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각기' 회사채 시장, 이젠 대기업 보증도 안 통한다
입력 22.08.03 07:00
SK·GS·한화·HDC 등 대기업, 자회사 지급보증 나서도 부진한 성적
미매각 기업, 화력발전 등 反ESG 기업…지급보증 받아도‘A급’
한전채·AA급 등 우량채 물량 많아…안전한 채권으로 몰리는 매수세
  • 크레딧물 수요가 좀처럼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대기업 모회사의 지급보증으로 신용을 보강해도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이 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지급보증을 받은 신용등급보다 우량한 회사채가 더 많기 때문에 금리 인상기에 굳이 지급보증을 받아야만 발행할 수 있는 회사채를 살 수요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크레딧 투자 수요 회복 시점도 3분기에서 4분기 초로 점점 늦춰질 것으로 보고 있다. 

    HDC와 한화에너지의 지급보증을 받은 통영에코파워는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이 대거 발생했다. 통영에코파워는 28일 1·2회차 공모채를 발행해 1980억원을 조달에 나섰다. 1회차(모집금액 1200억원)는 HDC(모집금액 780억)가 지급보증에 나서 A급으로 부여받았고 2회차는 한화에너지가 지급보증하면서 A+급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수요예측 결과, 한화에너지 지급보증 사채에서만 10억원의 주문이 들어오는 데 그쳤다.

    특히, 통영에코파워는 공모희망 금리밴드를 BBB+ 3년물 등급 민평금리 수준인 5.7~6.1%로 설정했으나 싸늘한 투심을 잡긴 역부족이었다. 대기업이라도 최근 시장리스크가 높은 기업의 보증이라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HDC는 한국신용평가로부터 ‘A/부정적’을, 나이스신용평가로부터 ‘A+’등급을 받았지만 하향 검토 대상에 포함됐다. AA등급 회사채의 수익률도 좋아 굳이 A등급 회사채까지 찾을 필요가 없는 시장분위기도 한몫했다. 

    GS글로벌의 지급보증으로 신용등급 ‘A’를 부여받은 GS엔텍도 상황은 비슷했다. 2년물과 3년물 수요예측을 진행했는데 800억원 모집금액에 200억원의 투자수요를 확보했다. 심지어 3년물은 2년물보다 희망금리 밴드상단을 20bp 더 높게 제시했음에도 모집금액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만 몰렸다. 

    모기업 지급보증으로 모집액을 가까스로 채우더라도 금리 메리트를 크게 누리지 못했다. SK디스커버리(신용등급 A+, 안정적)가 지급보증에 나선 SK플라즈마는 수요예측에서 모집금액을 상회하는 투자수요를 확보했으나, 발행금리가 희망금리 밴드상단(+60bp)에 투자수요가 몰리며 투심이 악화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장기물보다 단기물을 선호하는 탓에 단기물 금리가 더 높게 발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울산GPS는 SK가스의 지급보장을 받아 ‘AA-(안정적)’라는 신용등급으로 3년물(모집금액 1200억원)과 5년물(모집금액 300억원) 수요예측에 나섰다. 수요예측 결과, 모집액을 가까스로 채웠지만 3년물 발행금리는 4.712%로 결정돼 5년물(4.586%)보다 높았다. 

  • 최근 보증채는 한전채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는 분석이다. 통영에코파워, GS엔텍, 울산GPS 등최근 보증채는 대다수 에너지 기업이다. 한전채나 한전 자회사 등 AAA급의 특수채도 4%대의 금리로 발행하고 있는데, 굳이 손실 부담을 감수하고 A등급의 에너지기업의 회사채를 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엄격해진 기관투자자들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성향도 화력발전 등 에너지 기업 회사채의 선별적인 투자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제는 대기업 지급보증이 신용도를 높여주기보다는 지급보증 없이는 발행 여력이 없는 회사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한 증권사 크레딧 연구원은 “자회사 지급보증에 나선 모회사가 대기업이긴 하지만, 그룹 내 핵심 계열사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심지어 지급보증을 달고 나올 정도면 반대로 회사 여건이 안 좋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 지급보증 효과가 적은 듯 하다”고 말했다.

    보증채권의 특성도 영향을 미친다. 보증채권은 모회사 보증으로 높은 신용등급을 받고 발행하지만, 발행사 채권으로 분류된다. 때문에 같은 급의 크레딧물 보다 거래할 때 여러 제약이 드러날 수 있다. 일반 크레딧물보다 보증채의 수익률 산식이 더 복잡한데다, 셀다운도 잘 안 돼 유동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보증채는 금리가 조금 높게 결정되는 경향이 있는데, 금리상승기에 굳이 보증채를 매수할 필요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회사채 투자수요에 대한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수요회복 예상시점도 늦춰지는 분위기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시장관계자들은 3분기 들어서는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보는 기대가 일반적이었는데, 이제는 4분기 초까지 미뤄졌다. 7월 금통위 이후 국채금리는 3년물 기준 3.1%~3.3% 박스권 내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채권 수요 회복으로 보긴 이르다는 분석이다. 최소 국채금리의 안정적 움직임이 두어달은 이어져야 순차적으로 크레딧 투자심리가 회복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