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약세·국부펀드 장점 앞세워 韓 자산 쓸어담는 GIC
입력 22.09.30 07:00
벤처캐피탈성 투자 대신 부동산과 사모주식 투자 비중↑
서울사무소는 10여명 규모…최근 한국투자 힘 싣는 기조
원화약세 따른 환차익 기대·LP 부담 덜한 국부펀드 장점
  • 싱가포르투자청(GIC)이 최근 한국에서 광폭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원화 약세가 이어지고 있어 한국 자산을 담을 때 자금 부담이 줄어들었다. 국부펀드다 보니 투자 만기나 출자자(LP) 상환 부담이 없어 공격적인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으로 거론된다.

    최근 GIC의 한국 내 전략 변화 속도가 빠르다. 작년까지는 성장산업 투자에 공을 들였다. 주요 벤처캐피탈(VC)의 핵심 LP로 나서 스타트업에 투자해 쏠쏠한 성과를 냈다. VC 시장이 차게 식은 올해부터는 국내 부동산과 사모주식 투자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다.

    GIC 내부에서도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심화함에 따라 보유 외화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GIC는 리포트를 통해 "높은 인플레이션 환경에서 인프라 등 부동산 투자는 일반적으로 명목채권보다 효과가 높다. 주식 내에선 인플레이션 상승에 따른 수익률을 제공할 수 있는 사모주식 등 고성장 자산 비중을 늘렸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 두 유형의 자산에 대한 투자비중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늘었다.

  • GIC는 지금 같은 시기엔 오피스 빌딩이나 인프라 성격의 실물자산, 사모주식 투자를 하기 용이하다고 보고 있다. 이는 한국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미국과 갈등하는 중국, 보수적인 일본, 사회 시스템이 다소 부족한 동남아시아에 비해 안정적이고 우량한 투자처로 꼽힌다.

    GIC 서울 사무소에만 10명가량의 인력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당수 홍콩, 싱가포르 기반의 투자사나 운용사가 한국에 사무소를 두지 않거나 연락책 역할의 소수 인원만 두는 것과 대비된다. GIC 서울사무소 핵심 인력은 최인원 전무와 김소희 전무 '투톱'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름을 올린 투자 건들도 해당 자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올해 이지스자산운용의 여의도 신한금융투자 사옥 인수 펀드에 투자자로 참여했고, 최근 무산됐지만 미래에셋그룹이 조성한 4조1000억원 규모 여의도 IFC 인수 펀드에서 막판까지 유력한 앵커 출자자였다. 현재는 시티코어 컨소시엄의 서소문동 동화빌딩 출자에 나설 것으로 거론된다.

    숏리스트(적격인수후보) 선정을 앞둔 KT클라우드 소수지분 인수에도 한 국내 투자사와 손을 잡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데이터 센터의 실물자산 성에 주목하고 있는데, GIC는 국내 부동산 투자 이력이 많고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GIC는 국내 금융사들과 부동산 금융 공조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GIC가 한국 시장 투자 규모를 늘린 데엔 원화 약세 영향도 있었다. 27일 현재 원화 대비 싱가포르달러는 991원 수준으로, 작년 같은 시기 872.39달러보다 13.5% 상승했다. 원·달러 환율은 같은 기간 1181원에서 1423원까지 올랐다. 원화값이 떨어졌으니 이전보다 적은 자금을 들여 국내 자산을 담을 수 있다. 국내 운용사와 기관들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국부펀드 특성도 한 몫했다. GIC는 싱가포르 정부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데 의회에 별도의 운용성과 보고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펀드 출자자(LP)에 보고 및 수익률 보장 등의 부담이 있는 국내외 주요 기관보다는 투자에 더욱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특성이 있다.

    투자 만기도 여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자금을 뿌리고 거두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우량 기업에선 굳이 발을 뺄 이유가 없다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의 스타벅스커피코리아(SCK컴퍼니) 지분 인수 때 공동투자자로 참여한 것이 대표적이다. 기업이 도산할 위험이 없고, 배당도 안정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초장기 투자자로 남을 것이란 평가다.

    GIC 내부 사정에 밝은 한 투자사 관계자는 "GIC는 현재 '땅 사모으기'에 한창"이라면서 "다른 운용사(GP)들은 회수하고 LP들에 돈을 돌려줘야 하는 반면에 GIC는 기한없는 정부 자금이다 보니 투자 제약이 비교적 덜하다"고 말했다. 이어 "투자기간을 통상 20년까지도 내다봐 인플레이션 위험이 자연히 헷지되는 면이 있다보니 일단 투자해두면 언젠간 자산가격이 오를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