 설득력을 잃어가자 결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는 기업들이 대부분 구주매출을 없애는 분위기인 점도 상장 강행에 부담이 됐다는 시각도 나온다. 

    앞서 두 번이나 상장 결정을 번복한 점을 감안하면 자본시장에서 현대오일뱅크의 신뢰성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일부 개인주주들은 물론, 주관사 및 기관투자자들 사이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기업’이라는 오명을 안게 된 셈이다. 

    21일 현대오일뱅크는 보도자료를 통해 그간 준비해오던 상장준비를 철회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일 내부 이사회를 거쳐 상장을 중단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이에 작년부터 상장 준비작업을 도왔던 NH투자증권, KB증권 등 주관사들 역시 이 같은 소식을 접하고 실무를 중단하게 됐다는 전언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2012년과 2018년 두 차례 상장을 철회한 바 있는 만큼 금번 결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결국 상장을 중단한 것은 급격히 바뀐 시장 상황에 원하던 기업가치를 인정받기가 어려워진 데 따른 결정으로 풀이된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현대오일뱅크는 한 때 최대 15조원 가까이 되는 몸값이 거론되기도 했다. 한창 국제유가가 상승 곡선을 그릴 무렵이었던 데다 ‘친환경’ 테마가 부각된 데 따른 영향이었다. 실제로 주관사 선정 프레젠테이션(PT)에서 제안된 기업가치 는 15조~20조원 수준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최근 들어 증권업계에선 현대오일뱅크의 추정 기업가치를 두고 ‘10조원은 어렵다’라는 의견이 만연한 상태다. 일각에선 최근 공모주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6조~7조원 정도가 적절하다는 시각도 나오는 상황이다. 가장 큰 원인은 최근 롯데케미칼, 에쓰오일 등 동종업계 회사의 주가가 곤두박질 치고 있는 탓이다. 롯데케미칼 주가는 올해 7월 들어 약 10만원 중반대로 떨어졌다. 지난 6월 고점인 21만원에서 크게 낮아졌다. 에쓰오일 주가 역시 9만원대로 전달 고점인 12만3000원에서 30% 이상 감소했다. 

    하반기부터 정유업황 자체가 급격히 꺾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해당 업종 회사들의 주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며 고공 행진을 보이던 국제유가는 7월 들어 배럴당 90달러대에 진입하며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경기침체 시그널과 함께 각종 석유제품 수요 위축 가능성이 불거진 데 따른 영향으로 해석된다. 

    한 IB(투자은행)업계 관계자는 “이미 올해 3월부터 상장 작업이 중단됐다는 이야기가 돌아 자본시장 일각에선 (현대오일뱅크의 상장 성공을) 크게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라며 “기업가치(Valuation)을 놓고 회사의 현실 인식이 떨어진 점도 상장 철회의 배경일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들어 한국거래소로부터 승인이 미뤄진 점은 현대오일뱅크로서는 아쉬운 요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국제유가가 배럴당 140달러에 이르는 등 정유업황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오일뱅크는 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 아람코의 주주권한이 지나치게 많다는 거래소의 지적에 따라 이를 해결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하반기 들어 공모기업들이 구주매출을 없애는 추세가 이어진 점도 현대오일뱅크로서는 부담이었을 수 있다. 곧 상장을 준비하는 쏘카나 최근 IPO를 마무리 한 범한퓨얼셀 등은 모두 신주 100%로 상장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당초 현대오일뱅크는 모회사인 HD현대의 구주매출이 일부 예정되어 있었던 만큼 내부적으로 이를 축소하거나 없애는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다. 

    현대오일뱅크의 이번 결정으로 당분간 개인 주주들을 비롯, 전반적인 자본시장에서 평판이 훼손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향후 재무적투자자(FI)를 통한 추가 자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만약 FI를 들인다면 결국에는 IPO를 통한 투자금 회수(엑시트)에 나서야 하지만, 이미 세 번이나 상장을 철회한 바 있는 만큼 시장 신뢰를 얻기에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다. 

    또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이 자금 유치 과정에서 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배당성향 등 주주환원정책에 대한 계획을 발표해도 ‘전력이 있어 믿기 어렵다’라는 반응이 나올 때가 있다”라며 “언젠가는 IPO를 통해 투자자들의 자금을 돌려줘야 하는데 시장과의 약속을 거듭 깨트린다면 신뢰성이 떨어져 피해를 보는 것은 해당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