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통제 지적 빗발친 국감…곤욕 치르고 혹 붙여 돌아간 은행장들
입력 22.10.13 07:00
코로나 불출석 권준학 NH행장 제외 4대은행장 출석
횡령 규모따라 나뉜 답변…내부통제는 '의식' 문제?
시스템 미흡·경영진 책임 주목한 금감원·정무위원
외화송금 정치쟁점화…고통분담 요구는 더 노골화
  • 5년 만에 줄지어 국정감사에 출석한 은행장들이 내부통제 실패로 인한 질타 속에 혹만 붙여 돌아가게 됐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시대 들어 금융 취약계층이 고통받는 때에 은행이 국민 신뢰를 저버렸다는 지적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이번 국감을 기점으로 정무위원회와 금융당국이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분석이다. 잇따르는 횡령과 외화 송금 사태의 책임, 고금리에 따른 고통 분담 등에 대한 금융회사 부담이 점차 현실화할 전망이다. 

    11일 열린 정무위의 금감원 국감에는 이재근 KB국민은행장·진옥동 신한은행장·박성호 하나은행장·이원덕 우리은행장 등 시중은행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권준학 NH농협은행장은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으로 불출석하며 임동순 수석부행장이 대신 출석했다. 지난 수년간 반복된 금융회사 내부통제 실패가 올 들어 횡령 등 사건으로 재차 도마에 오른 만큼 관련 지적이 쏟아졌다.

    내부통제와 관련해서 은행장들은 제도적 문제라기보단 구성원 의식 문제라는 식의 답변이 주를 이뤘다. 횡령 사건의 경우 건수와 액수에 따라 각 은행장 답변에서 태도 차이도 두드러졌다. 

    올해 횡령 사건에서 가장 크게 주목을 받은 이원덕 우리은행장의 경우 국감장에서 고개를 깊게 숙였다. 이 행장은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다. 우리은행이 각고의 노력으로 거듭날 수 있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은행의 내부통제가 가장 미흡하다는 지적에는 "백 번 사과해도 부족함이 없다. 사고가 발생해서 이 자리 나온 것만 해도 엄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했다. 

    박성호 하나은행장, 이재근 KB국민은행장,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다소 방어적인 자세를 보였다는 평가가 많다. 앞서 금융권에선 각사에서 발생한 사고의 경중을 떠나 주요 은행장을 모두 출석시키는 데 대한 반감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박성호 행장은 "18건 횡령 중 15건을 자체 적발했고, 회수율은 66% 정도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은행 평균보다 높고, 사고 금액도 감소 추세에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재근 행장은 "하나은행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했는데 KB국민은행의 (횡령 사고가) 가장 작았다. 상시 감사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만 개인이 고의적으로 일탈하고 작정을 하면 대응이 어려워서 내부통제 교육이나 정신교육 연습도 중요하다고 보고 중점을 두고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답변했다. 

    진옥동 행장은 "가장 중요한 게 직업윤리인데 내부 교육이나 최고경영자(CEO) 의식이 중요한 부분이라 강화할 계획이다. 일벌백계의 자세로 군기를 잡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을 비롯한 정무위 위원들은 국내 금융회사 전반의 내부통제 체계 미흡과 경영진 책임에 주목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이 원장은 "금융회사 최고경영진이 내부통제 문제를 단기 경영 성과에 대한 비용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라며 "각사의 내부통제 관련 기준이 선진국은 물론 금감원의 기준에 못 미친다. 상층부 핵심성과지표(KPI)에 반영될 수 있도록 살피고 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지난 6일 금융위 국감에 이어 정무위 위원 전반이 은행으로부터 내부통제 시스템에 대한 자료를 받아보고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각 은행이 자체적으로 마련해 금감원에 보고한 내부통제 제도로는 비슷한 사고를 예방할 수 없으니, 금융위와 금감원 등 당국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분석된다. 

    이 원장은 향후 국내 금융회사의 준법감시 체계 마련 및 전문인력 확보에 투입하는 비용 등을 살펴 정무위에 보고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외화 송금 문제의 경우 정치권 대북송금 문제로 비화하며 정치 쟁점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은행의 불법 외화 송금 액수는 현재 17조원까지 불어났다. 

    최근 정치권에서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대북 코인사업과 관련해 미국을 방문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터라 자금흐름 통로로 은행이 주목을 받는 등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이날 국감에서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금감원이 지난 정부 동안 늘어난 불법 외화 송금이나 가상자산 관련 자금흐름에 대한 조사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금감원이 앞장서 달라 주문했다. 

    경제 불안이 가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부통제 미흡에 대한 질책이 쏟아졌던 만큼 각 은행장에 고통분담 요구도 잇따라 등장했다. 국감장에선 국민 이자 부담이 상당하니 은행이 목표수익률을 낮추고 사회공헌을 늘리는 게 어떻냐는 요구까지 나왔다. 

    출석한 은행장 전반이 이 같은 요구에 "이익이 늘어나는 만큼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답한 만큼 향후 은행에 대한 고통분담 요구도 더욱 본격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