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허송세월이 결국 대우조선을 김동관 부회장에게 헌납했다?
입력 22.10.04 07:00
Invest Column
  • 처음 '한화, 대우조선해양 인수' 소식이 알려지자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이렇게 뚝딱?" , "이렇게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면 왜 예전에는?"

    이후 '헐값 매각' , '특혜" 의혹도 불거졌지만 좀 애매한 부분이 있다. 지금 대우조선은 시가총액 2조9000억원ㆍ주당 2만원도 안되는 회사가 돼버렸다. 제3자 배정 유증으로 주당 1만9150원, 2조원 투입은 말이 안되는 수준은 아니다. '특혜'라고 하기에는 "사겠다"라고 나서는 다른 기업이 마땅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혹시 인수 생각 있으면 "제안하라"고 매각 공고도 냈고, 실제로 스토킹 호스 방식도 도입했으니 다른 기업에게도 동일한 인수 기회가 있다. 명목상이라도.

    '대우조선에 투입된 7조1000억원의 공적자금 회수는 어쩔거냐'라는 비난도 조금 앞뒤가 안 맞다. 모두 산업은행 관리부실로 날린 돈이다. 한화가 대우조선을 망가뜨린 것도 아닌데 그 7조원을 다 책임질 이유가? 심지어 강석훈 산업은행장은 "법적인 의미의 공적자금은 아니다"라고 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 찜찜함이 남아있다. 이유는 이 거래가 한화그룹, 정확히는 승계를 앞둔 김동관 부회장에게 너무나 친절(?)하고, 또 제공하는 메리트가 적지 않은 거래여서다. 

    대우조선을 살리기 위해 긴급히 매각을 진행한다면서…증자 금액이 '2조원'에 맞춰져 있다. 적은 돈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우조선 매각가격으로 '충분'하다고 보기에도 애매하다. 현재 10조원대 부채에 2조원의 자본이 더해져도 부채비율은 여전히 300%대에 가깝다.

    왜 꼭 2조원에 머무르는지? 3조원이었다면? 하다못해 2조5000억원 이었다면? 

    이 와중에 주인 없는 상태에서 제공된 대우조선에 대한 대출ㆍRGㆍ크레딧라인 등 금융지원은 향후 5년간이나 유지된다. 수출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 영구채의 스텝업 조건 등은 완화된다. 이는 '대우조선 생명을 연장시켜야 한다'라는 명분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수자에 대한 자금 지원이기도 하다. 직접적인 자금 지원만 지원은 아니다. 

    한화로서는 이런 좋은 조건으로 대우조선을 인수하면서 누릴 시너지가 상당하다. 한화솔루션ㆍ한화임팩트 등의 LNG 생산 및 발전과 대우조선의 LNG선박 건조를 감안하면 자연스레 밸류체인이 마련된다. '방산'으로 구획을 정리한 그룹의 미래 비전에 '육·해·공 통합 방산시스템' 구축이 그려진다. 오죽하면 벌써 한화의 KAI 인수까지 거론될까.  

    아울러 대우조선을 인수할 회사들은 차기 회장이 될 김동관 부회장이 지분 50%를 지닌 한화에너지의 계열사 혹은 관계사다. 지금 대우조선에 쌓인 빚과 적자 구조는 문제지만 조선 업황 회복과 일감 수주 확대는 장기적으로 개선의 여지가 있다. 이로써 상승할 기업가치와 이익은 오너에게 그대로 귀속된다. 한화에 어찌 보면 거의 '맞춤형'으로 대우조선해양이 끼워 맞춰지게 됐다. 이런 메리트를 얻는데 있어 들이는 비용이 '2조원 증자'다. (물론 그룹에 빚덩어리 회사가 들어오는 리스크는 있다) 

    아무리 '기업 자체의 값어치(Stand Alone Value)'와 인수자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인수 시너지'가 별개 문제라 해도... "이 기업을 사면 당신네 그룹이 얻는 게 많잖아! 그러니 입찰 가격 올려! "라는 논리를 밀어붙이며 투자은행(IB)을 고용해 경쟁입찰을 유도하고, 때론 골드만옥션(Ascending Bid)까지 쓰는 게 M&A다. 그런데 이 과정이 뚝딱 생략됐다. '한화에 너무 우호적인 거래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다. 

    알려진대로 한화는 2008년 6조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하고 대우조선을 인수하겠다고 했다. 그것도 신주 증자가 아닌, 산업은행 구주 55%가격이 6조3000억원이었다. 한화는 당시 "지금 리먼 브러더스 금융위기 터졌어요. 대우조선 살 테니까 분할 납부하게 해주세요"라고 수차례 애원했지만, 산업은행은 이미 입찰에서 나가떨어진 포스코ㆍGS 혹은 장난스럽게(?) 가격을 써낸 현대중공업을 의식해서인지 "형평성에 어긋난다"라며 냉정히 내쳤다. 그리고 결국 대우조선 매각 자체를 무산 시켰고, 지금까지 방치했다. 

    그 14년의 간극만큼이나 '형평성'에 대한 산업은행의 태도 차이는 크다. "매각이 아니라, 투자받는 거니까 국가계약법 적용 아니에요"라던 이동걸 전임 산은 회장의 융통성이 2008년에 단 1/10만 발휘됐어도 7조1000억원의 자금을 날린 대우조선 사태는 없었다.

    따져보면 이렇게 냉정하던 산업은행이 지금 한화에 이리도 따뜻해져야 한 것은 산은 스스로 불러일으킨 재앙이기도 하다. 7조1000억원의 자금 상당수가 회수 의문 상태에 접어들고, 대우조선 연간 적자가 1조6000억원이 됐으니 '파는 가격'보다 '매각 성사' 자체가 더 중요해졌다. 

    "얼마에 팔겠다"를 따지기는커녕, "제발 사주기라도 하십시오"라는 입장인데 감히(?) 한화에 증자 가격을 더 높여 달라고 요구할 엄두가 났을까 싶다.

    출범 4개월차인 윤석열 정부의 '성과주의'도 한 몫 하지 않았나 의구심도 있다. 

    무리한 언행으로 '자본시장의 추미애'라는 비판까지 받았던 이동걸 회장의 산업은행은 대우조선부터 아시아나항공까지, 5년간 뭐하나 제대로 처리한 일이 없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다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단 4개월,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 취임 후 단 3개월 만에 대우조선 매각이라는 엄청난 치적이 나왔다. "21년간 해묵은 과제를 새 정부에서는 단 4개월만에 해결했다"라는 타이틀을 얻을 상황이다. 어찌보면 투입자금 회수가 문제가 아닐진데, 한화그룹은 이런 결과를 낳게 해준 소중한 장본인이 될 그룹이 될터다.

    이런 상황이니 "밀실매각이 아니다" , "다른 그룹에도 인수기회가 있다"라고 해본들…이미 정부가 한화와 매각 방식과 조건을 다 발표하고, 한화는 미래 시너지까지 그리는 판국인데 어느 기업이 선뜻 나설 수 있을까. 게다가 다른 때도 아니고 검찰 출신 대통령이 집권한 서슬 퍼런 정권 초기다. 

    매각에 최대 방해꾼(?)으로 취급 받아온 노조에 대한 시선도 달라졌다. 

    대우조선이 속한 금속노조의 '막무가내' 이미지는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올 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장기 파업사태로 분위기는 더욱 냉랭해진 것이 사실이다. ' 옥포조선소 도크 불법 점거사태가 길어지고 대부분의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한 이후, 대우조선 노조에 대한 시각은 어느 때보다 차갑다. 

    이 판국에 "한화로 매각을 반대한다"라는 노조의 목소리가 과거처럼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의도치 않았다해도 7월 사태는 장기적으로는 한화그룹의 대우조선 인수에 '플러스 요인'이 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사실 한화든, 다른 어느 그룹이든, 그리고 어떤 방식이든 대우조선이 새 주인을 찾아야 하고, 산은의 폐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명분 만큼은 반대하기 어렵다. 21년간 산업은행의 무능과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원칙 부재가 이 매각의 명분을 더욱 공고히 만들고 있다.

    그리 따지면 "대우조선에 투입된 돈이 공적자금이냐, 아니냐"라는 기술적인 언급은 중요치 않다. "대우조선에 투입된 자금 절반, 아니 1/4만 투입돼도 STX그룹이, 강덕수 회장이 혹은 지금은 지워져버린 다른 재계 그룹이 모두 없어졌겠느냐"라고 해본들… 사실 모두 이미 지난 얘기가 됐고 이제 와서 돌이키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 그 많은 돈과 세월의 낭비의 결과가 고스란히 승계를 앞둔 젊은 부회장의 미래로 투입되는 그림인데. 이걸 "한화그룹 오너 일가가 천운(天運)을 타고 나서 그렇습니다"라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대우조선에 들어간 7조1000억원의 지원자금이 너무 많고, 21년이란 시간이 너무 길었다.  

    이럴진대 한화그룹이 "최대한 대우조선을 잘 살려서 수조원의 국책은행 지원금, 혹은  다른 기업에 쓰였다면 여러 그룹을 생존시켰을 소중한 자금이, 최대한 회수되게 노력하겠다"라는 입장이나 태도라도 보였으면 이번 대우조선 매각에 대한 그나마 아쉬움이 덜할 듯했다. 하지만 한화그룹 코멘트에 그런 기조는 아직 일도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