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회사’와 ‘국민기업’ 사이에서 헤매는 포스코홀딩스
입력 22.08.05 07:00
취재노트
포스코, 지주사 전환하며 '국민기업 프레임' 논란 불지펴
현상은 '민간기업'이지만 실질은 '정치 외풍' 막기 어려워
이사진 바람막이로 장기 집권도 가능…금융지주사와 유사
정치권 줄대기 행보는 여전…최 회장 임기 완주할까 관심
  •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지난달로 취임 만 4년을 맞았다. 그 사이 포스코는 ESG 경영에 힘을 실었고, 비철강 부문 강화에도 박차를 가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도 사상 최대 실적을 내 ‘국가 대표기업’으로서 자존심을 세웠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올해 진행된 지주사 체제 전환이다. 민영화 이후 가장 큰 변화라는 평가가 따랐는데 이를 둘러싼 논란은 작지 않았다. 포스코의 새로운 시도들이 무엇을 위한 것이냐는 의문이 이어졌다.

    지주사 전환 후, 새정부 출범 전이던 4월 포스코홀딩스가 내부에 돌린 이메일이 정체성 논란을 불러왔다. 이메일에는 ‘포스코그룹이 국민기업이라는 주장은 현실과 맞지 않으며, 미래발전을 위해서도 극복돼야 할 프레임’이라는 주장이 담겼다. 이에 대해 포스코 창립 원로들은 ‘국민기업이란 수식어는 포스코가 민영화됐다고 없어지지 않는다며’ 경영진에 자성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냈다.

    현상만 보면 포스코홀딩스의 주장이 틀리지 않다. 포스코는 2000년에 산업은행이 마지막 보유지분을 팔면서 완전 민영화됐다. 국민연금(8.72%)이 최대주주지만 외국인 주주비율이 50%를 넘는다. 회사는 기회가 날 때마다 주주와 주주가 선임한 경영진에 의해 굴러간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최정우 회장 대에 들어 더 적극적으로 주장을 펴고 있다.

    실제 포스코그룹의 지난 몇 년간 행보도 ‘자사의 이익’을 최우선시 하는 민간기업에 부합했다. 그룹 내 물류 효율화를 명분으로 시장 반발을 무릅쓰고 해운업 진출을 시도했다. 최근 원자재 값 하락세에도 자동차 강판 인상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후판 가격 상승에 허덕이던 조선업계에선 포스코의 상생 의지가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일 때 열린 한 회의에선 포스코가 ‘나쁜 기업’으로 언급됐다. 달리는 시장에선 여전히 포스코를 국민기업으로 보고, 그에 걸맞는 역할을 기대한다고 볼 수 있다.

    포스코홀딩스의 ‘국민기업 프레임 청산’의 목적이 무엇인지 의문이다. 국민기업은 곧 주인없는 회사이고 외풍에 흔들리기 쉽다는 우려를 덜기 위함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포스코그룹의 행보는 그보다는 ‘내부 공고화’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포스코홀딩스는 철강 중심에서 ‘진환경 소재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사업 확장의 과실은 지주사만 얻게 되고, 그에 따른 공도 지주사 경영진이 상당 부분 차지할 수밖에 없다. 지주사의 치적을 위해 자금을 올려보내야 하는 포스코와 계열사들의 불만이 나올 수 있다. 지주사 설립으로 ‘새로운 자리’가 생겨났고, 앞으로도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지주사와 경영진의 지배력이 강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대 호황을 구가하는 중 나온 ‘비상경영’ 선언은 내부결속 수단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포스코가 굳이 지주회사 체제를 했어야 하느냐는 지적이다. 정부 주도로 시작한 기업이 지주사로 전환한 사례가 드물다. 지금 포스코 지주사는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지만 주인이 없고, 사외이사와의 연대만 공고히 하면 ‘무한 연임’이 가능한 민간 금융지주사와도 닮아 있다. 현재 회사의 사외이사는 최정우 회장과 비슷하게 임기를 지내고 있거나, 최 회장 임기 중에 선임된 인사들이 대부분이다. 이러니 최 회장의 시선이 벌써 3연임을 향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정우 회장은 그룹의 철저한 비호를 받는 것으로 외부엔 비쳐지고 있다. 밝은 부분을 강조하고 청사진을 제시할 때는 전면에 나서지만 그렇지 않을 땐 모습을 찾기 어렵다. 최 회장은 작년 초 국회 산업재해 청문회에 진단서까지 제출하면서 불참하려다 결국 자리에 나섰다. 연임을 앞둔 민감한 시기가 아니었다면 나서지 않았을 것이란 평이 많았다. 올해 불거진 포스코 성폭력 사건에서도 포스코 김학동 대표이사 부회장은 머리를 숙였지만 최정우 회장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하기 위해 지주사를 만든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최정우 회장이 임기를 끝까지 마칠 수 있느냐가 관심사다. 포스코는 민영화 후 내부 인사가 수장에 오르긴 했지만,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교체됐다. 정부에 실제로 남은 것은 국민연금을 통한 간접적인 영향력뿐이지만 정권 최고위층에서 나서면 포스코 경영진이 버티기 쉽지 않았다. 연임에 성공하고도 정권이 바뀌면 수장이 물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최정우 회장도 PK(부산·경남) 출신 배경을 등에 업고, 중도낙마한 권오준 전 회장의 뒤를 이었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현재 상태로는 국민기업이 아니라는 포스코홀딩스의 주장이 맞지만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최정우 회장 개인 회사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며 “포스코나 정부 OB(old boy) 사이에선 정권이 바뀌었으면 최 회장이 자리를 넘겨주고 후배들 길도 터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최정우 회장을 둘러싼 여론은 썩 우호적이지 않다. 최 회장 취임 후 매년 인사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작년 ESG위원회를 설립한 것이 무색하게 성폭행 사건, 계열사 갑질, 불법파견 등 문제가 이어졌다. ‘벚꽃 대선’으로 새정부 출범이 늦어지며 3월 주주총회가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지나간 것이 다행이었다.

    포스코홀딩스는 3월 주주총회에서 손성규 교수를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손 교수는 대통령의 고등학교 동문이다. 작년엔 이명박 정부 때 공직에 있던 인사들을 사외이사로 모셔왔다. 간섭 받지 않는 민간기업임을 강조하면서도 정치권에 기대지 않으면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기 어렵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셈이다. 포스코홀딩스의 정치권 줄대기가 성공하는 분위기인지, 아니면 아직 '용산'의 시선이 포스코에까지 미치지 않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다른 자본시장 관계자는 “포스코의 지주사 전환은 여러 사업 영역으로 넓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최 회장의 자기자리 만들기 성격도 있다고 본다”며 “일단 주주총회는 조용히 넘어갔고 임기도 남은 상황에서 최정우 회장을 흔들면 찍어내기란 인상만 줄 수 있어 정부에서 지금 교체 움직임을 보일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