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WCP마저 IPO 부진...압박감 커지는 컬리ㆍ케이뱅크ㆍ골프존
입력 22.09.21 07:00
더블유씨피, 공모가 결국 20% 하향 조정
2차 전지 ‘불패’ 신화마저 깨졌다는 평가
플랫폼 등 IPO 남은 발행사들 불안감 고조
  • 하반기 기업공개(IPO) 시장의 반등 가능성으로 기대를 모았던 2차 전지 소재회사 더블유씨피(WCP)의 흥행 부진으로 남은 상장 예정기업들 덩달아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더블유씨피는 그간 성장성이 뚜렷한 2차 전지 회사로 침체된 IPO 시장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가늠자로 꼽혀 왔다. 

    이제 남은 차례는 새벽배송 회사 컬리, 인터넷금융 플랫폼 케이뱅크, 골프존 계열사 등이다. 각각 몸값이 조 단위에 이를 전망이라 지금과 같은 시장에서 물량을 소화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새다. 다만 외부 투자자 및 한국거래소 등과의 이해관계 탓에 상장을 미루기도 여의치 않아 압박감은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19일 더블유씨피는 최종 공모가를 6만원으로 확정했다고 공시했다. 당초 공모가 범위가 8만원~10만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최하단보다도 20%가량 낮춰 잡은 것이다. 이에 공모물량도 최소 7200억원에서 432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지난 15일부터 이틀 동안 모집된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 33.28대 1로 다소 저조한 경쟁률을 기록한 바 있다.

    업계에선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2차 전지 등 성장주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점을 흥행 부진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유동성이 풍부할 당시에는 금융 조달비용이 적어 미래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하는 성장주의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반면, 금리 상승기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앞서 상장한 SK그룹의 동종 계열사 SK IET의 주가 부진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상장 후 한 때 24만원대에 이르렀던 SK IET 주가는 현재 7만원대에 머물고 있다. 

    더블유씨피가 공모가를 낮춰 상장을 강행하고는 있지만 기대에 못 미친 수요예측 결과가 하반기 상장을 준비 중인 발행사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더블유씨피는 상장 전부터 2차 전지 소재 회사로 기대를 모았던 데다 올해 상반기 순이익 흑자를 달성하면서 일반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최근 상장 승인을 받은 컬리나 골프존카운티 및 골프존커머스, 승인이 임박한 케이뱅크는 더블유씨피의 결과를 두고 당혹스럽다는 의견이다. 이들 역시 최소 조 단위 이상의 기업가치(Valuation)가 예상되는 대어급 공모주인 만큼 순조로운 상장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주관사들도 더블유씨피의 흥행 여부에 상당히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예상보다 저조한 성과가 나오면서 ‘2차 전지, 콘텐츠 업종은 (상장 흥행이) 된다’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그마저 공모규모가 적은 기업들 위주였다. 대형 규모를 소화할 만한 시장의 준비는 아직이라고 판단된다”라고 말했다. 

    이에 발행사들 역시 이전처럼 상장 작업에 속도를 내는 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섣불리 상장에 나섰다가 자칫 공모가가 깎이거나 최악의 경우 상장 자체를 철회해야 할수도 있는 탓이다. 이 같은 상황 속 컬리는 다시금 상장 철회설에 휩싸이고 있고 케이뱅크 역시 급격한 장외가치 하락으로 고민이 커지고 있다. 동종 회사인 카카오뱅크 주가가 부진한 데다 전반적인 코인 하락세로 ‘업비트 효과’가 감소되고 있는 탓으로 분석된다. 

    골프존뉴딘그룹 계열사인 골프존카운티와 골프존커머스 역시 걱정거리가 없지 않다. 골프존커머스가 약 44.9%에 이르는 구주매출 물량을 배정했고 골프존카운티 역시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의 보유 물량을 시장에 내다 팔아야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IPO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기존 주주의 엑시트(회수)를 위한 구주물량은 상장 흥행에 부담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이러한 각종 위험요인에도 남은 발행사들이 상장 일정을 마냥 늦추거나 이제 와서 상장 결정을 번복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다. 하반기 실적을 신경써야 하는 한국거래소로서는 발행사들이 상장에 속도를 내기를 원하는 모양새다. 또한 컬리나 골프존 계열사 등은 외부 투자자들이 많아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어떤 발행사라도 지금과 같은 시장에서 상장을 강행하는 것은 어려운 판단일 것”이라며 “다만 거래소에서는 얼른 상장하기를 바라고 있어 발행사들이 거래소의 의중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은 딜레마”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