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소송(?) 이어질 카카오 화재…피해자 ‘약관의 벽’ 넘기 쉽지 않다
입력 22.10.18 07:00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 서비스 전면 중단
재무영향 크지 않다지만 피해자 집단소송 움직임
피해 입증은 이용자…'약관' 이상의 배상 쉽지 않아
대형 로펌 수임 각축…종국엔 SK와 구상권 문제로
  •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그룹 계열사들의 서비스가 먹통이 됐다. 카카오는 재무적인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 보지만 이번 사태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숫자가 적지 않아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카카오의 서비스들은 ‘약관’에서 손해배상과 책임 범위를 좁혀두고 있다.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기까지 ‘객관적인 손해와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할 부담이 크다. 보상이 끝난 후엔 카카오와 SK C&C 간의 책임 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15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 소재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 카카오T, 카카오페이, 다음 메일, 멜론 등 카카오그룹 주요 서비스가 한동안 중단됐다. 일상적인 의사 소통은 물론 택시호출, 온라인 쇼핑 등 다양한 경제 활동이 멈춰섰다.

    카카오 측은 각 서비스의 이용 시한을 늘리는 등 대응에 나섰다. 17일에는 재발방지대책 및 이해관계자 보상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이로 인한 카카오와 계열사의 재무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증권가에서는 카카오의 일 매출 수준인 150억~200억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국민앱’으로 이용자 수가 많은 만큼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의 수와 잠재 피해 규모가 천문학적일 것이란 지적도 있다.

    한 대형 법무법인 파트너 변호사는 “미국으로 치면 구글이나 애플이 다운된 셈”이라며 “개별 이용자들의 손해액은 미미하더라도 이를 모으면 어마어마한 금액의 ‘세기의 소송’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형 법무법인들은 이번 사태에서 일감을 수임할 수 있을까 전략 협의에 분주한 모습이다. 인명피해가 없어 ‘중대재해처벌법’ 문제는 크지 않지만, 카카오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법적 방어 논리를 마련하는 자문은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프라 투자는 아꼈어도 ‘책임 공방’에선 돈을 아끼지 않을 것이란 기대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대형 법무법인이 여럿 선임될 것으로 예상된다.

    손해의 입증 책임은 이용자에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무료 서비스인 카카오톡 자체는 이용이 어려워졌다 하여 피해를 주장하기 어렵다. 다만 결제 수단의 문제로 계약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 킥보드 반납 처리가 되지 않아 비용이 증가한 경우 등은 상대적으로 ‘객관적 손해’의 입증이 용이하다. 경우에 따라 정신적 손해도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평가다.

    한 지식재산권 전문 변호사는 “결제나 송금 문제로 계약이 무산되거나 이자 비용이 늘어난 경우엔 객관적인 손해가 명확히 입증이 된다”며 “단순히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해 기분이 나빴다는 것은 손해가 될 수 없지만 멀티프로필 유출 등으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해선 위자료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와 계열사들은 대부분 회사의 과실로 손해를 입게 될 경우 손해를 배상한다고 약관에 고지하고 있다. 약관엔 천재지변이나 이에 준하는 불가항력의 상태, 기타 회사의 고의 또는 과실이 없는 경우 등에선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도 담긴다. 멜론은 ‘실제 발생한 손해’만 배상한다고 밝히고, 카카오T는 IDC 장애 등으로 인해 카카오T 비즈니스를 제공할 수 없는 경우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공지한다.

    이용자들은 서비스 가입에 앞서 약관에 동의를 했기 때문에, 실제 배상을 받기까지 난관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약관은 내용이 불분명하면 고객에 유리하게 해석하고, 불공정한 내용이 있을 경우 무효로 하기도 하지만 허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사상 초유의 사태인 만큼 아주 똑 같은 사례를 찾긴 어렵지만, 비슷한 사례에서 약관의 중요성이 드러나기도 했다.

    2014년 발생한 SK텔레콤의 통신장애 사건에선 대리운전 기사 등이 일실수입과 위자료를 달라고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회사는 당시 약관에 따라 요금을 줄여주고 일부 장애에 대한 보상도 했다. 법원은 약관상 손해배상조항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을 정한 것이기 때문에, 회사가 그 이상으로 실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없다고 봤다.

    2018년 KT가 아현지사 화재 때 약관과 별개로 보상 정책을 낸 적이 있다. 요금을 감면하고 피해 소상공인에게도 피해 정도에 따라 피해액을 보상해줬다. 다만 작년에 발생한 통신망 장애 때는 서비스 중단 시간이 약관상 손해 배상 기준(3시간)을 넘지 않았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손해 배상은 약관에 따르는 것이 원칙’이라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한국전력의 전기 공급 책임에 대한 판결은 사안에 따라 엇갈린다. 대법원은 ‘고의에 준할 정도’로 점검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딸기 농가가 피해를 입은 경우엔 한전의 책임을 인정한 적이 있다. 반대로 순환 단전 시 고지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전복이 폐사한 경우 한전의 고의·과실을 부인한 하급심 판례도 있다.

    주요 포털 사이트에선 카카오톡 화재 장애로 인한 피해자들이 집단 소송을 걸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법무법인의 도움을 받아 만약의 상황을 미리 대응하지 못한 카카오의 과실을 따지겠다는 것이다. 위험을 분산해두지 않은 카카오의 경영 판단에 대한 지적이 많은 상황이다. 소송 추이에 따라 피해액이 늘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투자사 관계자는 “한국전력처럼 사업을 독점하는 곳은 약관이 고객에 다소 불리하게 작성된 면이 있어 손해 배상 책임을 피하는 경우도 있다”면서도 “카카오는 유료 비즈니스 가입자가 많은 데다 앞으로 이어질 민사 소송까지 감안하면 증권사 추산보다 피해액이 훨씬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하고 나면 이후 SK C&C와의 정산 문제가 남는다. 결국 SK C&C가 관리하는 데이터센터에서 사건이 벌어진 만큼 SK C&C 측의 귀책 사유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카카오가 SK C&C에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배임 소지가 있다. 카카오는 ‘서비스의 정상화 이후 카카오와 카카오 주요 종속회사 손실에 대한 손해 배상 논의를 SK C&C 측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