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火災)는 IT기업이 예상할 수 없는 리스크인가
입력 22.10.17 16:21
Invest Column
  • 우리는 인터넷, 정보통신(IT)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착각한다. 그러다보니 IT기업엔 왠지 육체적 노동은 존재하지 않을거라 믿는다. 마치 산업혁명이 회차를 거듭할수록 정신적 노동이 대체할 거라는 '믿음'처럼 말이다. 그런 믿음은 소비자뿐만 아니라 IT기업 경영진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일단 3만2000대라는 서버가 전체가 다운되는 건 IT 역사상 유례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저희의 대처에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생각이 되고요.

    화재라는 것은 워낙 예상할 수 없는 사고였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까지는 화재가 나서 서버 전체가 내려가는 이런 부분까지는 대비가 부족했던 것 아닌가" -양현서 카카오 부사장

    데이터센터 화재 한 건으로 카카오그룹은 멈췄다. 그 고통은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돌아갔다. '카카오왕국'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전 국민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그런데 이에 대한 회사 경영진의 해명은 놀랍다.

    이 얘기대로라면 IT공룡 카카오엔 '화재(火災)'가 위험 대응 시나리오에 포함돼있지 않다. 이미 2018년 KT 아현동 화재로 먹통이 되는 경험을 지켜봤지만, 그건 남의 일이었나 보다. 데이터센터를 구성할 때는 재해를 대비해 물리적으로 다른 곳의 데이터센터에 백업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구축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글로벌 IT기업들이 괜히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직접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면서 백업 데이터센터를 이중으로 구성하는 게 아니다. 

    프로그래밍 같은 정신적 노동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신축, 유지와 보수, 관리 등 육체적 노동도 IT의 필수불가결한 노동이고 그와 관련된 물리적 리스크도 상존할 수밖에 없다. 카카오는 그 과정을 잊은 채 영토 확장에만 골머리와 돈을 집중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이후 이젠 일상이 돼버린 새벽배송 역시 우리는 편리함만 생각하고, 경영진들은 기술의 혁신만 설파한다. 이를 위해서 들어가는 육체적 노동과 물리적 리스크는 생략된다. 작년에 있었던 쿠팡의 이천 물류센터 화재 이후에도 새벽배송 업체들의 소화 및 경보 설비 부족함은 지속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회사들은 나름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게 잘 안되고 있다면 그 조치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국정감사의 질타 대상이 된다. 불려나온 기업 대표들은 국회의원들에게 '혼쭐'이 나고, "유념하겠다", "개선하겠다"라고 되풀이하고 만다. 순간 짜릿할지는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건 많지 않다.(당연하게도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도 관련기업 대표들은 국감장의 증인으로 채택됐다)

    기업이 모든 리스크에 대응할 수는 없다. 발생하지 않도록, 발생하더라도 그 피해가 최소화할 수 있게 준비할 뿐이다. 리스크 관리는 인간의 부주의까지 감안해야 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처럼 공장들이 돌아가야만 물리적 리스크를 대비하고 플랫폼 기업들은 손 놓는 게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IT기업 경영진들이 있다면 그야말로 비현실적이고, 비과학적 사람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