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빚 탕감 정책 논란에...은행권 '진퇴양난'
입력 22.08.09 07:00
금융당국, 30조원 규모 새출발기금 통해 부채 탕감 발표
취약차주 대출액 추산 100조원…나머지 70조원은 은행 몫
“‘도덕적 해이’ 막기 위해 페널티 부과해야” 은행권 성토 이어져
“정권 지지율 회복 위한 정책”…은행권 여론 반영되긴 어려울 듯
  • '코인 손실' 투자자에 대한 금융지원 정책을 내놨다가 비판받았던 정부가 금융 취약차주의 '빚 탕감' 정책까지 내놓으면서 은행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가 30조원 규모로 기금을 조성해 지원하겠다고 나섰지만, 은행권이 부담하는 몫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은행권에서도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방안을 전달하고 있으나 정책에 반영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최근 떨어진 정권 지지율 회복을 위한 정책을 내놓으면서 책임은 은행에 지우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7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최근 은행권 여신 실무자들은 서울 은행회관에 모여 ‘새출발기금 관련 실무회의’를 진행하고 채무조정 대상과 운영방식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앞서 금융당국은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부실 또는 부실 우려 대출에 대한 채무 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새출발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3개월 이상 대출이 연체된 사람은 ‘부실차주’로 분류해 대출원금의 60~90%까지 감면해주고 연체가 우려되는 차주에 대해선 대출금리를 연 3~5%대로 낮추는 게 골자다. 

    기금 조성을 시작하기도 전에 ‘도덕적 해이’와 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당 지자체장이 있는 서울시에서도 "새출발기금 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고의적인 원금 미상환 등 도덕적 해이 우려 부분에 대한 정책설계를 철저하고 세심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전국시도지사협의회에 건의했다. 사실상 여당 내에서도 정책 방향 및 내용에서도 교통정리가 안 되면서 혼란을 가중되는 모습이다. 

    가장 문제 되는 지점은 낮은 ‘부실우려차주’의 기준이다. 부실우려차주 대상은 ▲6개월 이상 장기 휴·폐업자 ▲10일 이상 단기연체자(최근 6개월간 누적 연체 3회 이상) ▲연체일 30일 넘는 등에 따른 기한이익상실차주 등이다.

    현재 은행들은 연체 30일 미만의 대출은 ‘정상 여신’으로 분류하고 있다. 잠정안대로라면 10일만 대출금을 연체하더라도 연 15%대의 저축은행 신용대출을 연 3~5%대 금리로 낮출 수도 있다. 이에 은행권들도 부실우려차주 기준을 연체일 10일에서 30일로 높여달라고 건의한 상황이다. 

    정부가 새출발기금을 통해 부채 탕감을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은행이 부담할 규모가 더 크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정책을 발표하며 “취약층에 대한 정부의 금융지원 대책 중 빠진 부분에 대해선 금융사가 답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현재 100조원 규모의 부채가 취약(우려)차주의 몫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새출발기금 규모인 30조원을 제외하면 70조원은 은행의 몫이다. 사실상 은행권에 채무 탕감 부담을 떠넘긴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부실채권을 시장가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으로 넘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경쟁입찰을 통해 부실채권을 팔면 회계사 감정가에 프리미엄이 붙지만 새출발기금 운용기관인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에 매각하면 이 프리미엄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상공인 대출 보증기관인 서울시 신용보증재단은 채권매입가율 12% 가정 시 연 손실액이 4000억원에 이른다는 잠정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는 정부가 캠코에 출자하기로 한 금액 3조6000억원을 기금 규모(30조원)로 나눈 수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기관이라고 할 만큼 은행이 공공성을 지닌 것도 맞지만 엄연히 주식회사로써 은행도 이익을 내고 주주배당 등 주주환원도 해야 하는데, 충당금 적립 압박과 더불어 채무탕감까지 은행 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정책이 연이어 나와 난감한 상황”이라며 “부채탕감을 위해 충당금을 여신분류 기준인 요주의여신과 고정이하여신 중에서 어느 기준에 포함되어야 하는지도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급락한 지지율 회복을 위해 금융권을 동원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정권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각종 금융지원 정책을 통해서 반전을 꾀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본다”며 “급격한 금리 상승에 서민의 빚 부담이 높아진 건 사실이라 어느 정도의 지원 방안은 필요하겠지만, 금융 쪽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방향으로 가게 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