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상승에 뚝 떨어진 매력…출자자 외면 받는 크레딧 펀드
입력 22.09.22 07:00
W컨셉·한화솔루션 등 크레딧펀드 투자 지연 사례
시장금리 급등…크레딧펀드 차별성·매력도 사라져
어려움 이어질 듯 …"애초에 도입 목적 모호" 지적
  • 크레딧 펀드들이 자금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험성이 크지 않으면서 적당한 수익률을 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주목받았지만 최근 시장 금리가 오르면서 차별성과 매력도가 줄어 들었다. 금융시장 경색이 이어지고 있어 크레딧 펀드의 기근 현상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크레딧은 고수익은 아니지만 하방의 위험을 막아둔 안정적 투자 방식이다. 보통 에쿼티(Equity)성 투자는 15% 이상, 선순위 대출은 5% 안팎의 수익률을 기대하는데 크레딧 투자는 그 사이 구간을 목표로 한다. 담보 있는 선순위채권부터 중순위 메자닌, 우선주 등이 크레딧 투자 범주에 속한다.

    크레딧 펀드는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일찌감치 활용해왔지만 국내에선 최근에야 주목을 받았다. 작년 10월 자본시장법이 개정되며 PEF 운용사도 대출상품을 운용할 수 있게 됐다. MBK파트너스와 스틱인베스트먼트 등이 국내에서 스페셜시추에이션(SS) 투자 시장을 열었고, 이후 크레딧 전담 조직을 꾸리는 곳들이 생겨났다.

    2020년 9월 IMM PE가 IMM크레딧솔루션을 출범시켰고, 작년 5월과 9월엔 VIG파트너스와 글랜우드PE가 크레딧 시장에 진출했다. 이들이 투자한 자금만 각각 수천억원에 이른다. IMM크레딧앤솔루션은 SK루브리컨츠와 L&F, VIG얼터너티브크레딧은 이천 물류센터와 마이리얼트립, 글랜우드크레딧은 LG S&I건설과 SK에코플랜트 등에 투자했다. 올해 부서를 신설한 스틱인베스트먼트와 어펄마캐피탈도 전문가를 영입하고 있다.

  • 크레딧 펀드는 경직된 경영권 거래(Buy out)에서 벗어나 유연한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받았는데 최근 분위기는 다소 주춤하다.

    IMM크레딧앤솔루션은 올해 1월 1000억원 규모 W컨셉 소수지분 투자를 결정했는데 최종 집행이 늦어졌다. 출자 시장이 경색되며 자금 모집이 여의치 않자, 다른 블라인드펀드 운용사에 자금을 요청하기도 했다. 글랜우드크레딧 역시 최근 성사한 6000억원 규모의 한화솔루션 첨단소재 투자금 모집에 난항을 겪고 있다. 당초 8월 말 거래를 종결할 예정이었으나 미뤄지고 있다.

    이미 크레딧 펀드 투자 실적이 있는 곳들조차 자금 모집에 애를 먹는 상황이다. 금융시장 불확실성은 계속되고 있다. 투자 이력이 없거나 앞으로 나올 거래들은 돈을 모으기 더 어려워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크레딧 펀드가 고전하는 배경으론 금리 상승이 첫 손에 꼽힌다. 가파른 시장금리 상승 추세에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존 크레딧 펀드가 갖고 있던 투자 매력도가 급격히 떨어졌다는 평가다.

    대형 증권사 M&A 담당자는 "시장 금리가 급격히 오르면서 기관 입장에선 안전한 선순위 대출을 두고 금리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 크레딧 펀드 투자에 나설 이유가 없어졌다"며 "전략적투자자(SI)가 뒤를 받치거나 확실한 안정성이 보장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크레딧 펀드 자금 모집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출 금리와 크레딧 펀드의 금리 차이가 줄어든 만큼 '급전'이 필요한 부동산 시행사 들은 크레딧 펀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부동산 등 실물 담보가 있으면 크레딧 펀드가 투자하기 용이하다. 그러나 지분투자(Equity)에 가까운 전략을 펴는 크레딧 펀드는 목표 수익률도 크게 올라가기 때문에 더욱 투자처를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일찌감치 블라인드펀드를 결성해 둔 곳들은 사정이 낫다. 언제 열릴지 모르는 출자자(LP)들의 지갑을 보지 않고도 투자에 나설 수 있다.

    VIG얼터너티브크레딧은 작년 말 3600억원 규모로 블라인드펀드를 꾸려놨다. IMM크레딧솔루션은 앞서 5000억원 규모로 배터리 전문 블라인드펀드를 결성했지만 LG화학과의 코파펀드 성격이 강하다. 이 외에도 몇몇 운용사가 블라인드펀드 결성을 꾀하고 있지만 기관들의 호응이 썩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부터 국내에서 크레딧 전략 도입 목적이 모호했다는 지적도 있다. 새로운 투자기회 모색보다는 승계나 분사, 운용자산(AUM) 확장을 위한 시도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별도 법인 신설에 따른 수익 추가배분으로 파트너의 이탈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었다. LP 내에서도 '한국에 크레딧 시장이 어디 있느냐'는 반문이 이따금 제기되는 분위기다.

    한 국내 PEF 임원은 "크레딧 펀드가 우후죽순 생겨난 데엔 법 개정에 따라 길이 열린 점도 물론 있겠지만 상품에 대한 니즈가 아닌 운용사(GP)의 파트너 분배에 대한 고민이 더 컸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