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前 분할회사도 상장 까다로워진다...기업 지배구조개편, 조달 전략 수정 불가피
입력 22.09.07 07:00
금융위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 마련
물적분할 시 공시의무 강화
소액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 부여
사실상 물적분할-재상장 금지령 평가
지난 5년간 물적분할 한 기업도 소급적용
SK, 카카오 등 사정권에 들 듯
  • 기업의 물적분할과 기업공개(IPO) 논란과 관련해 최근 금융당국이 밝힌 방안의 핵심은 ▲공시강화 ▲주식매수청구권의 도입 ▲상장심사 강화 등이다. 앞으로 물적분할을 추진하는 기업들은 주주권익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하고 과거 물적분할을 시행한 기업들도 추후 IPO를 추진하면 강화한 상장 심사 요건에 부합해야한다. 분할과 재상장을 통한 지배구조개편 및 자금 조달을 고려하는 기업들의 대대적인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금융위원회가 입법예고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물적분할을 추진하는 기업들은 구조조정·매각·상장 등 구체적인 분할의 목적과 기대효과, 주주보호방안을 이사회 의결 3일 이내에 공시해야한다. 자회사 상장이 계획돼 있으면 예상 일정을 명시하도록 했다.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주주는 기업에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받는다. 주주총회에서 반대 의견을 낸 주주들을 대상으로 기업과 주주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을 협의하고, 협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법원에 매수가격 결정 청구가 가능해진다.

    물적분할이 완료한 이후 5년 내로 신설 자회사를 상장한다면 강화한 상장 심사 요건을 적용 받게 된다. 거래소 상장 가이드북에 기업이 시행할 수 있는 주주호보방안과 미흡 사례 등을 제시함으로써 기업들의 주주보호 노력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의 이 같은 방침은 사실상 주주들의 동의 없이 기업이 물적분할을 추진하지 못하게 하겠단 의지로 풀이된다. 금융위는 "일부 기업들이 급격하게 성장한 사업부문을 물적분할 해 단기간 내 상장하면서 주가하락, 주주권 상실 등의 피해가 발생한 데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번 방안으로 인해 기업들의 사업부 분할을 통한 지배구조개편, 자금조달 창구 마련 등과 같은  전략적인 선택지는 줄어들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금융위의 방안은 지난 5년 내 물적분할한 기업들도 소급적용한다. 즉 분할회사의 상장을 추진할 경우 주주권보호와 관련한 방안을 마련하고 까다로워진 거래소의 심사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다.

  • SK그룹의 경우 지난해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물적분할한 SK온이 이번 방안을 적용받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은 SK온을 물적분할 한 이후 IPO를 전제로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하고 있는데 향후 IPO를 추진하기까지 더 많은 작업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2017년 이마트로부터 물적분할해 2018년 투자유치를 받은 SSG닷컴은 올해 상장 계획을 철회하고 내년으로 잠정 연기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됐다. 

    또 쪼개기 상장으로 재미를 봤던 카카오는 올해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의 상장 계획을 철회했다. 카카오 주주들의 반발이 잇따른데 따른 조치였는데 앞으론 주주권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자회사 상장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포스코그룹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한화그룹은 최근 지배구조개편을 통해 ㈜한화의 방산부문을 물적분할 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매각했는데 방산부문의 모회사가 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자회사 IPO를 통한 자금 조달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LG와 LS, 이랜드그룹도 이번 조치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주권익보호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됨에 따라 물적분할-재상장 이슈 기업들뿐 아니라 중복 상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에대한 주목도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주주간계약에 따라 추후 현대삼호중공업의 IPO를 추진해야하는데 이 경우 HD현대(현대중공업지주), 한국조선해양 등 모회사가 모두 상장사가 됨에 따라 일부 주주들의 반발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사실 지난해부터 분할-재상장에 대한 여론의 악화, 대통령 공약 등을 고려해 선제적인 대응에 나선 기업들도 있었다. KT는 미래 사업의 핵심으로 평가받는 클라우드 사업부를 물적분할 방식이 아닌 현물출자 방식으로 추진해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현대차그룹의 최상위 지배회사인 현대모비스는 최근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모듈 사업부를 분할하는 대신 자회사를 신설하는 방안으로 우회했다.

    사실 이번 조치 이전부터도 지난해 SK케미칼(SK바이오사이언스), SK이노베이션(SK아이이테크놀로지), LG화학(LG에너지솔루션) 등의 사례를 통해 주주권익 보호에 대한 목소리가 커진만큼 기업들이 물적분할-재상장의 카드를 꺼내기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물적분할-재상장의 가능성을 크게 낮춰놓은만큼 투자자들의 주목도가 낮은 중소·중소 상장기업들까지 부담이 커질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경우 이미 소액주주들의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떄문에 사실상 분할과 재상장의 전략을 쓰기는 쉽지 않다"면서 "일부 오너기업, 중소형 상장회사들의 경우 분할과 상장 등을 통해 구조개편 및 승계 등을 고민해 볼 수 있었지만 앞으론 새로운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